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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놀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 (마 7:7~8)

 

 야수파 화가 마티스의 '춤'을 실눈 뜨고 보다 순간 들어난 그리스도의

 처형 장면에 가슴을 치게 한 에밀 놀데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내가 알던 예수님이란 존재는 사람과 아무 상관도 없는 무소부재하신

 신의 아들로서 그 역시 신이고 또 신神이어야 하므로 생노병사도 없고

 인간적 고통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있는 신,

 그깟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죽음이란 것도 작가의 짜여진 각본에 맞춰

 멋지고 근사하게 죽어 주시기만 하면 되는 것 쯤으로 여기고 있을 때,

 제 속을 뒤집어 놓고 후벼 판 성화 한 점이 있으니, 물님과 함께 27년

 전 처음 만난 이 도도님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지금에 와서야 이 그림이 졸데의 그림을 보고 그린 도도님의 임화臨畵

 인 줄 알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저 그림은 졸데의 것이 아닌 도도님의

 창작인 줄 알았고 저 충격적인 그림의 강렬한 인상은 오늘날까지 제가 

 한마리 소가 되어 텃밭을 가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2주전(3.27) 오늘의 말씀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순서에

 문득 마티스 그림 속에서 구하고 찾은 저 아프고도 슬픈  에밀 놀데의

 그림을 그린 도도님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으니,

 저 그림은 30년 전 도도님이 잠시 떨어져 순창에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

 도감을 넘겨보던 중 저 작품에 끌려 밤 늦게 까지 그린 임화였다고...!

 친구와 동족으로부터 버림 받고 배신당하고 붙잡혀 가 채찍을 맞고,

 급기야 반역자나 정치범에게 가하는 가장 잔혹한 처형법인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어 가는 예수님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그린 그림,  

 순간 밀려오는 그리움과 고통이 저 그림 속으로 녹아 들어간 것인지,

 그림 속 처형장에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피맺힌 어머니의 아픔이

 바로 도도님의 아픔이었다는 듯이 평소 온유함과는 달리 투박하면서도

 강렬하고 거칠 것 없는 필력으로 되살려 낸 도도님의 충격적인 그림에

 놀라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시절 하트한 감수성을 파고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그림의 원작은 20C 독일 표현주의(Expressionizm) 거장 에밀 놀데

 (Emil Nolde 1867~1956)

 에밀 놀데는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 부근 마을 놀데(Nolde) 태생으로

 초기에는 가구공장에서 나무조각과 장식미술가, 교사로 활동했으며,

 회화로 전향, 뮌헨, 파리 등에서 수학하고 인상파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 때 표현주의 미술화가 그룹 부뤼케파에 가담하였으며, 이 단체는

 놀데의 작품에 대하여 '색채의 폭풍' 고 극찬하였다지만 그런 칭찬에

 입맛 다시고 한 자리에 가만이 있는 성격이 아닌 놀데는 1년 반만에

 이 학파를 떠나 작렬하는 태양 빛에 그대로 드러나는 강렬한 원색을

 주로 쓰는 독창적인 표현주의 화풍을 추구하는가 하면 그 어느 미술

 단체에 가담하지 않고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갑니다.

 당시 나치는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은 '퇴폐와 타락'이라 규정하고 탄압했는데 놀데의 작품 역시

 표현주의를 표방한다고 하여 작품을 뺏기기도 하고 반 게르만적인

 퇴폐 미술가로 찍혀 그만 작품 활동이 중지되는 수난을 당합니다.

 그런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애' ,'성령 강림제', '방랑자'

 '가을바다' , 황금송아지' 등 나치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 많은 작품을

 남긴 놀데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지요. 나치의 억압과 횡포에 영혼을

 잃어버리고 나자빠진 사람들, 그 속에 붓을 꺾인 삶이 한스러워서일까?

 놀데는 별안간 칠흙같이 어두운 현실을 떠나 바깥 세상을 여행합니다.

 오세아니아 여러섬을 비롯하여 베를린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몽고, 중국을 지나 우리나라에 와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참 그의 역마살도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그의 여러 작품 중에 내 가슴을 헐어버린 에밀 놀데와 도도님에게서

 더 과감한 터치로 강렬하게 되살아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이 놀데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서는 종전의 종교화와는 달리

 신격화된 예수님은 간 데 없고 사람과 조금도 다를 데 없이 육체적인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배경에 빛이 없듯이 이 처형장에 성인의 존엄은 없습니다.

 오직 버림받은 인간의 몸에서 작열하는 고통과 그 몸서리치는 현장에서

 뿜어나오는 죽음의 빛이 태양빛을 대신하여 빛을 드러내고 있을 뿐.

 이 그림을 보면 시시각각 밀려오는 피비린내나는 한 인간의 고통 앞에

 숨이 가빠 옵니다. 예수님의 일그러진 얼굴, 못 박힌 양 손에는 피가

 몸으로 흘러 내리고 또 못 박힌 발 아래로 선혈이 낭자하게 땅바닥으로

 흘러 내립니다.

 작가는 이 처형장의 배경에 관심 없고 그 자리에 선 인물의 내면세계를

 각자의 심판대에 올려놓은 듯이 켄버스 가득 꽉 찬 구도로 구성하고,

 마치 예수님 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를 주인공화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제 삼자적 관점이 아닌 현장의 목격자가 되게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강도 둘, 여인 세 명, 군병 넷 합쳐 열 사람

 관객은 여백 없는 이 장렬한 그림 속에서 열 명의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열 사람의 현실이 이입되어 골고다 언덕배기 형장으로

 빨려 들어가 그분의 고통과 산자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시 로마의 식민지 였던 시대적 분위기와 감정을 사실적이고

 묵직하게 표현한 이 그림앞에서 남이야 죽든 말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제비뽑기나 하며 빈둥거리는 군병일 수 있고,

 슬픔에 오열하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의 극심한 슬픔에 동참하는가 하면,

 버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고통이 성인의 고통이 아닌

 양 옆에 십자가에 달린 자의 고통과 다를 바 없는 불쌍한 사람의

 고통이자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같이 못 박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 고통은 바울 선생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 

 말씀하셨듯이 아들이 버림받고 수난당할 때 아버지 자신이 아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같이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에 깊이

 직면 하기도 합니다. 

 

"나는 내 작품이 단순히 좋기만 한 일시적인 흥미 이상이 되길 원한다.

 나의 작품이 정신을 고양시키고 감동을 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인생과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싶다."

 

 그의 말처럼 에밀 놀데 역시 자신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낱 유희에 빠져 죽은 자 처럼 살아가는 로마병정처럼 기성 권위와

 무감각 속에 독일 나치의 굿판에 동조한 사람들과 그 광기에 희생되어

 간 수 많은 죽음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위대한 신의 아들의 장엄한 서사시가 아니라

 뭉개지고 피가 다 쏟아지는 극도의 고통이 따르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서 울고 비명 지르고 고통받고 있는 겁니다.

 

 한편 교회 피아노 위 곱게 놓인 도도님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놀데의 그림보다 더욱 애절한 이 그림은 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기다림이고 신앙 속에 여문 "아들의 죽음 속에서 죽은 하나님"이며

 버림받은 인간에 대한 사랑 가운데 아들의 죽음에 고통 당하시는 

 아버지의 현존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또 다른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예수를 지키고 있었다.

 그 머리 위에 죄패를 붙였는데 "유대인의 왕"이라 적혀 있었다.

 이 때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박히니

 하나는 예수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마태27:35~38) 

 

"또 거기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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