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 多夕 유영모의 얼
독좌대웅봉 獨坐大雄奉
해인 삼매중(海印三昧中). 태산에 홀로 앉아 달빛을 듣고 계시는군요
달이 뜨니 마치 인장을 찍듯 머흐는 동해 바다 달빛이 춤을 춥니다.
세 저녁(多夕) 섬광처럼 빛이 내려오니 ‘해인 海印’
정신이 번쩍 들게 한 큰 도장이 제 가슴팍에 때려 박힙니다.
오호라 어찌 태산 같은 은혜에 보답 하리오,
오늘도 내 영혼에 씨알의 말씀을 새길 뿐.
예수님은“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하셨다지요.
유영모(1890~1981)도 서울 구기동에서 농사짓고 꿀벌 치던 농투사니,
마치 양을 치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던 농부 아모스나
모레셋에서 농사짓던 미가 선지자가 하느님께 붙들려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고 .
정의를 선포하는 빛의 길을 가신 것처럼
하느님은 이 땅에서 설움 받던 씨알을 골라 하늘나라의 머릿돌로 삼아 주셨으니
그 농부가 뿌린 씨앗이 꽃 피우고 하나의 꽃몸에서 또 한 알의 씨알이 흘러
여기 불재, 이름 모를 진달래에 고요히 내려 앉아 숨쉬고 있습니다.
동네 서당 출신 유영모, 공부라고는 공맹을 배우고 중핵교 2학년 중퇴가 전부.
그러나 하느님이 걸어가신 우주의 길을 밝히는 거룩한 촛불과 같이
참 찾아 가는 그의 얼은 마침내 참과 진리의 세계에 이르고
영원히 내리지 않는 방거사의 흰눈이요, 가온의 제소리와 입장을 갖게 됩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평북 정주 오산학교를 연 남강 이승훈 선생은
고당 조만식 선생에 이어 유영모를 오산학교 교장으로 발탁했다고 허니
남강 선생의 혜안과 어짐도 어지간한 것이 아니었더군요.
몸나가 아니라 얼나로 말씀하신 분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신 분
한글을 통해서 하늘을 발견하신 분
남소리 아니라 제소리 말씀하신 분
하루를 살아서 영원을 아로새긴 분
하느님 사랑에 스스로 아들되신 분
단단무위자연성 斷斷無爲自然聲 세상의 욕망을 끊고
일일일식 一日一食 한번 먹고 하루사는 삶
명상으로 맘 기도 노동으로 몸 기도
피땀 흘려 일하는 것이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름이라
잦나무 널빤지 하나 깔고 하늘을 받든 다석 유영모.
다석은 쉰둘에 정신이 자꾸 밝아지고 영혼이 울려퍼져
육체와 욕망에 붙잡혀 살아온 나는 본래의 나가 아니라
우주에 가득 찬 허공과 하느님의 얼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홀로 독생자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얼의 씨를 키워 하느님의 영이 참나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얼의 씨알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사람이 이를 깨우치면 이 세상 그대로 천국이며,
몸이 죽고 안 죽고 간에 상관없이 영생한다는 맘농사를 거둠에 이르러,
“참 찾는 이는 이문을 두드리시오”
스승은 사랑을 태워 힘써 진리의 말씀을 설하셨으니,
그분의 영을 산제사 드려 얻은 이가 바로 신천 함석헌, 현제 김흥호입니다.
씨알의 말씀 한자락을 받듭니다.
“말씀이 곧 하느님이다.
우리의 몸생명은 목숨인데 얼생명인 말숨과 바꾸어 놓을수 있다.
우리에게 생각과 말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누에가 실을 뽑는 것이다.
그리하여 목숨이 말숨(말씀) 속에 번데기가 되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는 삶이다. 누에는 죽어야 고치가 된다.
죽지 않으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을 다 뽑고는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는 미련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생각의 실, 말씀의 실을 뽑아 생각의 집, 말씀의 집, 사상의 집을 지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가서 있을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내가 가서 있을 집을 지어 놓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거저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씀의 집을 지으러 왔다.
생각하여 말씀의 실을 뽑아 누에가 고치 집을 짓듯 말씀의 집을 지어야 한다.
"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요한 14:1~2)
고 했으나 가서 지어놓는 것이 아니라 벌써 지어 놓았다. ”- 多夕
“ 하느님은 고요히 사람의 귀를 여시고 마음에 인(印)치듯 교훈하신다.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막을 길은 없다.
잠 잘 때나 꿈꿀 때나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소리를 들어라.
그것은 사람을 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 위해서다.
하느님 말씀은 공상(空想)이 아니라 구체적인 진실이다.
하늘에서 비가와도 그릇에 따라 받는 물이 다르듯이 사람의 마음 그릇에 따라
하느님 소리를 듣는 내용이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에 가득 찬 하느님 말씀은 하나이다. 말씀에 공손히 좇아야 한다. ” - 多夕
“ 우리는 이미 정신세계에서 하느님과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승의 짐승이 되었다.
우리들이 산다고 하는 몸뚱이는 혈육(血肉)의 짐승이다.
질척질척 지저분하게 먹고 싸기만 하는 짐승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몸나에서 얼나로 솟날 때 비로소 사람이 회복된다.
예수가 말한 인자(人子)는 짐승에서 사람으로 회복된 것이다.
예수가 말한 인자(人子)는 짐승에서 사람으로 회복된 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이 곧 사람인 것이다. - 多夕
“하루 한끼 먹으면 만병이 없어진다. 모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 ”
하루 저녁 한끼 드시고 넘치도록 배불러
다석 유영모가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뿌리고 간 팔만 씨알의 말씀은
1955년 4월 26일에 시작하여 1974년 10월 3일로 마친
그의 복음서 다석일지 多夕日志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승에서 90년 10월 23일, 33200날 숨쉬고
1981년 2월 3일 오후 6시 30분 구기동 자택에서 몸옷을 벗었습니다.
실을 다 뽑은 누에가 뻔디기가 되어 고치에 숨듯 생명의 집을 다 짓고
한마디 말 없이 새길을 가셨습니다.
왕양명이 눈 감을 때 제자들이 마지막 말씀을 청하자
“차심광명 역부하언 此心光明 亦復何言”
“내 마음이 빛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라시며 떠나셨다고 하는데
다석 선생은 그 말씀조차 잃어버렸습니다.
스스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참 찾아 가신 참사람
하느님께서 그분의 친구 유영모 앞으로 보낸 편지 꼭 읽어 보시고
그분의 기도와 같이 ‘아버지와 님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모두 하나이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삶에 들어 갈 수 있기‘를 비옵니다.
多夕 기도
하늘 계신 아바께
이름만 거룩 길 참 말씀 님 생각이니이다.
이에 숨쉬는 우리 박는 속 알에
더욱 나라 찾음 이여지이다.
우리의 삶이 힘씀으로 새 힘 솟는 샘이 되옵고,
진 짐에 짓눌림은 되지 말어지이다.
우리가 이제 땅에 부닥친 몸이 되었사오나,
오히려 님을 따라 우우로 솟아 나갈 줄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먹이를 주셨사오니,
우리의 오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먹히워지이다.
사람이 서로 바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게 하옵시며
고루 사랑을 널리 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님께서 하나이 되사 늘 삶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모두 하나이 될 수 있는 성언을 가지고
참 삶에 들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뜻이 위에서 된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09. 8. 8일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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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우리하나님을 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