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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느헤미야 13장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소서


숨 이병창



이제 13장, 느헤미야서의 마침표를 찍는 장이다. 이 장은 구약 역사의 마지막이며 역사가 침묵하는 신약성서와의 중간기로 들어서는 의미가 있다. 13장은 느헤미야의 입장에서 보면 가슴 아픈 기록이다. 여호와 유일 신앙과 선민으로서의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느헤미야의 노력은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물거품이 되었다. 강력한 개혁의 동역자였던 에스라도 없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신앙 부재와 민족적 자존감을 상실하는 대혼란이 엄습하였다. 13장은 느헤미야가 페르샤를 다녀온 이후(B.C.432년) 다시 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기록하고 있다.

1-3절 – 모압과 암몬인을 비롯한 이방인과의 분리 촉구

4-9절 – 성벽 재건 방해의 주범 중 하나인 도비야를 성전 골방에서 축출하고 정화한 사실

10-14 – 십일조 납부가 되지 않아 레위인들이 이탈한 상황을 정리

15-22 – 안식일 지키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고 시정한 일

23-28 – 산발랏의 사위가 된 제사장을 축출.

29-31 – 범죄자에 대한 저주와 순종한 자에 대한 축복 기원


@ 느헤미야 개혁의 핵심 주제 – 안식일


느헤미야는 현실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개혁의 중심축을 ‘안식일 개혁’으로 보았다. 안식일에 대한 규례는 십계명의 4계명으로 나타나 있다(출 20:8-11. 신 5:12-15). 이날에는 노동이 절대 금지되었다. 그리고 거룩한 날로 구별지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휴일도 없이 일하는 노예 생활을 했던 역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에게 있어 안식일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동질성을 연결하는 고리였다. 이스라엘의 혼란은 이 두 가지 주제가 흔들릴 때 발생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예언자들은 안식일의 회복 문제를 강력하게 언급하고 있다. 안식일은 개인의 신앙과 민족의 동질성을 잡아주는 주제였다.

포로 시대에 활동했던 에스겔 선지자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서 안식일의 거룩성을 강조하였다(겔 22:8, 26:23). 느헤미야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와 영맥을 함께하면서 안식일을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핵심 주제로 보았던 것이다. 느헤미야 시절에는 이방 나라의 포로로 끌려 갔던 사람들이 이방인의 풍습에 젖어 살던 시대였다. 그들은 안식일에 노동하고 장사하는 일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었다.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느헤미야의 개혁이 질긴 고무줄을 당기듯이 원위치로 돌아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조선이 망할 때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가 있었듯이 이방인의 앞잡이 노릇을 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산발랏과 혼맥으로 연관된 데 결정적인 원인이 있었다(28절). 느헤미야서를 마무리하면서 바벨론 포로시기를 요약해 보도록 하자.


@ 남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바벨론 제1차 포로 : B.C.주전 605년-여호야김 제3(혹은 4)년, 남 유다의 멸망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느부갓네살이 있다. 그는 재임 원년에 침공하였다. 제1차 바벨론 포로 때에는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이 끌려갔다(단 1:3). 여호야김은 처음 3년은 바벨론을 섬기다가 다시 애굽과 동맹하여 반(反)바벨론 정책을 펼쳤고(왕하 24:1), 주전 602년 쇠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성전 기구들을 약탈당하였다(왕하 24:2, 단 1:1-2, 5:2).

바벨론 제 2차 포로 : 포로 시기 – 주전 597년. 여호야긴 즉위년, 느부갓네살 8년

여호야긴은 주전 597년에 즉위하여 3개월 10일을 통치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왕하 24:8-12, 대하 36:9-10). 왕과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의 권세 있는 자들이 포로로 끌려갔다(왕하 24:12, 15). 이때 용사 7천 명을 포함하여 방백과 백성 총 1만 명, 그리고 공장과 대장장이 1천 명이 끌려갔다(왕하 24:14-16).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도록 하여 남 유다를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여기에는 에스겔 선지자와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의 조상도 포함되어 있었다(겔 1:1-3, 에 2:5-6).

바벨론 제3차 포로 시기 – 주전 586년. 시드기야 11년, 느부갓네살 19년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권면(렘 27:12)을 듣지 않고 반(反)바벨론 정책을 고집하였고(왕하 24:20, 렘 27:12-13, 37:2), 바벨론은 시드기야 제 9년 10월 10일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왕하 25:1, 렘 39:1, 52:4). 30개월 동안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있는 동안 자녀를 잡아먹을 정도로 비극적 참상이 빚어졌다(애 2:20, 4:10, 사 9:20, 겔 5:10).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4월 9일은 유다인들에게 바벨론 유수 기간 내내 금식과 애통의 날로 지켜졌다(슥 7:5, 8:19).

성이 함락되던 때 시드기야는 밤에 도망하다가 잡혀 바벨론 왕에게 심문을 당하였다.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다(왕하 25:4-7, 렘 39:4-7, 52:7-11).


@ 느헤미야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유다의 멸망 사건을 살펴보면 지도자의 판단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볼 수 있다. 유다의 멸망은 16대 요시야 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북방의 앗시리아와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는 바벨론이 있고 남쪽 이집트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나라였다. 바벨론을 막기 위해 앗시리아와 이집트가 동맹을 하였고 갈그미스에서 싸우고자 이집트의 느고는 길목에 있는 나라 유다의 요시야에게 통행을 청하였다.

느고는 사자를 보내어 화친을 요청하며, 이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자신이 싸우려는 대상은 요시야 왕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대하 35:21). 그러나 요시야 왕은 듣지 않고 이집트와 직접 전투를 벌이다가 전쟁터에서 이집트 궁수가 쏜 화살에 중상을 입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죽고 말았다(대하 35:23). 불필요한 전쟁에 끼어들어 자신도 죽고 이 일로 나라도 기울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을 위해 싸웠지만 결국은 바벨론에 처절하게 나라가 망한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개혁은 느헤미야라는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힘은 중심에서 나온다. 나라의 중심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 중심이 바로 서면 전체가 하나 되어 힘을 쓸 수 있다. 느헤미야는 성곽공사를 하고 난 후에 감사의 제사를 크게 드렸다. 그때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멀리 들렸다(12:43). 남 보기에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를 느끼는 마음이 영성의 핵심이다.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존재와 일에서 감사를 느끼는 것은 그가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사료 먹는 동물은 주인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사를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선에 감사가 있다. 돼지에게 가장 좋은 것은 많은 사료이지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감사와 기쁨이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은 하늘과 땅과 자연 만물에게, 부모와 이웃과 친구에게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선물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믿음이다. 감사를 놓치게 되면 불평과 짜증과 시기심이 찾아오게 된다.

느헤미야는 일상의 삶 속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동작 그만 하듯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은 감사와 기쁨을 회복하는 날이다. ‘즐거워하다’ ‘기뻐하다’(사마)는 말은 ‘빛이 난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바르게 사는 이가 치켜든 횃불은 환하게 빛나나, 못된 짓 일삼는 자들이 들고 있는 등불은 꺼지고야 만다.” (잠 13:9)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리면 얼굴도 영혼의 빛도 어두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빛이 드러날 수 없다. 아무쪼록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얼굴도 삶도 모두 광채나게 살아가기를 소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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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재의 아침 가을 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