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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느헤미야 8장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숨 이병창


예루살렘 성벽 공사로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기는 하지만 자치권을 가진 국가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성벽이 외적 조건이라면 8장부터 펼쳐지는 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의 율법강독은 내적 신앙 회복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깨달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잊고 살았던 나팔절(8절)과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을 준수하게 되었다. 나팔절, 또는 유대교 신년제라 부를 수 있는 로슈 하샤나 (히브리어 : ראש השנה, Rō’š hašŠānāh,)는 히브리력 7월 1일에 새해를 기념하는 유대교의 4대 절기 중 하나이다. 나팔절은 10일 뒤에 당할 대속죄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초막절, 대속죄일(大贖罪日)은 속죄일이라고도 불리며 히브리력 7월 10일에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명절이다. 가을 절기에 해당하며, 모든 죄를 용서받고 속함받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욤 키푸르라고 불리며, 1년 중 가장 크고 엄숙한 명절이다. 성경에서는 레위기 16장, 23장에 대속죄일을 기념하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년 중 가장 큰 절기다 보니 속죄일 앞에 “큰 대(大)"를 붙여서 대속죄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의 전통과 영혼의 감각을 되찾게 된 것이다.

에스라의 말씀 교육은 신앙지도자의 부재로 인해 인근 이방인의 풍습에 동화되어 살았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하였다. 그리고 출애굽 이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 체결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속사의 주역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게 되었다. 신약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제3의 출애굽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육적본성으로서의 에고와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갖게 되었다.


@ ”아멘, 아멘“하면서 경배하였다(6절)


에스라는 글자가 보이는 새벽부터(빛에서부터) 정오까지 약 여섯 시간 동안 율법을 낭독하였다. 낭독한 에스라나 경청하고 있는 백성들 모두 모두 대단한 열정과 진지함을 보여 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귀가 그 책을 향하고 있었다’(3절)는 말씀은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에스라는 높은 강단 위에서 말씀을 읽었고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오른쪽에는 여섯 명, 왼쪽에는 일곱 명이 서서 백성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모든 백성은 일어서서 존경심을 나타내었고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아멘은 ‘과연 그렇습니다’라는 말이다. 긍정의 공감과 신뢰를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강조의 뜻으로 반복되고 있다. 경배한다는 말은 ‘땅에 엎드리다’라는 의미이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어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에스라가 읽은 것은 히브리어 율법이었다. 레위인들은 포로지에서 사용했던 아람어로 번역해 주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다. 70년 이상의 포로 생활은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기간이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율법의 뜻을 알아차리면서 그들은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을 깨닫고 통곡을 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울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거룩한 안식일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날’(사 58:14)임을 알려 주면서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말했다.

거룩한 날(초하루, 안식일, 나팔절)에는 슬픔과 걱정에 눌려 울지 않아야 한다(레 23:24-25). 느헤미야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날에는 좋은 음식을 먹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을 갖게 될 때 가능해진다(10절, 사 58:13 참조). 축제는 흥과 신명이 살아나야 한다. 단 것, 살진 것도 먹고 나누고 하나님을 기뻐함으로써 힘을 얻는 날이어야 한다.


@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걸어가는 삶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안내하면서 발견한 것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 무거운 짐은 과거라고 하는 짐이다. 기억 속에 있는 과거의 짐을 계속해서 버리지 않고 증가시켜가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짐 무게에 스스로 쓰러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일수록 남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려고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내려놓을 줄 모르고 미친 듯 달음박질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해방은 먼 목표만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가지 않고 지금 걷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 11:28) 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들의 백합을 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6:26, 28). 이는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작은 경험의 하나하나가 나를 나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진실과 나의 진실이 만날 수 있는 경험은 매순간마다 찾아오고 있다. 나를 찾아오는 모든 대상들은 매순간 내가 나의 진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나를 찾아오고 있다. 그 기회를 우리는 붙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 것이 주일이고 예배이다. 주일이 일주일의 첫날인 것은 지나간 한 주의 짐을 내려놓고 가볍게 시작하라는 뜻이다.

일전에 덕진공원 연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 찾아갔다가 적은 시 한 한편을 소개한다.


한 송이 연꽃이


덕진 연못에 연꽃 보러 갔더니

연밥만 보이고 연꽃이 없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려 피어난

연꽃 한 송이는 있지 않을까

찾는 마음의 끝자락에서

연꽃을 만났다


우연인가

꿈인가

수만 송이 꽃이 지고 난

가을 호수에서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느냐고

한 송이 연꽃이 말한다.



@ 초막절과 추석 명절


나팔절(종교력 7월 1일, 민간력 1월 1일)이 지난 다음 날인 ‘이튿날’에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도자들은 따로 남아서 에스라 주위로 모여들었다. 에스라는 그들에게 그달의 절기인 초막절에 대해 알려 주었다. 초막절은 유대 민족이 출애굽 당시에 광야 생활을 했었던 초막 생활을 기념하는 큰 절기였다(출 23:14-17, 신 16:16). 에스라 3:4절에 의하면 귀향 첫 해에 초막절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후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바빌론 포로 기간 동안에는 더욱 지켜질 수 없었다. 따라서 느헤미야와 함께 페르샤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에스라가 말해 주기 전에는 절기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제2의 출애굽이라 할 수 있는 느헤미야 시대에 있어 초막절의 준수는 신정국가로서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초막절은 광야에 나가서 해야 함에도 당시에는 적들이 노리고 있는 상황인지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초막을 성전 뜰에 세웠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지붕이나 마당에 세웠고 없는 사람들은 길가나 빈터에 세웠다. 초막절 7일 동안 에스라는 날마다 율법을 낭독했다.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공동체의 자기반성과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다는 것은 선조들의 후손을 위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추석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하늘과 땅과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명절을 통하여 대동정신이 길러지고 한민족의 동질성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명절, 가족 공동체가 아름답게 화목하는 명절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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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