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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에스더 8장 인생의 반전은 컬러에 있다


숨 이병창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서 회수한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고 하만의 재산은 에스더에게 주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집과 재산 관리에 관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1-2절). 3-14절은 에스더의 간청에 의해 왕이 유대인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조서를 내린 일을, 15절 이하는 모르드개가 금관을 쓰고 백성들의 환호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으로 개종했다는 내용이다. 유대민족의 극적인 구원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개종하게 되었다는 내용은 느헤미야나 에스라서와는 달리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사고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 이방 사람들에게나 가까이 있던 우리 유대 사람들에게나 다같이 평화의 복음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낯선 나그네도 이방인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족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안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엡 2:17, 19)


@ 모르드개의 신분 역전


모르드개는 성문 지킴이였고 민족의 환난을 앞두고는 장례식 복장을 한 채 통곡하고 있었다. 그런데 8장에서 그의 옷차림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모르드개는 자줏빛 옷감과 흰 옷감으로 만든 궁중 예복과 하얀 세모시에 자색털로 장식한 외투를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어전에서 물러 나왔다.”(15절)

옛날에 옷이란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군주국가에서는 지위에 따라 공식 예복의 컬러가 달랐다. 로마 황제의 망토는 자주색이었고 교황과 추기경은 보라색 예복을 사용하였다. 자주와 보라색은 신분을 고하하고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페르시아에서 왕은 자주색 옷을 입었고 총리급은 푸르고 흰 조복을 입었다. 모르드개가 입었다는 옷은 왕에게서 총리의 직급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공식 예복 위에 걸친 외투의 색깔이 왕의 예복 컬러인 자주색이었던 것은 그에게 내린 옷이 왕의 하사품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모르드개는 최상류 귀족들이 사용했던 금관을 하사받았다. 모르드개의 옷 컬러는 인생 반전의 상징이다. 컬러가 바뀌면 인생이 바뀌어진다. 광장의 땅바닥에서 울부짖던 절망의 인생이 가마를 타는 인생으로 뒤집어진 것이다. 그 뒤집힘은 하늘이 나를 통해서 드러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하는 불과 열의 영성으로 역사의 현장 속에 사랑을 드러낸 결과였다. 자주색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하는 모닥불 주변에서 기쁨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컬러이다. 자주 컬러는 보호의 능력을 나타낸다. 제국의 황제는 제국의 보호자이다.

흰빛(클리어)은 순결, 고결, 정화, 해독의 의미가 있다. 순결을 지켜내기 위한 ‘지켜냄의 고난’을 나타낸다. 순결에서 더 지고해지면 성결이다. 성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강림하는 사다리이다.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러하시듯 타인에게 사다리가 되어 준다. 오라소마 바틀에서는 빨강/핑크(80)이다. 자신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풀어낼 때 우리는 성결해질 수 있고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되돌아갈 수 있다. 그 길은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고, 둘째 아들이 세상에서 온갖 경험을 하였듯이 나의 까르마(성격)를 넘어가는 여정이다. 나의 까르마가 내가 학습해야 할 나의 길을 예비한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은 열정이다. 열정이 사라지면 회색빛 인생이 된다.

흰빛(클리어)은 눈물이다. 한 방울의 눈물 속에도 무지개가 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여러 가지 눈물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눈물을 흘리건 간에 그 속에서 약속의 무지개를 보는 것이다. 모르드개는 절망의 눈물 속에서 희망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무지개로 강림하셨다.

금관은 축복의 잔이 넘치는 상징이다. 모르드개는 고난을 통해서 정금 같은 믿음과 지혜와 영예와 부를 한꺼번에 갖게 되었다. 금 면류관은 왕을 통해서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었다. 금빛은 ‘무지개의 끝에서 황금단지를 발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금빛의 중요한 주제는 자기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내 몸뚱이 만한 금덩어리 보다도 더 귀한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아가 내 영혼의 가치는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지구보다도 귀한 것이 내 영혼의 생명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금빛 지혜이다.

금빛 지혜는 이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제시해 준다. 봄의 새싹은 무조건 나온다. 돌이 있건 단단하건 가리지 않는다. 사춘기의 자식이 이유 없는 반항을 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나 이유 없는 반항이라 하더라도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장을 위한 필수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눈으로는 이유가 없이 보이지만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반항의 불길이 남김없이 타버리도록 부채질하면 이유 없는 방황을 통하여 이유를 찾게 되지만 그 경험을 하지 못하면 평생 자립하기가 어려워진다. 밥을 굶어 봐야 밥을 알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된다. 그래서 금빛을 삶을 살아내는 컬러라고 말한다.


@ 전화위복(轉禍爲福)


에스더서를 읽다 보면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또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도 생각나게 한다. 불행이나 행복도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 속에서 길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불행으로 보는 것도 지나놓고 보면 행복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눈물 속에서 무지개를 바라보는 믿음의 금빛 지혜가 있어야 한다,

삶이란 어떤 커트라인 정해 놓고 거기에 도달하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난하건 부자건 상관없이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 순간 하나님이 숨을 주시는 것 보다 큰 복이 어디 따로 있는가. 지난 일주일 동안 남해의 섬을 여행하면서 얻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몸을 입고 입학한 지구학교는 유한을 배우는 곳이다. 우리는 유한의 학습을 통해서 무한을 깨닫게 된다. 나는 나의 삶에 대한 모든 승인을 하겠다.’

모르드개는 검정과 같은 절망을 황금빛으로 바꾸었다. 모르드개처럼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일체가 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