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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시간 - 숨 이병창

2022.07.24 22:03

도도 조회 수:91

20220724


끊어진 시간

              마태 13:53-58

 

                                         숨 이병창

 

하나님 나라가 언제 시작되느냐?’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마태 24:23-28, 37-41. 누가 18:20-21)라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과 예수를 추종했던 사람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하늘나라를 원했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늘나라와 예수이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예수 당시 사람들과 예수의 엇갈리는 화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열쇠가 되는 말이 있다.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별하는데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끊어진 시간이라 한다. 크로노스가 땅속 7년을 보내는 굼벵이라면 카이로스는 온몸을 비워 노래하는 매미의 시간이다. 굼벵이의 시간이 끝이 나야 카이로스 시간이 될 수 있다. 하늘나라는 순간 속의 영원’ ‘영원 속의 순간이 만나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참을 깨치는 사건이고 내가 나를 아는 시간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야 인간은 인간이 된다. 순간 속에서 영원을 체득하는 시간이 카이로스 시간이다.

 

@ 창조의 원리

 

성장의 임계점에서 존재의 도약이 일어나야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고 존재의 원리이기도 하다. 카이로스가 없으면 삶은 무의미해지고 지루해진다. 책을 읽어도 눈길이 멈추는 곳이 있어야 책을 읽는 보람이 있다. 경치를 구경해도 발길이 멈추고 사진이라도 찍는 경험이 있을 때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다.

지난주 완도에서 강진 방향으로 가다가 가슴이 뛰는 경험이 찾아왔다. 왠일인가 하고 둘러 보니 예사롭지 않은 봉우리가 보였다. 차를 멈추고 인가를 찾아 물어보니 투구봉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경치건 사람이건 독서이건 잠시 멈추는 카이로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만남과 의식 차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하나님 나라도 흐르는 시간이 끊어진 시간이 될 때 찾아온다. 바로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천당개념과 갈라서게 된다.

천당이나 극락은 모든 인간이 죽은 뒤에 가기를 원하는 원초적 이상향이기 때문에 종교가 존재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예수의 천국은 죽음 이후에 가는 저승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찾아야 한다. 그 공간은 나의 내면외면에 있다. 나의 내면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외면은 그 다음에 찾아지는 공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실레이아 곧 하나님의 영역과 명령으로서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은 無所不在하시다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어느 곳이든지 펼쳐져 있다는 뜻으로 새겨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마음 밭에 심어지고 가꾸어지고 성장하면 하늘의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원인을 심고 가꾸는 자는 자신과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자이다.

 

@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다석 류영모는 그저 믿는다는 것은 병이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실천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라 하였다.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거나,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을 실행하는 실천이 없고 일상적 삶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참된 신앙이 아니라 했다. 늘 바라보던 산천초목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예배가 멈추는 시간이 될 때 나를 찾고 회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참된 믿음을 만나게 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힘과 그리스도로부터의 지혜와 성령으로부터 사랑의 힘을 얻어 살아가는 데 있다.

예수께서 카이로스의 를 강조하신 것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를 읽어내는 지혜의 능력을 기르고 체득하라는 데 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보험을 들듯이 믿는 신앙이 아니라 수평의 흐름에서 수직으로 올라서는 성장의 도약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도마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여러분은 하늘과 땅의 얼굴을 읽어내면서 여러분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순간을 읽어내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는 데 실패한 원인에 대해 예수께서는 그들이 지금 이 순간을 읽어내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 어디서 저런 지혜와 능력을 얻었을까? 그는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그의 형제들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54-55) 고 말했다. 과연 그들은 다 알고 있었는가?

 

@ 영원한 생명의 길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지금도 많은 교인들이 예수의 고향 사람들 같은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복음서를 통해 예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예수에 대한 설교를 수십 년 들었으니 예수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예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믿으면서 예수를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신앙이 제 자리를 찾으려면 어제까지 알았던 예수가 오늘 전혀 다른 예수의 얼굴로 바꾸어지는 순간이 찾아와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도약이 일어나는 카이로스이다.

그 순간은 이 순간을 읽어내는 법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 바로 여기에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예수께서는 집단적인 종교인의 길을 말씀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는 삶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영원 속에서 오늘을 찾고 오늘 속에서 영원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셨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교우들, 가족들을 다시 보자. 눈 앞에 펼쳐진 산천초목을 자세히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