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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2009.10.11 08:16

물님 조회 수:2186

* 이번 4차 수련하신분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 
 
엄마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의 고해성사

[리뷰]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2009-09-10 06:41]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 창비 | 299p | 10,000원

가정의 달이었던 5월, 교회 주보에 몇 주째 계속 이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도대체 신앙서적도 아닌 소설이 왜 이렇게 꾸준히 소개될까?’ 책에 관심이 많은 저는 궁금증이 생겼고, 결국 그 궁금증은 오랜만에 소설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읽은 후의 느낌? ‘참 세밀하다. 신경숙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어찌 보면 참 따분한 주제(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교수는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다”라고 표현할 정도)일 수도 있는데 책을 놓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묘사. 우리 목사들도 설교문을 준비할 때 정말 더 노력해야 성도들에게 도전을 줄 수 있겠구나!’ 등이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지 않고, 영화처럼 시공간을 오가며 묘사되는 표현력은 독자들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정말 이러한 구성을 보며 ‘이야기식 설교(Storytelling)를 할 때 더 세밀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칠순의 늙은 엄마가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남편의 손을 놓치며 실종됨으로써 소설은 시작됩니다. 시골에 오기조차 바쁜 자식들을 생각하며 생일상을 받기 위해 상경한 노모! 그 실종의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가족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그런 가운데 얻게 된 깨달음은 자식들이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이미 엄마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책 제목인 『엄마를 부탁해』의 의미는 엄마를 잊어버리고 사는 수많은 현대인들의 처절한 고해성사가 됩니다.

이 책은 4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의 세 장은 큰딸, 큰아들, 아버지가 고해의 주체이고, 네 번째 장은 사라진 엄마가 1인칭 화자로 등장해서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장소는 이탈리아의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그곳에서 미켈란젤로가 23살에 조각한 피에타상(마리아가 예수님의 주검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딸은 엄마를 회상합니다.

1938년 한반도 J시의 진뫼라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빨치산과 토벌대의 낮밤이 뒤바뀌던 휴전 직후의 혼란기 17살의 나이에 이웃마을로 시집갔던 ‘박소녀’. 글을 배울 겨를이 없어 캄캄한 세상을 살았으나 박소녀 그녀는 누구보다 큰 품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챙기고 부엌을 지킵니다. 끝없는 노동 속에 살았고, 남편의 무관심을 견뎌야 했고, 장남에 대한 미안함이 항상 그녀의 가슴을 눌렀지만, 그녀는 소처럼 큰 눈에 상처투성이 발등이 다 보이는 파란 슬리퍼를 신고 인생을 이겨냅니다.

무식해서 자식들에게도 ‘잊혀진’ 그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조금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엄마의 두통의 원인을 찾으러 다니다가 의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오래전에 너의 엄마가 뇌졸중을 앓았다는 것이다. 뇌졸중이라니?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의사는 엄마의 뇌를 촬영한 사진 속의 한 점을 가리키며 뇌졸중이 지나간 흔적이라고 했다. 뇌졸중이 어떻게 본인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의사는 본인이 모를 수는 없다고 했다. 피가 고여 있는 걸로 보아 본인도 그 충격을 감지했을 거라고 했다. 의사는 엄마의 몸은 항상 아파왔다고 했다. 엄마의 몸은 늘 진통이 함께하는 상태라고 했다. “늘 아프다니요? 엄만 건강한 편이었는데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감춰둔 주머니 속의 송곳이 튀어나와 너의 손등을 찍어 내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뇌 속에 고여 있는 피를 빼냈지만 엄마의 두통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두통이 밀려들면 마치 금방 깨지는 유리항아리를 받쳐들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대문을 열고 들어와 헛간의 평상에 몸을 뉘었다.

“엄마는 부엌이 좋아?” “부엌에 있는 게 좋았냐고? 음식 만들고 밥하고 하는 거 어땠었냐고?”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냐?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 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니들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믄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지.” “그러니까 뭐?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엄마가 무슨 비밀을 말하듯이 잠깐 주위를 살피더니 항아리 뚜껑을 깬 적이 여러 번이었단다, 속삭였다. “항아리 뚜껑을 깨다니?” “끝이 보여야 말이지. 화딱증이 날 때가 있었어. 부엌이 감옥 같을 때는 장독대에 나가 못생긴 독 뚜껑을 하나 골라서 담벼락을 향해 힘껏 내던졌단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니 고모는 모른다. 알면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겄냐. 너두 밥하기 싫음 접시라두 하나 던져서 깨보련. 속이 뻥 뚫릴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엄마가 실종된 후 아버지는 서울에서 수소문하다가 자녀들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여성이 박소녀 아주머니가 있느냐고 찾아옵니다. 그 상황의 본문을 잠시 적겠습니다.

‘박소녀. 아내를 두고 할머니라 하지 않고 아주머니라 칭하며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오랜만에 듣는다. “무슨 일로?” “저는 남산동의 소망원에 있는 홍태희라고 합니다.” “홍태희? 소망원?” “고아원이에요”’

홍태희는 박소녀 아주머니가 고아원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합니다. 십여 년 전부터 소망원에 와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마당에 농사를 지어주는 분, 그리고 한 달에 45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존경하는 분.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놀랍니다. 서울의 자식들이 얼마씩 걷어서 매달 아내 앞으로 보내는 돈이 60만원인데, 어느 날부터 아내가 이 돈을 자신이 다 쓰겠다고 한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왜 돈 욕심이 생겼느냐고 물었을 때 용도를 묻지 말라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식들을 다 키워냈으니 그 돈을 쓸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 책에서 제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옮긴다면 책 한 권 분량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자인 신경숙 씨가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쓴 것처럼,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작은 집에서 남편과 아들 셋의 도시락을 싸시던 어머니, 한 개도 아니고 점심, 저녁 두 개씩 싸셨기에 모두 8개를 준비하신 어머니, 막내아들(접니다)이 항상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자 그것이 마음 아파 아침 도시락까지 싸시던 어머니. 그러면서도 지금은 “도시락 쌀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는 72세의 어머니! 명절 새벽이면 항상 따뜻한 밥과 반찬을 준비해서 경비 아저씨에게 먼저 전하고 가족들의 밥을 준비하셨던 어머니, 가난한 살림에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아파하며 도와주셨던 어머니!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어머니의 그동안 살아왔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잠깐 대화할 시간도 드리지 않는 못된 아들들! ‘마음 평안하게 해 드려야지!’라고 마음을 다지지만, 여전히 앞 가림 하기도 정신없는 내 모습!

“하나님, 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못난 아들 이 훈 목사.

이훈 목사(분당 만나교회 국내선교부) lhlj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