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59439
  • Today : 982
  • Yesterday : 638


 

노랑 (Yellow) - 나에 대한 앎이 ''를 만들어 간다.

                       

                                                       이병창 (칼라심리상담연구소 뫔 대표)

 

그동안 나 여기 있었다고

나도 이제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두고 싶다고

노란 민들레 개나리 피어나고 있다.

매서운 겨울

답답한 땅속 세상을 지나

제대로 숨 쉬는 세상 한번

살아보자고 눈 뜨고 있다.

 

그래, 오늘 보니 노랑도

너의 껍질이었구나.

너는 봄날의 맥박

온 산천과 함께하는 춤이지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어딘가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필요도 없지

너는 너니까.

 

- 노랑 -

 

노랑은 천지인 중에 인간에 해당하는 색깔이다. 노랑이 승천하면 파랑이고 내려가면 빨강이다. 하늘은 전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파랑은 단일적 신성의 상징이다. 그 하늘이 인간 개인 개인에게 임하게 되면 개별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신의 형상을 지닌 개별적 신성의 존재라고 한다. 파랑이 신앙의 칼라라면 노랑은 지성의 칼라이다. 몸을 입은 인간은 각자의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와 너, 대상과 나를 구분한다. 이 구분이 왜곡되기 시작할 때 인간에 대한 다양한 차별과 억압이 발생하게 된다. 지연, 학연과 빈부 격차 등 온갖 형태의 인간 부조리는 이 주제와 직결되어 있다.

인간은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다루는 지성이 있어 인간이다. 바로 이것을 표현하는 칼라가 노랑이다. 노랑은 자기 자신의 개체성을 배우는 칼라이다. 지적인 식별과 결단력, 객관적인 명확함을 추구한다. 그러기에 지성은 명확하지 않을 때 의심하게 된다. 의심은 지성의 혼란을 초래하지만 명확함으로 가는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위대한 의심이 위대한 믿음과 지성을 낳는다. 또한 노랑은 흡수하는 에너지의 상징이다. 지식의 속성은 음식처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식탁을 통하여 영양을 흡수하고 책을 통하여 공부하는 것 모두 노랑의 영역이다. 배우고 익히는 모든 행위 역시 음식으로 위장을 채우듯이 정신의 배를 채우는 행위이다.

노랑은 따뜻한 계열의 칼라 중에서 가장 밝은 색이다. 교통신호등의 노란빛은 예고 또는 중립의 의미가 있다. 축구에서 심판이 제시하는 노랑카드는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다는 주의와 경고의 의미가 있다. 전화번호부, 건설현장의 안전모, 유치원 버스 역시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무엇보다 노랑은 개나리나 민들레,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처럼 생명의 탄생을 알려준다. 그래서 자아탄생의 칼라라고 한다. 모든 식물은 햇빛을 먹고 산다. 햇빛은 노랑과 레드의 합성인 오렌지 칼라이다. 녹색의 절반도 노랑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노랑의 에너지를 먹고 살고 있다. 생명의 순환 고리를 보면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을 먹으면서 생명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내 밥 먹고 살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나를 위해 내어준 생명들에 대한 무지이다.

알고 보면 일체가 덕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한 무지에 사로잡힐 때 인간은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질투와 선망 등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혼란의 뿌리에 두려움이 있다. 이것이 노랑의 부정성이다. 이 부정성에서 발생한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칼라의 보색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랑의 보색 - 보라

 

봄날에 산책을 하다보면 노랑과 보라색의 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보라색 야생화를 보면 혹한의 겨울에 시달리다 못해 멍들은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자연의 설계에 대한 오묘함이 빛깔 속에 들어 있다. 모든 칼라는 서로 보완하는 상대 칼라를 가지고 있다. 이를 보색이라고 한다. 인간의 두뇌는 어떤 한 칼라를 집중해서 보다가 눈을 떼면 보색을 작동시켜 시신경의 조화를 맞추어주도록 한다. 나에게 어떤 칼라와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보색차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칼라테라피에서 보색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내가 지금 분노의 에너지(빨강)에 휩싸여 있다면 빨강의 보색인 푸른색을 사용해야 한다. 방에서 화를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든지 푸른 숲 속을 거닌다든지 하면 분노는 곧 가라앉게 된다. 반대로 우울하고 기분이 침체되어 있다면 오렌지빛을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공간에서 노란 가구가 유독 눈에 거슬릴 때 잠시 눈을 감고 보라색을 떠올리기만 해도 싫음의 감정에서 벗어나 평정심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해상도가 아주 높은 티브이의 칼라에 과다하게 노출이 되어 힘들 때 녹색을 가까이 하거나 녹색칼라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된다. 녹색은 무지개의 중간칼라로써 균형과 질서를 회복하도록 하고 가슴에 공간을 열어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녹색의 보색은 빨강이고, 오렌지의 보색은 남색(로얄블루)이다. 나에게 작동하고 있는 부정적 에너지를 파악하고 중화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보색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봄날의 산천 속에는 이런 보색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다. 아래 보색 차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사본 -12색상환.jpg




   위장과 태양신경총

 

노랑의 파동은 상복부에 작용하는 칼라이다. 상복부 명치부분에는 여러 가지 장기들이 있다. ( 위장, 췌장, , 쓸개, 태양신경총 등 ) 이 중에서 태양신경총과 위장은 노랑의 에너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노랑은 웃음과 유모어를 주는 밝은 에너지로써 태양신경총의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태양신경총의 긴장은 신경성 질병과 관련이 깊다. 노랑의 에너지는 위액분비를 촉진하여 소화를 돕고 몸속 독소를 제거하는 데도 유용하다.

태양신경총(Solar Plexus. The celiac Plexus)의 총이란 신경다발을 의미한다. 필자의 저서 몸의 심리학에서 태양신경총을 언급한 부분의 일부를 인용한다.

 

심장의 심장, 인간 몸의 내부 태양이라고도 하는 태양신경총은 뇌를 만들고 두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위치는 중단전 또는 침술에서 중완(심하게 체했을 때 침을 꽂는 자리)이라고 부르는 안쪽에 있다. 두뇌는 쓰고 말하는 일부 학습기능이 있지만 분노와 공포, 슬픔과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심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두뇌의 신경섬유를 활성화시켜서 일이나 사건 등을 이해하도록 담당하는 영역이 태양신경총이다.

뇌가 스크린이라면 화면을 송출하는 역할은 태양신경총이 담당한다. 다시 말하면 두뇌는 도구와 같을 뿐이다. 깊은 명상이 이루어지려면 지적인 두뇌의 사고 작용이 멈추고 태양신경총이 조화로운 진동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때 깨우침의 경이로움과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 .

옛사람들이 태양신경총이라고 부른 것은 인간의 내면 속에 우주의 심장과 교통하고 공명하는 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뇌를 통한 지성의 작업보다 더 깊고 현묘한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에너지 진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랑의 긍정성은 지혜를 향해 가는 통찰력이지만 부정적일 때는 책임회피나 인간에 대한 불신, 비루함과 천박함 등의 이슈가 있다. 지식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지식이 양적 지식이 될 때 인간은 지식의 공간에 갇히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식의 감옥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아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경계선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지혜의 빛은 그 경계선을 돌파할 때 나타난다. 그 빛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태양신경총이 풀려지게 된다. 지혜의 사람들은 인간이란 태어났다 죽는 존재가 아니라 지상에 잠시 왔다 가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인간은 물질의 덩어리가 아니라 빛의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신의 형상은 씨앗처럼 내 안에 있다. 그 씨앗이 싹이 터서 성장하고 나를 통해 확장해 가기 위해서 우리는 빛의 에너지를 섭취해야만 한다. 진리를 먹고 배우지 않고는 인간의 신성은 성장할 수 없다. 모든 식물들은 햇빛을 마시면서 자신의 꽃을 피우는 것처럼 인간 역시 햇빛을 먹고 마셔야 한다. 햇빛을 먹고 햇빛의 존재가 되는 것이 곧 내가 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태양이 있다. 그것이 현재는 씨앗의 단계로, 또 어떤 이는 발아하여 성장하는 단계로, 그리하여 꽃 피고 열매 맺는 단계로 가고 있다. 모든 씨앗이 싹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인간 역시 상대가 누구이든 그 사람의 태양(신의 형상)을 비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무시한 다는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한 구름을 뚫고

 

분노와 억압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의 사람들은 검은 색 옷을 주로 선택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노란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노랑 옷을 입은 사람은 남들이 볼 때도 쾌활하고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울하다는 것은 내 마음의 하늘에 우울의 구름이 뒤덮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 노란색 티셔츠을 입고 넥타이를 매어 보는 것, 여성의 경우라면 메니큐어라도 발라 보자. 곁들여 노란 과일을 먹고 민들레 개나리 복수초 등 노란 꽃을 바라보노라면 우울한 구름이 걷혀져 파란 하늘이 열리게 될 것이다.

하늘이 열려야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 우울한 구름을 뚫고 삶의 유연함과 우물쭈물하지 않는 자발적 행동력이 있을 때 행복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인색하지 않고 관대하게 살 수 있는 노랑의 에너지를 이 봄날 넉넉하게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