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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人(성인)이 되는 길 김홍한목사

2012.06.10 08:13

물님 조회 수:5528

성인이 되는 길

인생은 흘러흘러 知天命을 훌쩍 넘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소시적에 내가 장차 무엇이 될까를 심각히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이것저것 진로를 생각해 보았지만 모든 것이 당최 시큰둥하였다. 원대한 꿈도 꾸어 보았지만 너무 피곤하고 공허한 삶일 것 같아 일찍이 포기했다. 하고자 하여도 학업성적 등이 따라주지 않으니 현실성도 없었다.

김구선생은 “평생을 맘 좋은 사람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나는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기로 했다. 어찌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내 딴에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면서 하나의 목표가 정해졌다.

聖人(성인)이 되는 것,

성인까지는 못가더라도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이 형성된 사람, 죽음 앞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찌 이 꿈을 꾸게 되었을까? 이런 꿈, 저런 꿈, 헛된 꿈들을 하나하나 제외하다 보니 성인의 꿈만 남았다.

인생의 목표를 성인이 되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정말이지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생각하고 길게 생각한다면 누구나 갖게 되는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 목표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가 없다.

성인이 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인간들의 궁극의 꿈이다. 진정한 꿈은 하나님이 꾸어 주시는 꿈이다. 꿈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꾸어온 것이기에 꿈이다. 하나님이 꾸어주시지 않고 내 멋대로 꾸는 꿈은 헛된 망상이요 욕망일 뿐이다.

성인이 되고자 한다는 나의 꿈, 나는 그것을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너무나 거창하고 교만한 생각이라 비웃음 당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깊은 사람들은 모두 그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도 감히 말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유학의 가르침에서 군자의 인생목표 또한 성인이 된다는 것이다. 불교도 그렇다. 해탈하여 성불하는 것이 불자의 인생목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거듭남”이 성인됨이다. “천국 간다”는 것이 성인됨이다. “구원 받는다”는 것도 성인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거듭났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近思錄(근사록) 存養編(존양편) 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였다. 염계 선생이 말하기를, “될 수가 있다.” 하니, 요령이 있느냐고 물으므로 있다고 하였다.

“그 요령이 무엇입니까?” 하니, 말하기를, “專一(전일)이 그 요령이다. 전일이란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마음은 고요하여 비워지고 마음이 외물에 느끼더라도 바르게 움직인다. 마음이 고요하고 비워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천하의 이치가 통하게 된다. 움직임을 바르게 하면 곧 공정해지고, 공정하면 천하의 일은 넓고 크게 될 것이다. 밝게 통하여 공정하고 넓으면 성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였다.

염계선생의 가르침이 쉽고 명쾌하다. “욕심을 없애는 것”은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가능하다. 불교의 無我가 별것 아니다. 無慾이 無我이다. 바울선생이 말씀하신 “내안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는 것도 無慾, 無我다.

기독교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매우 욕망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적극적 사고방식”,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들은 모두 욕망을 채우라는 웅변들이다.

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안다. 욕망의 종교는 불신앙의 종교이다. 그런데 기독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욕망이 종교가 되어 있다. 오늘날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러했다. 눈에 보이는 종교는 늘 그렇게 욕망의 종교다.

예수의 가르침은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천국을 유산으로 받을 자라는 것, 하늘에 올라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 즉 성인이 되라는 것이다. 성인이 되는 것은 간절히 바라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내가 죽는 것, 즉 헛된 욕망을 죽임으로 가능한 것이다.

새교회 설립예배시(2010년 9월) 마련한 글이다.

“…

새교회야 친절하지 말아라.

친절한 것은 간사한 것,

내가 언제 친절하더냐?

그저 투박한 통나무처럼 되라.

사람들이 오히려 너에게 친절하리라.

새교회야 너는 사람을 쫓아내는 교회가 되어라.

복 받겠다고 하는 이는 쫓아내라. 내가 줄 복이 없다. 너희가 믿는 예수는 지지리도 복이 없던 이였다.

봉사하겠다고 하는 이도 쫓아내라. 그런 자는 틀림없이 교만하고 또 교만하다. 그 교만은 죽어야만 치유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교회가 좋고 저런 교회가 좋다 하는 이도 쫓아내라. 틀림없이 주인노릇 하고자 하는 이일 것이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쫓아내어 텅 빈 교회가 되었을 때 비로소 빈 무덤으로 부활하리라.

……”

내 딴에는 욕망을 없앤 교회를 꿈꾸며 지은 글이다. 이 글을 보고 어떤이가 묻는다.

“도대체 교회를 하겠다는 것이냐 말겠다는 것이냐?”

“나는 교회 안한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교회는 안한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이는 오지도 않을뿐더러 오더라도 쫓아 낸다.”

목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고통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만으로 목사일 수 없다. 그것은 목사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목사는 목회자이기도 하지만 먼저 구도자여야 한다. 스스로가 성인의 삶을 쫓고 성인의 길을 가는 이가 목사다.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이 성도다.

내가 聖人의 꿈을 꾸면서 예수님은 主님이라기 보다는 친구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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