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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


느헤미야 9장 진정한 참회는 찬양이 뒤따른다


숨 이병창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언약의 갱신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 증거로써 나팔절과 초막절을 준수하게 되었다. 9장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민족적인 참회를 통하여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5절은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현장을 설명하면서 말씀의 거울을 보고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그 이후에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9장에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회개의 기준은 말씀이어야 하고 회개와 참회 이후에는 죄에서 벗어난 자로서의 찬양이 뒤따라야 한다.

뼈아픈 실수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혀를 깨물며 다짐한다. 이런 다짐은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의식의 반영이다. 하지만 기억을 지워버린다 해도 상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이러한 심각한 상처는 행복했던 기억마저 후회로 물들게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현재화하여 재경험할 뿐이다. 그들은 과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듣는 척할 뿐이다. 이런 방식은 후회의 굴레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방식이다. 그러나 믿음에 의한 회개와 참회는 하나님께 나의 후회를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바쳤으면 다시 과거의 보따리를 매지 않는 것이다.

간혹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심각한 사람들이 있다. 40일 금식 기도를 몇 차례 했다는 데도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로움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현재를 감사와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에 매여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정한 기준이 매우 높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에 대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자신을 적절하게 대우할 줄 모르는 미숙함은 주로 자책으로 나타난다. 자책은 자기를 책망하고 벌주는 공격적 화풀이요 영혼의 바이러스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책의 골이 깊은 사람들은 진실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이 정한 이상적인 원칙에 걸맞게 자기 자신조차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기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는 사람은 넘어질 수 있다. 문제는 넘어진 것을 자책하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자신을 자책하면서 후회하고 원망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 넘어졌으면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면서 일어나 먼지 털고 노래 부르면서 자기 길을 가면 될 뿐이다. 예수를 배신했던 가룟 유다는 자책하다가 자살을 했고 베드로는 돌이켜 회개하고 성인의 길을 갔다.


@ 보색의 지혜


성서가 주는 지혜는 자신을 조이는 죄인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8장에서도 강조하듯이 성스러운 날이나 절기에는 노래하고 춤을 추는 가쁨의 날이었다. 가난한 자와 음식을 나누는 날이었다. 은혜의 날은 조였던 악기의 줄을 풀 듯이 나를 풀어내어 자유하게 하는 날이다. 바로 여기에 보색의 원리가 있다.

삶은 호흡이다. 한 번의 호흡에도 들숨과 날숨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숨과 숨, 그 사이의 공간에 머물면서 하늘의 뜻이 나를 통해서 흐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순명順命이라고 한다. 하늘의 디자인을 이 땅에 가져오는 것이 영적인 헌신이요 봉사이다. 순명의 깊이만큼 인간의식은 변화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일 때 ‘왜’라는 물음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그 때 컬러로 비유하자면 나를 주장하는 노랑이 사라지고 보색인 보라가 나타난다. 보라가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노랑은 자신의 행복을 우선시한다.

참회를 거쳐 기쁨으로 들어설 때의 변형은 지금까지 살아온 사고, 관점, 입장이 바뀌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자기 존재의 변화인 거듭남의 단계에 진입한다. 그것은 보라의 완성이다.

똑같은 컬러도 에고의 영역에서의 보라는 후회와 회한의 우울한 먹구름에 덮여있다. 그러나 그 먹구름을 통과하게 되면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지혜와 숭고한 목적을 갖게 된다. -의 부정성으로 다가오는 에너지를 +의 긍정으로 바꾸어진 보라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들의 컬러이다. 변성의 사람들은 이승과 영원한 세계의 경계 선상에서 삶을 관조하는 시야가 있기 때문에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의 자연에 대한 설계는 보색으로 나타난다. 이 이치는 신앙과 삶에도 적용된다.

모든 컬러는 서로 보완하는 상대 컬러를 가지고 있다. 이를 보색이라고 한다. 인간의 두뇌는 어떤 한 컬러를 집중해서 보다가 눈을 떼면 보색을 작동시켜 시신경의 조화를 맞추어주도록 한다. 내 삶의 중심과 조화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게 어떤 보색 관계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 건강한 개혁에는 조화가 있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있다. 민족의 대동단결을 이끌어내는 힘은 그의 사심 없는 페일 바이올렛의 영혼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역사를 꿰뚫는 혜안이 있는 지도자였다.

6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창 12:1-3)과 그에 따른 출애굽의 축복을 감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립은 하나님의 언약에 뿌리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언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은혜에도 불구하고 광야 40년과 이스라엘 멸망 때까지 저지른 배반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죄의 결과는 심판임을 분명하게 회상시키고 있다. 32절 이하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유다는 바빌론에게 멸망하여 포로시기를 겪은 것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죄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지속 되어 왔다는 고백은 선민의 모습을 상실했던 당시 사람들의 자존감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봄날에 산책을 하다 보면 노랑과 보라색의 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보라색 야생화를 보면 혹한의 겨울에 시달리다 못해 멍든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자연의 설계에 대한 오묘함이 빛깔 속에 들어 있다. 모든 컬러는 서로 보완하는 상대 컬러를 가지고 있다. 이를 보색이라고 한다. 인간의 두뇌는 어떤 한 컬러를 집중해서 보다가 눈을 떼면 보색을 작동시켜 시신경의 조화를 맞추어주도록 한다. 나에게 어떤 컬러와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보색 차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컬러테라피에서 보색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내가 지금 분노의 에너지(빨강)에 휩싸여 있다면 빨강의 보색인 파랑을 사용해야 한다. 방에서 화를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파란 하늘이나 바다를 바라본다든지 파란 옷을 입고 파란 컬러를 바라보노라면 분노는 곧 가라앉게 된다. 반대로 우울하고 기분이 침체되어 있다면 빨강색을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공간에서 노란 가구가 유독 눈에 거슬릴 때 잠시 눈을 감고 보라색을 떠올리기만 해도 싫음의 감정에서 벗어나 평정심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화상도가 아주 높은 티브이의 컬러에 과다하게 노출이 되어 힘들 때 녹색을 가까이하거나 녹색 컬러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된다. 녹색은 무지개의 중간 컬러로서 균형과 질서를 회복하도록 하고 가슴에 공간을 열어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녹색의 보색은 괴테가 발견한 영적 사랑의 컬러이자 제8의 컬러인 마젠타(꽃분홍)이다. 주황의 보색은 남색이다. 나에게 작동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를 파악하고 중화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보색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봄날의 산천 속에는 이런 보색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다. 아래 보색 차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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