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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 희망편지

2012.06.10 04:23

물님 조회 수:5545

중고 핸드폰을 초등학교 졸업선물로 주었습니다.
부모 있는 아이들 같았으면 '쓰던 것을 주면 어떡해요.
에이, 이게 뭐예요!' 라고 실망과 불만을 터트렸을 텐데
그 아이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서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저에게 오기 전에는 동생들과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금방 좋았다가 금방 싫다는 등 조울증 증세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미움을 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온 뒤로 그러한 모습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 잃은 슬픔 대신에 쾌활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선생님을 돕는 등 기특한 여학생으로 변했습니다.
어버이날에는 붉은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힘내시고 화이팅!

아이가 제 책상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글입니다.
받을 줄만 알던 아이, 받고서도 감사함도 모르던
그 아이가 감사와 배려를 아는 소녀로 변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힘이 나서 파이팅 했습니다.
공격적 행동과 조울증 증세는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피부색 차별과 불우한 양육 환경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보살폈더니 향긋한 소녀가 됐습니다.
아이에서 소녀로 변하면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교복을 맞추러 가는데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입학식 전인데도 종일 교복을 입고 다니며 자랑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중학교, 소녀의 꿈은 그렇게 부풀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조울증 증세에다 위경련까지 일으켜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손목에 감겨진 붕대를 풀었더니 상처가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으니 중3 일진 언니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술 먹으라고, 담배 피우라는 걸 거부했더니 칼로 팔목을 그었다는 것입니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제가 돌보는 아이에게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학교에 찾아가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사건이어서 진상조사부터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손목의 상처는 스스로 그었다는 것입니다.
왜 거짓말을 했는지, 자해를 했는지 물었더니

"학교가기 싫어 서요!"
-왜 학교가 가기 싫은데?
"학교 선배들이 저만 보면 '마이콜'이라고 놀리잖아요!"

'마이콜'은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검은 피부색과 곱슬머리의 가수지망생 흑인입니다.
아이의 검은 피부와 곱슬머리를 빗대어 놀린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평소에도 피부색과 곱슬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피부는 어쩔 수 없지만 곱슬머리만큼은 펴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여학생처럼 튀지 않는 평범한 모습으로 학교 다니는 게 바람이었는데
우스꽝스런 캐릭터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사춘기 소녀는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죽어도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설득하고 달래보다가 으름장도 놓았습니다.
담임선생님까지 찾아왔지만 울음을 터트리며 등교를 거부합니다.
더 이상 강요했다가는 불행한 사건으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출신 초등 5학년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재수 없는 아이'로 낙인찍혀
집단 놀림을 받다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눈앞이 캄캄해 집니다. 이제야 시작인 것 같습니다.
제가 돌보는 지구촌학교 아이들도 중고등학생이 되면
그만큼의 차별, 왕따, 놀림에 크게 상처받게 될 것이고
그 고통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고립되면 자살도 생각할 것입니다.
지구촌학교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한국의 뿌리 깊은 차별문화에 병이 들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문화 자녀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다문화 희망세상을 만드는 일은
험난하고도 머나먼 길, 그래서 더욱 가야한다고 거듭거듭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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