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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느헤미야 2장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숨 이병창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위로(동정)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와 흩어진 동족들을 모으고 온 힘을 다하여 성벽을 세워 안정된 나라를 재건했다. 그의 의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생애는 그의 이름답게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삶이었다.

B.C.444년 봄(3, 4월 – 니산월), 예루살렘의 비참한 현실을 듣고 기도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되던 때에 느헤미야는 왕에게 청원을 하게 되었다. 왕이 왕후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어찌 슬픔의 낯빛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상들 묘가 있는 성읍이 훼손되어 슬픔이 있다고 말하였다. 여기에서(2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조상의 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을 반역의 도시로 알고 있는(스 4:19-20) 왕의 심기를 상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추측된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들은 전통적으로 조상의 묘를 각별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왕은 호의적으로 적극적인 승낙을 하게 되었다.

왕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 중요한 물음 앞에서 느헤미야는 왕에게 대답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짧은 침묵의 기도를 드렸다. 그 긴박한 순간에 잠시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다음 최선의 지혜로운 청원을 드린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곳곳에 등장하는 그의 특징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서는 1장과 13장에서 보는 바처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무리 되고 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탁월한 능력은 기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다.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보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보는 대부분 눈을 통해서 들어 온다. 그러나 인간의 눈은 2퍼센트의 정보만 받아들일 뿐이다. 눈 뜨고 보았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도는 내가 아는 지식의 통로를 닫고 에고를 투영시키는 지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눈을 감음으로써 보고 지식을 버림으로써 아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영성의 믿음이다. 기도와 명상의 핵심은 내가 나를 버리는 데 있다.

왕은 기쁨으로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파송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은 1차 12년이었고(느 5:14), 아닥사스다 왕 제 32년에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개혁을 추진하였다. 재임 기간의 끝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 방해자들


느헤미야는 왕에게 ‘왕의 숲’에서 목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였다(8절). 왕의 숲(파르테스)은 오늘날의 국립공원처럼 공원, 동산이라는 뜻이지만 왕과 일행만 출입하는 ‘금지 구역’이라는 의미이다. 이 숲은 레바논산의 숲이거나 예루살렘 남쪽 11km 거리에 있는 솔로몬 동산이라는 설이 있는 데 후자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이런 청원을 한 것은 그가 4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구체적이고 치밀한 준비 설계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은 신임하는 느헤미야의 청원을 흔쾌히 승낙했고 청원하지 않은 호위 부대까지 허락하였다. 에스라는 조촐하게 귀환하였으나 총독의 권세에 어울리는 영광스러운 귀환을 할 수 있었다. 그의 금의환향은 대적자들의 주목과 질시를 받게 하였지만 동시에 그들을 위축되게 하였다(10절). 3개월에 걸친 여정을 통해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도착 후 3일 만에 은밀하게 파괴된 성벽을 시찰했다.

그가 밤중에 시찰한 것은 대적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방해를 하게 될 것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상황을 파악한 다음 성벽 재건을 백성들에게 발표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하였다. 기습적인 발표에 대해 산발랏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은 제국에 반역을 꾀하는 처사라고 협박했지만 이미 왕의 허락을 받은 그는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일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가장 큰 방해자로 계속해서 등장하는 사마리아 총독이었던 산발랏과 그의 종이자 참모 노릇을 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있었다. 산발랏은 모압 출신으로써 장차 유대 지역까지 다스릴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느헤미야의 등장으로 크게 근심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과 혈연관계를 맺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느 13:28). 사마리아 지역이 앗시리아의 혼혈정책 지역이었다는 사전 이해를 한다면 그의 정체성이 짐작 가는 바 있을 것이다.

아라비아인들이 이스라엘에 와서 정착민으로 살게 된 것은 앗시리아의 사르곤 2세(B.C. 722-705)가 이스라엘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715년에 강력한 이주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혼혈정책의 결과에 의해 사마리아는 유다와 적대적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세 번째 적대자는 19절에 등장하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으로 유다 남부의 에돔 땅의 일부가 페르시아에 속했을 때 그 지방의 행정관이었다. 그는 아라비아의 족장으로 느헤미아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인간이었다. 게셈은 느헤미야가 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협박과 조롱을 하였다.


@ 언행에 신중한 사람 -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기도로 지혜와 용기를 구했고 치밀한 사전 계획과 준비를 한 다음 백성들에게 공표했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당시의 형편에 비추어 무모한 시도라고 끈질기게 조롱하고 반대하는 적대자들의 도전을 끝까지 극복하고 완수했다는 점이다.

13절 이하는 느헤미야의 성벽 탐사과정을 적고 있다. 느브갓네살의 철저한 성벽파괴가 얼마나 극심했었던가를 보여준다. 그는 탐사과정을 통하여 세부적인 재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중차대한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언행에 조심하며 살얼음판을 걷듯이 신중한 걸음을 걸었는지 보여 준다.

17절은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했던 연설의 내용이다. 그는 현실에 대해 직시할 것과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성을 재건하자고 호소하였다. 18절은 그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용기를 주시고자 왕을 통하여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비전과 자기 확신의 체험이 분명할 때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20절은 느헤미야의 적대자들을 향한 선언적 대답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과 그에 대한 용기로 원수들에게 대적하였다. 그는 대적자들이 하나님의 사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 해도 방해자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기죽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대담함과 지혜를 느헤미야에게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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