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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 - 숨 이병창

2022.07.18 08:10

도도 조회 수:17

20220717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25-34


숨 이병창


얼마 전, 전시장에서 출구를 못 찾아 헤매는 꾀꼬리를 붙잡아 내보내 준 적이 있었다. 그 새가 날마다 집 앞에 찾아와 놀고 있어 관심사가 되고 있다. 도도님 말로는 은혜 갚으려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한 쌍의 꾀꼬리를 바라보며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26절)라는 말씀이 맴돌았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인간의 몸과 생명을 망치는 핵심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과 몸의 중요성을 망각할 때 과도한 염려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다(25절). 실제로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90% 이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즉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인생을 부질없게 만드는 것은 미래의 걱정, 과거의 후회, 과도하게 타인을 의식하는 것, 해결의 의지를 내려놓고 무작정 참고 사는 것 등이다. 삶이 곤궁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 있다. 과거에 대한 회한에 사로잡힐 때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우울증은 과거의 후회라는 포승줄에 묶여있을 때 나타나는 증세 중에 하나이다. 우울증은 그 사람이 영적인 신앙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마음을 하늘에 두는 것이 아니라 땅에 두고 있음을 증거 해주는 것이다.


@ 염려 – 마음의 분열과 찢어짐


염려하다(메림나오)는 ‘분열하다’ ‘찢어지다’라는 뜻이다. 이는 근심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물질의 문제로 염려하여 마음이 혼란에 빠지면 영혼은 길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먹고 입는 문제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음식과 의복을 위해 사는 가치전도가 일어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인생의 불행이 발생한다. 이때 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삶의 조건들이 나의 우상으로 군림하게 된다. 지금 나의 마음 상태가 분열과 찢어짐으로 상해 있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서 발생한 것인가를 살펴보는 지혜가 시급하게 필요하다.

예수는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공중의 새를 통해 교훈하고 있다. 새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어찌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강조하신다. 염려와 근심은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 강조하는 말씀이다.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현대어 성서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개역관주성서)

개역성서에 등장하는 키(헬리키아)는 ‘생명’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 ‘한 자’는 구약에서 길이를 재는 단위인 ‘한 규빗’이다. 이는 보통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이다. 현대어 성서는 헬리키아를 생명으로 번역했다. 염려는 한 자의 거리를 갈 수 있는 시간만큼이라도 연장할 수 없다.


@ 생각하여 보라


새에 대한 말씀에 이어 들의 백합을 예로 들어 말씀하고 있다.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8절)

여기에서 두 성서의 본문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개역성서는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되어있다. ‘생각하여 보라(카타만다노)’는 그냥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깊고 정확하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진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 인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인간의 염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를 두기보다는 조건 반사적인 감정의 반응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건강한 사고력을 가진 사람에게 맹목적인 염려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과도하게 염려하면서 전전긍긍하는 방식의 삶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예수께서는 물질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은 불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료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인간은 걱정과 염려의 파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강한 명령어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강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벌벌 떨면서 울울하게 살지 말고 넉넉하고 관대하고 호탕하게 탕탕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고 살아가라’고 우리를 향해 소망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우리 모두 새를 보고 들꽃을 바라보며 깊이 생각해 보자. 한없는 은혜의 감동 속에 잠겨 보자.


여물


인간님네 소막에서 바라본

누렁소의 눈망울에는

번뇌가 없었다.

송아지도 어미소도

한가롭게 여물을 씹고

잠잘 때 잠만 자고 있었다.

이 밤에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것은

사람뿐이겠지

번뇌의 여물 먹고 사는

인간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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