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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숨어 계신 하나님

2022.12.06 01:51

물님 조회 수:38


20221204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나님


마태 6:25-34


숨 이병창


지난주 우리는 창세기에 나타난 생명에 대해 나누었다. 사람(아담)은 땅(아다마)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창3:19) 하나님은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창2:15). 히브리어 본문은 ‘돌보게’를 “섬기고(아바드), 지키고(샤마르)”라 하고 있다. 인간은 땅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이다. 여기에서 땅은 인간이며 자연이다. 등기부 등본에 내 이름이 있으면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런 인간의 무지와 오만은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고 모든 생명을 멸종시키고 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께서 사람만, 모양을 빚어 만들어 코에 생명의 숨을 넣어주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인간의 코에 불어 넣은 ‘숨 쉬는 생명’(네페쉬 카야, 창2:7))은 동물들에게도 똑같이 ‘생명의 숨’(네페쉬 카야)을 주셨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반자(에쩨르)로 지어졌다.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과정과 마찬가지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셨다”(창2:19). 나는 창세기 2장 19절을 외면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 현실이 안타깝다.

모든 생명체들이 동반자가 된 세상을 기쁨이라는 뜻의 ‘에덴’이라 한다. 에덴은 모든 숨 쉬는 것들의 보금자리이다. 옛날 에덴이 어디 있었느냐?를 찾는 것은 경전을 읽는 태도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숨을 쉬는 공간으로서 지구를 에덴으로 창조하셨고 관리자로서 인간을 세웠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전제이다. 말로만 이웃 사랑에 머물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생명 감각의 마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만물은 하나님의 몸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자신과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함부로 하는 데 있다. 내 안에 가리워진 영과 신성에 대한 무지에 있다. 하나님은 내 육신 안에서 숨겨져 있다. 16세기 독일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살아가면서도 위대한 영혼의 사람이었던 ‘야콥 뵈메(Jacob Boehme)의 고백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만물의 하나님은 바로 그 단 하나의 몸이시다. 그러나 죄야말로 그대가 그를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이유이다. 죄와 함께, 죄로 인해 그대는 이 커다란 신성의 몸속에서도 썩어질 육신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뼛속의 골수가 살로부터 가리워져 있듯이 하나님의 힘과 덕은 그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대가 영 안에서 육신의 죽음을 돌파하면, 그때 그대는 숨겨진 하나님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썩어질 육신은 생명의 흐름에 속한 것이 아니라서, 빛의 생명을 자신에 고유한 것으로 받을 수도 간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 가운데 있는 빛의 생명은 육신 가운데 일어나 스스로를 향하여 발생하며, 그로부터 빛을 알고 이해하는 또 다른 천상의 몸, 살아있는 몸이 생겨난다.”


굼벵이의 껍질을 깨고 매미가 나오고, 알껍질을 깨고 새가 나오듯이 인간은 이 지구에 있는 동안 자신의 육신에서 빛(천상)의 몸이 나와야 한다. 야곱 뵈메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가리우고 있는 것이 곧 죄라고 말한다. 죄로 인해 인간은 저질화된 에너지(disqualified energy)적 존재가 되고, 그의 마음은 암성되고 딱딱하게 굳어지게(calcified) 되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악한 일을 행하기 전에 그는 이미 이 세상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죄는 내가 나답지 못한 상태를 가져온다. 빛의 질료를 자기 파괴의 에너지로 오용되게 한다. 황금빛 지혜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꾸어질 때 내 생각과 감정의 파동은 어둠(죽음)에 파묻히게 된다. 나는 물질의 덩어리(땅)일 뿐이다. 지금 나는 어떤 파동의 주파수를 내고 있을까? 어둠의 주파수가 빛의 파동으로 바꾸어지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내 빛의 주파수를 찾게 될 때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나님이 드러난다. 바로 이 일이 시급하다.


@ 오늘 걷는 길 - 말씀의 실습장


오늘 예배 마치고 진안 고원길을 걷기로 했다. 오늘의 자리를 추진해 준 영님에게 감사한다. 함께 가는 분이나 동행하지 못하는 분들 모두 ‘공중 나는 새와 들의 백합을 보라’하신 말씀을 묵상하며 걷기를 바란다. 이름으로 바라보고, 그 생김의 형상으로 바라보기 전에 새와 풀의 생명과 그들의 숨과 에너지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염려를 내려놓고 걷는 길이기를 바란다.

피의 핍박 시대였던 1세기 초대교회 교인들의 이름 앞에는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의 ‘티테이오스’를 붙인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 우리들이 걷는 진안 고원길은 염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길이었으면 한다. 각자 자신의 이름 앞에 ‘티테이오스’를 붙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