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58762
  • Today : 305
  • Yesterday : 638


2021 덕분절 (추수 감사 주일)

2021.11.22 14:47

도도 조회 수:427



20211121


2021 덕분절 (추수 감사 주일)


마태복음 4:1-11


숨 이병창




한국교회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로 대표되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교회 선교 활동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마국에서 추수감사절은 공식적인 국경일이다. 1863년에 링컨 대통령은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 감사 휴일로 선포하는 법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링컨의 빛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혜롭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이 합법적인 국경일이 된 것은 1941년 국회가 추수감사절을 11월 넷째 주 목요일로 재승인한 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수 천 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추수 감사의 의미를 가진 추석이 명절로 지켜져왔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을 추석에 해야 된다는 논의가 있어왔다. 나는 교회의 추수감사절과 한국 땅에서 지켜져온 전통적 추석의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하면서 농경문화의 유산이었던 추수감사절이라는 용어부터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찾은 말이 덕분절이다.


어떤 생명이든지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덕분에 살고 유지된다. 인간의 경우 부모 덕분에 생명으로 출현하고 성장한다. 나무 덕분에 숨을 쉬고 농부 덕분에 밥을 먹고 산다. 선생님 덕분에 배움이 열리고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있어 발 뻗고 잠을 잔다. 모든 덕분을 한 단어로 줄이면 하나님 덕분이다. 하나는 일체를 담아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는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을 철부지라고 한다. 성서는 하늘과 땅과 사람과 자연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한다. 사료 먹는 동물들은 주인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만약에 개나 고양이, 돼지나 소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다면 그것은 동물을 초월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은혜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를 온전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천박해지는 것은 ‘덕분’에 대한 자각의식이 사라져 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자각이 사라지면 무엇을 먹고 마실까 하는 걱정으로 살다가 죽는 인생이 되고 만다.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고 말씀하였다. 말씀을 덕분이나 힘으로 대치해도 좋을 것이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밥으로 사는 사람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힘과 덕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큰 밥그릇이 자신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은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서 쓸데 없이 많이 쌓아두는 데만 힘쓰다가 허무하게 죽어간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하여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민주국가를 실현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영악한 머리로 교활한 계산을 하면서 뇌물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뱃 속에 있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의식이 성장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이 커지면 나에서 우리로, 개인의 사익에서 공동의 선으로 발전해 간다. 그리스도인은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타서 쓴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 가운데서 주어진 것을 먹고 마신다. 오늘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나에게는 오늘 하루분의 양식이면 충분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넘친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시던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면 만족하게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오늘의 세상은 너무 많이 먹어서 병들고 죽어가는 현실이 되었다. 먹는 것이 목적이 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인간에게 생각하는 힘이 없다면 그의 밥은 밥이 아니라 사료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모아 놓으면 싸움과 분열이 일어난다. 믿음이란 사료 먹는 동물 수준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말씀의 힘은 생각하는 힘이다. 탐욕을 버리고, 그 탐욕에서 파생되는 걱정 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삶의 선택이다.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가, 문제가 될 수 없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물에서 수소 폭탄을 만들 수도 있고 자동차와 공장을 돌리는 수소를 만들어 낸다. 개인이나 문명의 힘은 생각의 힘이다. 이 힘의 뿌리가 ‘덕분’을 깊이 인식하는 데 있다.


내가 씨앗을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물을 준 것도 아닌데 농작물은 저절로 커서 수확의 기쁨을 농부에게 안겨 준다. 금년 한 해도 저물어 가는 이 때에 나는 어떤 덕분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 중에서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덕분’은 무엇인가?


전시장에 있는 액자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 덕분에 행복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에게 말해 보자. ‘주님 덕분에 행복합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님 덕분에 행복합니다’하고 힘있게 외쳐 보자. 서로 주고 받은 느낌은 어떠한가?



20211121_13533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