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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란 무엇인가?

2016.01.04 09:05

관리자 조회 수:668

칼라란 무엇인가?                                   


그동안 연재해왔던  ‘몸의 심리학’이 출판되고 ‘칼라의 심리학’ 연재를 시작하게 되어 칼라테라피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감회가 깊다.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보다 풍성한 연재가 될 수 있도록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칼라에 대한 궁금증을 여과 없이 물어 주기를 기대한다.    


지구 공간 안에서 모든 존재는 칼라의 옷을 입고 있다. 칼라는 존재의 성격과 상태에 대한 정보를 보여준다. 모진 겨울의 추위를 지내고 올라오는 새싹이나  모내기를 갓 끝낸 논의 벼는 연한 올리브 그린이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진한 녹색으로 변해 가다가 가을이 오면 녹색 안에 숨어 있던  노랑이 나오게 되고 노랑이 깊어져 골드가 되면 수확의 때를 가늠하게 된다. 인간 역시 그 사람의 오라 빛깔은 그 사람의 존재 상태와 변화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보여준다. 따라서 칼라는 모든 만물이 자신을 나타내고 말해주는 보편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자동차, 또는 집의 외양과 상업적 간판에 이르기 까지 칼라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속에도 칼라가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우울하다 - feeling Blue, 화를 내다-seeing Red, 사랑스럽다-in the Pink)  인간 의식의 내면에도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같은 칼라의 유니폼을 입은 집단과 입지 않은 집단의 심리적 차이가 분명한 것처럼 칼라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 심리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렇다면 칼라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칼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 속에 감각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칼라에 대한 모든 오해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한다. 보통 흰색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여러 칼라 중의 하나려니 하지만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모든 색이 합해 졌을 때 나타난다. 흰색은 태양광선이 규칙적으로 반사되고 있는 상태이며 일곱 빛깔의 광선이 조화로울 때 나타난다. 그러나 검정색은 모든 빛의 파동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에 특정한 칼라가 없다. 이러한 현상을 통찰한 사람이 뉴턴이다. 그는 투명한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막대 모양의 무지개 빛이 나오는 현상을 관찰하다가 두 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첫째, 처음부터 투명한 빛 안에는 모든 칼라가 들어있었다.


둘째, 칼라가 나뉘어져 나타나는 것은 각 칼라의 굴절률 때문이다.


태양광선은 에너지 파동이다. 그 파동은 속도는 같지만 약간씩 다른 파동들이 섞여있다. 우리의 민감한 눈은 그 다른 파동들을 칼라로 인식하게 된다. 모든 칼라는 태양광선 속에 섞여 존재하고 있다. 그 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하여 파동이 분리되면 그 때서야  우리 눈은 칼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사물에는 칼라가 없지만 우리 눈에 어떤 특정 칼라로 비춰지고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단풍잎이 빨간색인 것은 그 잎의 원자와 분자 구조가 특정한 본성과 밀도로 되어 있어서 다른 칼라는 흡수하고 오직 빨간색만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인지 되었을 뿐 사실은 빨간 색이 아닌 것이다. 만약 단풍잎에게 너는 빨간 존재라고 말한 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인간에게 항변할 것이다. 빨간색의 경우처럼 모든 칼라 역시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모든 사물은 우리 눈으로 볼 때 칼라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을 여과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칼라는 사물이 거부한 파동을 우리의 의식이 이해 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지구는 다양한 빛을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빛은 어둠을 비출 때 빛이다. 빛 그 자체로서의 빛은 의미가 없다. 신의 형상이라는 거룩한 빛은 인간성 안에 갇혀 있다.  그 빛이 나오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어둠은 빛을 만나야하고 빛은 어둠을 만나야 빛이 빛다워진다. 우리가 지구 공간에서 몸을 입고 있는 목적은  투명한 빛 속에 들어 있는 칼라의 다채로움을 경험해 가면서 일곱 빛깔의 통합의식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요 축복이다.        
              
칼라와 시각


인간은 몸의 감각인 오감을 통하여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오감을 통하여 들어 온 정보는 그 사람의 인식 수준과 비례하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써 인식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림 한 점을 보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의식 수준만큼 바라보고, 본 만큼 느끼고 그 느낌을 표현한다. 인간이 오감을 통하여 지각하는 것은 바라보는 대상의 본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영상을 지각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칼라와 인간을 둘러싼 비밀이 깃들어 있다. 성현들이 지구에서 고난을 받아온 이유는 사실을 보는 사람과 자기 생각을 믿고 사는 사람의 관점 차이에서 발생해왔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완고한 생각을 믿는 사람의 차이이기도 하다.


"너희들은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만 나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나의 판단은 정확하고 공평하다.  그것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8:15-16)


"나는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곁에 서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당신은 우리를 맹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요?" 하고 대들듯이 묻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차라리 너희가 맹인이라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복음 9:39-41)


자신의 감각이 만들어낸 영상을 외부의 사물이나 조건과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정신 착란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그것은 육적 본성의 본능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동물이 바라보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티브이나 영화를 볼 때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단지 빛의 진동인 광선이다. 그 진동이 각막을 통과하고 수정체의 작용에 의해 망막에 모아지면 가꾸로 된 영상이 만들어진다. 망막에 상이 생기면 시신경은  영상을 해석하기 위해 뇌로 송신하고 그 영상은 즉시 거꾸로 된 다음 주관적 해석이 되어 의식적인 실체가 된다. 인간에게 객관과 주관을 분리할 수 있는 의식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중요한가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물의식, 인간의식, 신성의식 등 인간의 진보와 성장과제는 의식의 진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주제이다. 다음에 다루게 되겠지만 칼라는 인간의식의 성장 과정을 반영하기 때문에 성장에 따른 변화의 단계마다 나타나게 된다.                         


인간의 눈 망막에 형성된 영상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음의 상으로 융합된 다음 뇌가 해석을 한다. 인간의 공간 지각력은 이 융합의 능력과 밀접하다. 그러나 동물의 뇌는 망막에 비친 영상을 곧 바로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공간 지각력이나 거리 감각이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시각 외에 후각 등의 다른 감각을 사용하여 서식처를 찾아 간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시각이란 망막의 영상을 두뇌의 정신적 영상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망막이란 빛의 진동(칼라)들이 모인 것이고 마음의 영상 역시 진동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칼라가 진동하는 에너지라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에서 나오는 진동의 파장을 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하지만 그 말 역시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은 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볼 수 있는 존재 상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해석한 그 해석을 보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지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두뇌가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실제로 그 대상을 지각했다고 보기 어렵다.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영상이란 기분이나 신념 등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하여 바꾸어지게 된다. 내가 어떤 빛깔의 안경을 쓰고 있느냐 여부에 따라서 바라보는 대상의 칼라가 달라지는 것처럼 대상과 상관없이 마음의 상이 변형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망막의 영상이 아니라 두뇌 속의 정신적 영상을  어떻게 지각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바로 이런 관점에 유의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주변의 사물들을 바라보자. 내가 어떤 인식의 패턴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내 안의 영상과 사물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