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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 오영재

 



만나니 눈물입니다

다섯 번이나 강산을 갈아엎은

50년 기나긴 세월이 나에게 묻습니다

너에게도 정녕 혈육이 있었던가

 


아, 혈육입니다

다같이 한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입니다

한지붕 아래 한뜨락 우에서

다같이 아버지, 어머니의 애무를 받으며 자라난 혈육입니다

 


뒷동산 동백나무 우에 올라

밀짚대로 꽃속의 꿀을 함께 빨아먹던

추억속에 떠오르는 어린날의 그 얼굴들

눈오는 겨울밤 한이불 밑에서 서로 껴안고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던 혈육입니다

 


정이란 그렇게도 모질고 짓궂어 헤여져 기나긴 세월

때없이 맺히는 눈물속에 조용히 불러보는 그 이름들

승재형 형재동생 진이 홍이 필숙아 영숙아

 


이렇게 만났으니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한시간도 못되게

그렇게도 쉽게 온길을 어찌하여 50년동안이나

찾으며 부르며 가슴을 말리우며 헤매였습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 수난의 력사, 고통의 력사, 피눈물의 력사를 되풀이하지 맙시다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이 가슴이 터져 죽습니다

민족이 죽습니다

 


반세기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도

한순간의 만남으로 다 풀리는 그것이 혈육입니다

그것이 민족입니다

 


정견과 신앙이 다르면 통일은 못합니까

만나서 얼싸 안으니 그 뜨거움도 같고 눈물도 같은데

이것이 통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지 남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통일합시다

그 누가 이날까지 우리의 이 길고 긴 아픔을 알아 주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통일을 선사했습니까

누가 우리의 통일을 바라기나 했습니까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형제들이여 동포들이여

영원히 리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7천만이 다 함께 모여 살집을 지읍시다 우리의 집을 지읍시다

 


오늘의 이 만남의 길을 통일의 길로 이어갑시다

북과 남 두 수뇌분들이 힘겹게 솟구쳐 주신 통일의 그 샘줄기가

순조로이 흐르도록 물길을 크게 내여 갑니다

 


아, 7천만이 바라고 바라던 민족의 새장이 펼쳐졌습니다

위대한 력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반목과 대결의 얼음장을 녹이며 막혔던 분렬의 장벽을 부시며

화해와 협력, 대단결의 대하가 흐릅니다 통일의 대하가 흐릅니다

 


이밤이 가고 또 한밤이 또 한밤이 가면

우리는 돌아갑니다

그러나 헤여질 때 형제들이여 울지 맙시다

다시는 살아서 못보는 그런 영원한 리별이 아닙니다

 


서로가 편지하고 서로가 전화하고

서로가 자유로이 오고 갈 통일을 한시바삐 앞당깁시다

 


통일만이 살길입니다 더 늙기 전 더 늙기 전에

우리가 어린 날의 그때처럼

한지붕 밑에서 리별없이 살아 봅시다

우리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2000'6.15 남북공동선언'두 달 뒤인 8151차 이산가족상봉이 서울에서 이뤄졌다. 이때 북측의 계관시인 오영재가 남측의 동생 등 가족을 만난 뒤 쓴 시다. 그는 1990년 한겨레신문을 통해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하고서 미주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통일예술>, 나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발표한 바 있다.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는 1995년 작고하였다.


 오 시인은 통한의 사모곡을 써서 당시 가족상봉 때 그 시를 읽었다. “오마니! 어머니 태어나/ 젖을 물며 제일 먼저 배운 말이건만/ 너무도 일찍이 헤어져버린 탓에 부르다만 그 이름/ 세상에 귀중한/ 어머니란 말을 잃고/ 그 말 앞에선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 자식/ 50년 만에 이 벙어리가 입을 엽니다/ 어머니의 사진을 앞에 놓고/ 엄마! 오마니!” 마지막 부분 '엄마!'란 대목에 이르러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으며 통곡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