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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마을[1.24]

2010.01.26 23:46

구인회 조회 수: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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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와 자비의 기둥
       
                                    

                                         
    그대 아니 오는데 눈부신 빛이면 무얼 하리

    빛고을 광주 사하자님 새봄 타오 도해님 그리고 벗님들
    재호형 순결님 수아, 요새님과 나즉이 성경말씀 적시는 혜진이
    그리고 생과 죽음 사이에서 같은 꿈을 꾸는 우리 진달래 가족들 
    한 사람 여기 또 한 사람 저기
    이렇게 파란하늘 밑 푸른하늘 아래 눈빛을 마주하고
    같은 호흡으로 마음 모아리며 기도와 찬송으로 예배드리는    
    영혼의 가족들이 있어 얼마나 또 기쁨인지...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바탕이 되어주고
    내 아픔을 같이 아파하는 눈물이 되어주고
    내 영혼의 비늘을 떼어주는 손이 되어주고
    진리의 등불을 밝혀주는 심지가 되어
    존재의 시간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나와 너의 관계
    그것은 비밀님이 한 생각을 표현하신 것처럼
    나와 너가 없는 세상 곧 일즉일체 일체즉일 자타불이의 세상이요
    님을 향해 수렴하는 거대한 통일운동의 시작일 것입니다.

    물님은 자주 자리를 바꿔가며 앉으시는 것처럼
    오늘은 특별히 영사기로 생명나무 도형을 보여주십니다.
    저 기둥은 두개의 기둥으로서 하나는 공의의 기둥 
    또 다른 자비의 기둥으로 부르ㅡ는 것으로서 사는 동안
    어느 기둥의 성장에 힘써야 하는지 변증법적으로 설명해 주시는군요.

    카발라의 핵심이 저 생명나무 도형에 담겨있다.
    저 기둥은 공의와 자비의 기둥으로서 공의의 기둥이 자비의 기둥을 넘어설 때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공격한 복음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인정사정 없는 율법가 내지 심판자가 된다
    내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를 심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심판은 내 몫이 될 수 없다.
    자비의 기둥 없이 심판의 기둥만 세우는 사람은 자기중심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율법학자들이 말도 않되는 머리로 판단하는 공의는 
    삶 전체를 보는 시력을 눈멀게 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무한히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권한은 주지 않으셨다.
    심판하는 순간 내가 나를 묶는 일이 생겨난다.
    용서의 문제란 반복하면 할수록 어려운 거다
    내가 묶여 있는 상태에서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기분 나쁜 것이다.
    용서란 내가 나한테 묶고 있는 것을 멈추고 묶은 것을 풀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걸 내가 풀때 용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내가 묶여 있는 것을 각성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돌맞은 여자에게 '나도 너를 판단하지 않겠다.'
    이미 일어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그런 삶을 살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심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시스템을 멈춰야 한다.
    오토매틱의 기계적 장치를 멈추고 공간을 두어야 한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각성과 힘과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싫어하고 거부하고 도망치고 싶어하는 일이 다 들보다.
    이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으면 들보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내 눈의 들보가 사라질 때 나의 눈의 티가 사라지게 된다.
    하느님은 인간이 공의의 저울을 사용하시면 공의의 저울을
    자비의 저울을 사용하시면 자비의 저울을 사용하신다.
    내가 누군가에게 자비의 저울을 들이대면
    하느님도 역시 내게 자비의 저울을 들이댄다.
    내가 무엇에 묶여 있는지 알게 될 때 심판의 부분을 넘어서게 된다.
    바울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은
    자비의 저울을 가지라는 뜻이다.
    에고의 분리는 언제 일어나는가?
    자비의 기둥들이 살아날 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비의 기둥을 튼튼이 세우는 게 아주 중요하다.
    공의의 기둥은 하느님이 세워 주시고
    자비의 기둥은 우리가 사는 동안 이뤄야 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내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탐색하다가 
    하느님 앞에 자신의 소외를 부채질한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지
    말씀을 아로 새깁니다.

   "너희는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네 동족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한다"
                                                                              (레위기 25:36)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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