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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유학, 또 하나의 대안 만들기

2013.05.20 21:26

물님 조회 수:3708

산촌유학, 또 하나의 대안 - 46호 민들레| 

산촌유학, 또 하나의 대안 만들기

 

 

민들래 편집실

 

올초부터 민들레에서 매호마다 소개하고 있는 ‘산촌유학’은 우리 사회의 대안교육, 생태마을 만들기, 귀농, 환경,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러한 쪽에 관련된 사람들도 주목할 만한 아이템이라고 봅니다. 이미 그러한 단체 몇 군데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호에서 산촌유학의 취지와 국내 움직임(44호)과, 일본의 산촌유학 현황(45호)을 소개한 데 이어서, 이번호에서는 대안운동과 연계해 산촌유학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를 함께 생각해고자 합니다.

 

생태마을 만들기와 산촌유학

 

대안사회를 꿈꾸는 이들 가운데 생태마을 만들기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는 곳들도 있다. 생태적인 삶은 바야흐로 이 땅에서도 하나의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간디학교나 변산공동체학교 같이 학교 만들기와 생태마을 만들기를 함께 풀어가려는 대안학교들도 적지 않다.

생태마을 만들기도 풀어가기에 따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산청 간디학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마을의 경우 도시인들이 집단 이주해서 전원주택 단지같이 형성되는 양상을 띠는 반면, 변산에서는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생태마을과 공동체학교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홍성 홍동지역은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들이 기존 마을을 생태마을로 바꿔나가고 있고, 상주 화북, 괴산 솔뫼마을 같이 귀농자들이 기존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역운동으로 풀어나가는 곳도 있다.

마을이 실제로 지속가능한 생태적인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농사법이나 생활 방식이 생태적으로 바뀌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으로 살림살이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야 하고, 마을에 생기가 돌아야 한다. 마을에 생기가 돌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어야 하고, 그 아이들이 활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지금 농촌에는 아이들도 거의 없지만, 그나마 드물게 있는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 못지 않게 학원을 뺑뺑이 돌고 있고, 밖에서 뛰어놀기보다 컴퓨터, 텔레비전이랑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실정이다.

마을을 살리자면 무엇보다 아이들이 살아나야 한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농촌마을 살리기, 생태마을 만들기는 공염불이다. 마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교육문제를 생각할 것이다. 마을에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지역 학교를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역 학교를 살리는 방안으로 산촌유학은 주목할 만한 대안이다. 게다가 산촌유학은 지역 학교를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생태마을은 산촌유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이지만, 마을이 좋다고 해서 산촌유학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산골유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아이들의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일 것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숙식 여건, 아이들이 다니게 될 지역 작은 학교의 교육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일부러 산골까지 아이를 보낼 부모가 없을 것이다. 특히 장기유학의 경우 이러한 조건은 필수다.

 

귀농과 산촌유학

 

지금 우리 농촌 실정으로 볼 때 산촌유학생을 일반 농가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농가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활교육을 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춘 어른이 있어야 한다. 되도록 지역에서 그런 어른을 찾아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풀어가야겠지만, 산촌유학을 조직적으로 풀어가려면 아무래도 귀농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생태적 삶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있는 귀농자들이 산촌유학의 취지를 이해하고 운동 차원에서 함께 풀어간다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촌유학은 귀농자들에게 의미있는 일거리이자, 경제적인 방편도 될 수 있다.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농사만으로는 경제생활이 힘들 것 같아 망설이는 이들도 있다. 귀농에 성공해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경우 농사일만 하면서 살기에는 뭔가 허전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귀농한다고 해서 꼭 농사만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예술인들 중에도 시골에 사는 이들이 적지 않고, 나이 들어 귀농이라기보다 귀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이 산촌유학생을 받아서 생활교육 또는 도제교육을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적인 귀농이라 해도 반쪽 성공도 못된다. 생태마을 만들기와 작은 학교 살리기, 귀농운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산촌유학은 이 모두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귀농운동본부에서도 여기에 관심을 갖고 운동 차원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귀농교육을 할 때도 교육문제와 더불어 산촌유학에 대한 안내를 할 필요도 있다. 귀농자들이 집을 지을 경우 산촌유학생을 감안해서 구조를 설계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귀농 8년차인 상주의 이명학씨는 이미 그런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초기 귀농자의 경우 시골 생활에 적응이 안 되어 스스로도 힘들어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합할 필요가 있겠다.

 

생활 터전과 산촌유학

 

일본에서 산촌유학이 지역 농가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농가가 도시 주택 못지 않게 정갈하고 2층 구조이거나 규모가 큰 편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에 별 불편함이 없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초가삼칸 식 우리 전통 농가는 아이들 두세 명이 며칠은 머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유학은 힘들다. 새로 지은 집들도 대체로 핵가족용 아파트 구조와 비슷해서 아이들이 장기간 머물기는 서로가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평수가 좀 넓다면 아이들 두세 명이 한 달에 열흘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이 마음이 통하면 한 가족처럼 지낼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 농촌 실정으로 볼 때 산촌유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아이들이 묵을 수 있는 독립된 센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자체의 지원을 얻어 산촌유학센터를 새로 짓는 것은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보다는 지역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물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볼 일이다. 마을마다 수억 예산을 들여 잘 지어놓고서 놀리고 있거나 창고처럼 쓰고 있는 공간들이 적지 않다. 기존 공간을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이 행정상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몇 년째 방치되다시피 한 공간을 마을을 살리는 일에 활용할 수 있도록 주민들과 지자체를 설득하는 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산촌유학센터는 단순히 도시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보다 지역 아이들과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

경기도 양평의 오지인 명달리가 생태산촌 시범마을로 지정되면서 명달분교 터에 환경교육센터(명달리 숲속학교로 개칭)가 새로 들어서면서 그 운영을 ‘생명의 숲’ 산하 ‘생태산촌만들기모임’이 맡았는데, 그 모임에서 산촌유학에 관심을 갖고 센터 시설을 산촌유학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좋은 사례가 나오면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해서 공간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땅한 공간이 없는 지역이라면 지자체의 지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 먼저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면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전북 진안군에서는 행정 담당자 중에 산촌유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이도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와 산촌유학

 

산촌유학이 성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산촌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은 교육 여건이다. 생태마을은 마을 전체가 훌륭한 교육장 역할을 할 수 있고,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같은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기존 학교를 살리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자면 산촌유학을 시도해볼 일이다.

문제는 작은 학교가 반드시 좋은 학교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은’ 학교는 좋은 학교의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금 산골의 작은 학교는 면소재지에 있는 본교도 한 학년 정원이 10명이 안 되는 학교들이 많다. 도시의 학급 정원이 보통 35명인데 비하면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학교에 투여되는 예산만 놓고 봐도 도시 아이들 한 명에 드는 예산이 평균 250만원 안팎인데 견줘 시골의 작은 학교는 10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산골 학교의 경우 학생 대 교직원 비율이 2:1~5:1 정도이다.) 문제는 그만큼 교육의 질이 좋으냐 하는 것이다.

대개 학년당 아이들 수가 8명 이하일 경우 복식반을 편성해서 운영하는데, 그 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학급 학생 수가 아주 적어서 거의 개인교습처럼 수업이 이루어지거나 교사가 남다른 열의가 있는 경우 말고는 열 댓 명 아이들을 대상으로 구태의연한 학급운영 방식으로 복식수업을 하다보면 학습이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승진점수나 바라고 벽지근무를 신청한 교사들의 경우 교육보다는 근무시간 때우기에 그치기 십상이다.

일본은 벽지 근무를 할 경우 횟수, 년수에 관계없이 호봉이 1호봉 올라갈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뜻있는 교사들이 자원해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면에 우리 경우는 승진 점수가 있다보니 아이들보다 자리에 더 관심 있는 교사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형편이어서 정작 뜻있는 교사들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게다가 연장 근무가 어려워 3-4년 근무하면 전근을 가야 한다. 뜨내기 교사들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산골 학교 교사들치고 산골에서 사는 교사는 거의 없고 거개가 읍내에서 자가용을 몰고 다닌다. 교사들이 마을과 완전히 따로 놀다보니 학교도 당연히 마을과는 따로 국밥이다.

작은 학교가 좋은 학교가 되려면, 교사들의 벽지 근무 점수를 없애거나 혜택을 줄여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머물고 싶은 교사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몇 번이라도 근무 연장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도 멀리 내다보고 자신의 터전과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를 바꾸어가지 않으면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무조건 작은 학교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농촌 살리기’, 또는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명분을 내건다 해도, 지금 같은 형태로 시골의 작은 학교를 유지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기도 하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른바 복식 수업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작은 학교가 살아나려면 학년별 과목별로 수업을 하는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학년 통합, 과목 통합은 오히려 새로운 교육의 흐름이다. 큰 학교는 그러기가 힘들지만, 작은 학교는 가능하다. 일본의 키노쿠니학교 같이 무학년제 프로젝트식 수업으로 풀어간다면, 60명 정원이면 4-5개 정도의 프로젝트팀을 꾸릴 수 있다. 그러면 교장과 행정직을 포함해서 6-7명이면 충분히 학교를 꾸릴 수 있다.(기존 방식으로 복식반 편성을 한다 해도 같은 수의 교사가 필요할 것이고, 학년별로 반편성을 할 때는 2-3명이 더 필요하다. 예산을 낭비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번호에 실린 ‘나쁜 학교가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가’를 참고하기 바란다.)

작은 학교가 살아나려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사, 교육방식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은 ‘작은 학교 거듭나기 운동’이 되어야 한다.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을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더 바람직한 교육환경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할 일이다. 학생 수가 너무 적어도 학교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교육 여건과 예산을 고려할 때 60-70명 정도가 적정 수라고 볼 수 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통학이 곤란하거나 다른 교육을 원할 경우, 홈스쿨링을 하면서 학교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승진제도나 벽지근무제도를 바꾸는 일도 교사집단의 반발로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뜻맞는 이들끼리 지역의 작은 학교를 바꾸어가는 작업부터 시작해볼 일이다. 아산의 송학초등학교 거산분교(현 거산초등학교)는 몇 해 전에 이미 그런 작업을 해냈다. 천안 지역의 학부모들이 뜻맞는 교사들과 힘을 모으기로 하고서, 100여 명의 아이들을 아산분교 근처 마을로 전입시켜 분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학교를 완전히 새롭게 변모시켰다.(이 경우는 산촌유학이 아니라 산촌등교인 셈이다. 날마다 통학버스가 천안 시내에서 아산 송학리까지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시간은 40분쯤 걸린다.) 해남 서정분교, 양평의 정배분교, 여주의 운암분교 등 비슷한 시도를 해온 학교들이 있는데, 공립학교이다 보니 교사들이 전근가면서 학교가 흔들리는 수가 많아, 새로 오는 교사들을 선정하는 물밑 작업이 필요하다.

거산분교 같은 통학 식이 아닌 산촌유학 방식도 부모들과 교사들이 힘을 모으면 비슷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상주 화북 지역에서 이미 그러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은 학교가 탈바꿈을 하기 위해서도 산촌유학 같은 대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서 아이들을 통학시키기가 쉽지 않은 지역의 경우 산촌유학 방식을 도입해서 아이들 수를 확보하고 학부모, 교사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바꾸어나가는 노력을 한다면 작은 학교는 얼마든지 거듭날 수 있다.

 

산촌유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과 생활공간, 학교. 이 조건들이 부모들이 안심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으면 장기유학은 어렵다. 그러나 이 조건은 산촌유학생을 위한 조건이기 이전에 지역 아이들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산촌유학은 도시아이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그 지역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산촌유학을 통해 도시와 시골 아이들, 부모들이 서로를 살리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