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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2009.06.23 23:28

구인회 조회 수:1061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해 1998년 10월 23일(금) 14시 어느 가을녘
      당시 예수병원 근처 한일여성복지관 2층에 있던
      우리 진달래교회에서 뜻밖에도
      오랜 복역끝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박노해(본명 박기평)씨
      출소 기념 강연이 있었습니다.




      원래 한적하고 조용한 교회였는데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이런 정도의 인물이면 떠들썩하게 큰 교회나 공공장소에 강연할 법도 한대





      우리 교회에서 강연한다고 하니 의문이 일었습니다.
      제가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던거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언도 받고 징역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솔직이 섬뜻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막상 박노해님의 모습을 보게되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락부락할 것 같고 사자나 호랭이 같은 이미지일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어요.


      무슨 사슴이나 노루같은 이미지에 목소리는 시낭송하는 성우처럼
      청명하다고나 할까요, 하여튼 남자치고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런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쩜 그다지도 우악스럽게 싸울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저이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무슨 똥뱃짱으로
      목숨걸고 싸울 수 있었던건가요. 참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요새 "질긴 놈이 이긴다"는 우수개 말이 있듯이
      쌈이란게 힘이나 기술 말고도 또 다른게 작용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박노해님의 강연은 한 마디로 맑고 고운 시였습니다.
      저 이가 하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게 전하라고
      하느님께서 빌려 주신 말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어거지로 기억해 보면 대충 이런거였습니다
      " 이 세상에는 작지만 소중한 것이 많습니다
      거대한 중앙 집권적 조직은 틀렸습니다.
      조직은 작아져야 하며, 가장 진보된 조직은 개인입니다"
      산다는 것은 아주 엄숙 것입니다. 그 자체가 투쟁이고 거룩합입니다.
      인생은 한번 사는 것, 어떻게 눈치를 보고 살겠습니까?
      인생과 자신의 주체로써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짐승의 시간을 만나 야수와 같이 싸웠습니다.
      짐승의 시간은 가고 인간의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폭포를 만나면 폭포처럼 흘러가야 하며
      호수를 만나면 호수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예수님도 죽음 앞에 섰을 때 혼자였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함께 나누고 품는 겁니다
      한 인간이 짊어질 짐을 가장 무겁게 진 분...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는 노동을 떠나서는 사랑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연대와 참여이며,
      사회운동이야말로 사랑의 최고 형태입니다.
      가난도 함께 나누어 갖는다면 따뜻한 우애가 됩니다
      슬픔도 맑은 자기 정화요, 고통은 따뜻한 창조의 원천입니다.

      끝 없는 말씀과 영감의 심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가 출소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대표한 자가 결국 정권에 굴복한거 아니냐는 힐난이었습니다
      저는 분노한 그분들에게 분노 했습니다.
      감옥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하루하루
      십자가를 지고온 분에게 돌팔매질을 하다니요.?
      이분도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와 자유가 있습니다.
      두만강에 비친 달이나 한강변에 비친 달이나 논두렁에 비친 달이나
      내 마음에 있는 달이나 다 같은 달이 아닐까요.
      내 것만 옳다고 이분을 탓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을 비난한 사람들도 어쩌면 그분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저는 시골로 내려가 안해와 더불어 농사 지으면서
      살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전한 박노해님이
      이제 더이상 세상에 노하지 말고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의 아들로서
      호수에 비친 물처럼 살아가시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부지깽이 죽비 / 박노해
      간밤 꿈 속에서 따악 -
      등짝을 갈기는 웬 죽비 한대에
      아픈 잠 깨어나니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엄니 !
      느닷 없이 울엄니 생각이 나서요

      어린 내 종아리 등짝을 따악따악 때리면서
      정직해라
      욕심내지마라
      남 못할 일 하지 마라
      뜨거운 냉정함으로 부지깽이 죽비 내리시던
      장하신 울 엄니
      사형받던 나 때문에 심장병에 쓰러지고
      홀몸 빈 손으로 기한 없는 옥바라지 하시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암수술까지 받고 이젠 쓸쓸히 병상에 누워
      아른아른 저 강건너 황톳길 내다보면서
      나 죽으면 어쩌나 나 없으면 어쩌나 무기수 내 아들
      마지막 심지를 올려 묵주 기도 바치실
      불상한 울 엄니
      분명코 정의라면 굽히지 말고
      쓰러져 쉴지언정 좌절하지 말아라
      다 용서하고 아무도 탓하지 마라
      겸손하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거라
      내 생각 하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따악 - 따악 -
      다시 부지깽이 죽비 내리주실
      아 손 힘마저 없이 다 바치고
      가벼운 껍질만 남으신 울 엄니
      홀로 누우신 당신 머리 맡을
      가만히 지켜드리고 싶은데

      밤 깊은 적막 옥방,
      우두커니 벽 앞에 앉아서
      그냥 목이 메인
      엄니 엄니 울엄니




      09. 6.23일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