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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 그 감미로운 행복지수
 

 

 

우리가 만난 그날은 시월 중 가장 쾌청한 날이었습니다.

자작시와 애송시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와 찬양이 이어지면서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조촐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자작시는 직접 썼기에 담담하게 낭독을 해도 의미가 있지만

애송시낭송은 그 시가 가진 의미를 소리로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그 날, 처음으로 애송시를 낭송한 나는 마치 노래를 부르듯이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시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나 낭송하는 일이나 둘 다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게 기를 뿜고 나면 마치 몸 안에 응고된 응혈을 뽑아낸 것처럼

새로운 엔돌핀이 생성되어 억눌렸던 기운들도 풀리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그 카타르시스가 평안으로, 그 평안이 또 다시 기를 뿜어내는 기쁨이 될 때,

행복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전에는 사람의 잠재능력이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지능지수인 IQ,를 중요시했지만

근래에는 감성지수인 EQ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이란, 그리고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이란

지능을 통한 이성이나 지식이나 논리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박동으로 뛰는 심장이 느낌과 감성으로 사랑을 잉태하게 되고,

그러한 사랑을 주고받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예수께서도 온전한 삶인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하셨지요.


 

IQ를 통한 지식과 이성과 이론으로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도,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지만 EQ를 통한 순화된 정서와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날, 자작시나 애송시나, 노래 등 모든 순서마다

우리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처음부터 행복이라고 여기는 조건들만이 아니라

때로는 불행처럼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도 행복이 이루집니다.


 

우리의 삶에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장애물들,

원하지 않는 어떤 일들의 지연이라거나 불가피한 계획변경,

방향수정 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측하고 계획하지 못한 다른 일이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요셉에게 닥친 비극적인 시련은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여

가족의 구원을 이루게 하셨고,

바울이 억울하게 맞고 옥에 갇히는 고난을 통해

살아 계신 그 분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한 것과 같은 것이지요.


 

나의 실망이라는 ‘disappointment’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appointment’에서

dis의 유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제는 가랑비가 가랑잎 소리로 내리더니

지금은 나무마다 찬바람에 떨며 잎을 떨구고,

하늘은 눈이 내릴 것처럼 회색빛으로 내려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낙엽이 진다고 해서, 또 눈이 온다고 해서 꿈이 없겠는가!


단풍이 들고 낙엽이 쌓이는 곳 어디에나, 눈이 내리는 자리 그 어디에나,

낭만이 있는 곳에 꿈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예수마을 (063)464-9484
http://cafe.daum.net/bethesd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