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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의 사랑

2015.01.01 07:19

물님 조회 수: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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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러브스토리 

 

- 행복(幸福) / 유치환 -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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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마(靑馬)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깃발'이란 시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의 국어수업을 참관한 후 담당 국어교사를 불러

"내 시가 그렇게 어려워요"라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오고 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시 <깃발>은 난해했다.

해설이 필요한 시다.

시 <행복>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짠하게 전달이 된다.

이는 연가(戀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남몰래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시에 공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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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정운 이영도(李永道, 1916~1976)

 

1940년대말~50년대말 통영에서 10여 년간 머물렀고,

50년 대 말에 부산으로 옮겨와서 67년 초까지 부산에서 생활했다.

청마가 세상을 세상을 떠나자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 살았고 뇌출혈로 삶을 마감했다.

청초한 아름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우선 간결한 표현이 맘에 든다.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행복>은 청마 유치환이 정운(丁芸) 이영도에게 보낸 시이다.

청마와 정운이 처음 만난 것은 통영여중 교사시절이었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정운은 2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둔 29살 과부였다.

당시 통영으로 시집 온 그녀의 언니집에 머물러있었던 것이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와 미모를 갖춘 정운은 처음 수예점을 운영하다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

청마는 만주로 떠돌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되었다.

청마는 정운보다 아홉살이 많은 38살의 유부남이었다.

정운은 워낙 재색이 뛰어나고 행실이 조신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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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끝자락의 작은 도시 통영은 예향(藝鄕)이다.

유치환,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이중섭 등

수많은 예술인이 나고 자라고 활동한 곳이다.

통영의 골목골목에는 예인들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이야기가 흘러넘친다.

 

시에 나오는 청마거리의 통영 중앙동 우체국이다.

빨간 우체통 옆에 <행복>시비가 있다.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정운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퇴근 후에도 수예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정운을 보기 위해

청마는 수예점이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미 결혼한 청마와 홀로 된 정운은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연서로 그리움을 달랬다.

누군가에게 연서를 보낼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청마는 1947년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3년 동안 편지를 쓰고 시를 써댔다.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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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이 운영한 수예점과 그의 언니가 운영하던 약방 '박애당'은

우체국에서 바로 보이는 옷가게 '시선집중'터다.

청마의 집필장인 영산장과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2000년 폐원)이 있던 충무교회는

우체국에서 세병관 방향으로 불과 5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 그리움 / 유치환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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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은 유교적인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사랑의 시편들에

마침내 바위같이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적 사랑은 시작됐으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였기에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무제 1>은 정운의 첫 시조집 청저집(靑苧集)'에 실렸던 작품이다.

청마와의 연정을 한창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 무제Ⅰ/ 이영도 -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窓)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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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가 60살이 되던 1967년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한 후에야 이들의 사랑도 끝이나고 러브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1947년 이후 20년 동안

청마가 정운에게 뛰운 연서는 모두 5000여 통이였다.

사모의 정을 담은 편지를 거의 매일 보낸 셈이다.

정운은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 중 200통을 추려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의 서간집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청마 사후 정운은 <탑>이란 시를 통해 그녀의 애뜻한 마음을 표현했다.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사리로 남는 것이다.

 

 

 - 탑(塔) / 이영도 -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하고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정운은 청마의 시 세계를 넓혀 주었고, 정운에게 청마는

외로움과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정신적 지주였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불륜이라고 지탄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예술인에게 영원한 테마다.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시를 시들지 않게 해준 자양분이 되었다.

청마 유치환(1908~1967)

8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극작가 치진(致眞)은 그의 형이다.

23세인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시를 발표 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으나 문학청년과 어울려 술만 마셔 그의 아내는

신학공부를 권유하였으나 시작에만 전념했다.

평양으로 이주해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나

통영 협성상업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일제의 검속 대상에 몰리면서 잠시 만주로 나갔다가

1945년 37세 되던해 통영으로 돌아와서 부인은 유치원을 경영하고

윤이상.김춘수와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통영여자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1954년 경상남도 안의중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경주고·경주여중·대구여고·부산여상 교장을 지냈다.

살아 생전 청마는 교가도 많이 지었다.

통영초등 통영고 통영여고 둔덕중 대구여고와 부산고 동래고 등.

시비가 국내 시인 중 가장 많다.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 공원, 통영 남망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졌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허무와 애수이며,

이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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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아사에게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ㅡ모셔온글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