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73660
  • Today : 937
  • Yesterday : 1076


칼라의 심리학 -


청록(Terquoise) - 변화의 흐름을 즐기는 창조적 에너지

                                                                                           이 병 창 (시인. 진달래교회 목사)

  

 걸음 지나면
 걸음이 있다.
 걸음 건너면 
첫걸음처럼 
 번째 걸음이 다가온다
나의 첫걸음이 마지막 걸음이 되는 
 땅에서의 여정
나의 걸음은 은하계까지 
이어져 있다
 무한함
 충만함
 없는 나의 걸음.  


터콰이즈는 12월의 탄생석인 터키옥석의 칼라이다. 옅은 초록색에서 진한 하늘색까지 여러 색상이 있는데 성공과 승리, 힘과 지혜, 또는 자립과 협동을 상징한다. 옛날 이집트 지역의 시나이 반도에서 산출된 터키석이 유럽에 전해지며 붙은 이름이다. 터키석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석 중 하나로서 기원전 5,000년 전 이집트 여왕 미라의 팔목에서 터키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남태평양의 휴양지를 소개하는 영상들은 파란 하늘이 깨끗한 바다에 내려와 있는 터콰이즈 빛깔을 보여준다. 돌고래가 돌아다닐 듯한 바다에는 백사장의 모래가 곱고 연인들과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돌고래는 터콰이즈의 상징동물이다. 돌고래는 바다의 물 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장난스럽게 드러낸다.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한다. 유희처럼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다. 예술가는 한계 없는 의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상투적인 감각에서 벗어나는 영감과 직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터콰이즈적인 예술가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고려할 줄 안다.

삶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덕목이다. 순간순간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안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벌주는 자책을 하기 마련이다. 자책의 감정이 종교적 신념을 만나게 되면 참회로 발전하게 된다. 자신이건 타인이건 공격적 화풀이를 하게 되면 심각해진다. 심각한 것은 영혼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특히 분노를 억압하는 심각한 사람은 자신의 창조성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 몸의 밀물과 썰물 

 

산호는 바다 밑에 사는 생명체이다. 따라서 산호색(코랄)이 바다 속을 상징한다면 터콰이즈는 바다의 표면을 나타낸다. 바다의 표면에는 늘 물결이 있다. 정해진 시간대에 따라서 오고가는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있다. 바다의 조수는 인간에게 있어 들숨과 날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는 것은 영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기본적 수행이다. 숨을 들이쉴 때 배가 올라오고 내쉴 때 내려가는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선 수련의 중요한 공부 주제이기도 하다.

갓난아이는 목을 가눌 힘이 없다. 완벽한 의존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목을 세울 수 없다. 아이는 아직 에고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목은 에고로 에워싸여 있다. 인간의 개성과 성격은 이 에고와 직결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다.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성격이 있다. 그러나 그 성격의 뿌리가 두려움과 집착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치명적인 질병과 같다. 그 병은 치료되어야 한다.

성격이라는 이름의 낡은 집을 부수어야 전인적인 존재(I AM)의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다. 또한 나의 개성과 인격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직계 가족들의 유전자와 환경적 특성들이 합하여 나에게 작용하고 있다. 최소 4대조까지의 영향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작용되고 있다.

하늘 에너지의 통로인 목은 파란색의 포인트이다. 파란색은 빛깔 중에 첫 번째 원색으로서, 빛깔의 1번지라고 말한다. 터콰이즈는 파랑 속에 노랑이 들어 있다. 터콰이즈와 로얄블루는 파랑의 좌청룡 우백호다. 창조의 시작은 하늘이다. 하늘은 신적 에너지이며 인간의 에너지원이다. 인간은 그 하늘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하늘을 마시며 살아간다. 몸으로 본다면 그 하늘은 목에 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목의 기도를 통하여 들어가는 하늘을 마시지 못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늘을 마시지 못하고 공기만 마실 때, 육적 본성만 작동되게 된다. 오직 생존이슈 하나에만 목을 매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너무 땅의 것에만 몰두하면 하늘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탐심에 시달리고,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존재를 비천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야말로 지독한 신성 모독이다. 이 무지에 바탕을 둔 탐심 때문에 불평, 원망, 화가 많고, 공격적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인간이 지구에 온 목적을 깨닫는다는 것은 어떻게 자신의 에너지를 세상을 위한 빛의 에너지로 바꾸는가가 중요 주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인간은 하늘을 봐야하고 하늘을 마셔야한다. 어떻게 내 삶의 열정을 제대로 사용할까, 어디에 내 목표를 둘까, 자기 안에 물음을 계속할 때, 탐심 없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의식까지 성장하게 된다.

인간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하늘 에너지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데 있다. 숨은 은혜요, 하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숨 쉬는 주권이 있는 줄로 착각한다. 만약 숨의 주권이 인간에게 있다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숨 쉬려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 순간 숨 하나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은혜가 넘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모두 다 이미 와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스승들이 숨에 대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이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 숨을 자각한 자는 하늘의 뜻이 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신을 무한하게 열어간다. 지금 이 순간 맨 처음 아담의 콧속에 넣어주신 숨이 밀물과 썰물처럼 은혜롭게 오고 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터콰이즈 - 감성의 창조적 커뮤니케이션

 

가슴의 감성이 그린이라면 가슴의 감성을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표현하는 것은 터콰이즈이다. 터콰이즈 칼라인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즉 터콰이즈 이슈가 있다. 그들은 자유로운 복장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색해 한다. 춤과 노래와 놀이로 자신의 감성을 풀어내기 어려워한다. 터콰이즈의 세상은 개성이 존중되고 개인의 자유가 확장되고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사회의 성숙도는 표현의 자유와 비례한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상상력이 존중될 때 살아난다. 다차원의 의식 영역을 넘나드는 인간에 의해 문명과 예술이 발전해왔다는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수와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다수와의 관계를 맺으면서도 홀로 있을 수 있는 자립의 힘이 있어야 자신의 개성을 독창적으로 살려낼 수 있다. 자립이 될 때 공생할 수 있고 박해를 받는다 해도 역경을 뚫고 갈 수 있다. 자립의식이란 개별화된 주체의식이 바로 서야한다. 그럴 때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제대로 존중할 수 있다. 진정한 삶의 예술을 꿈꾸는 사람은 자유의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둔다. 그것은 존재 에너지의 깊이를 추구하는 삶의 여정이다.

터콰이즈의 사람들은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상대방을 크게 개의치 않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들에게는 함께 공감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기어이 해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 있다.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거나 못한다고 하는 것을 호기심 때문에 일 저지르듯이 해 버리는 성향도 있다. 그들은 아웃사이더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고통을 미래로 회피하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는데 골몰하기도 한다. 의무에 얽매이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삶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충동적으로 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고통을 피하고 해야 할 의무를 외면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바삐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 하더라도 공동의 선을 깨뜨리고 피해를 주는 일탈에 대해서는 책임문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힘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터콰이즈의 사람들은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터콰이즈에서 노랑을 빼면 파랑이 된다. 파랑은 하늘같은 초연함의 에너지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노랑의 주제를 통과할 때 터콰이즈의 사람들은 순수한 클리어를 만난 진정한 삶의 예술가로 깨어날 것이다. 터콰이즈의 자유와 창조성이 꽃피우게 될 것이다. 창조성은 믿음, 표현, 기쁨이 삼위일체가 될 때 완성된다. 자신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신의 기쁨을 자유롭게 표현할 때 삶은 창조놀이가 된다.   

(mo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