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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를 찾는 사람[12.8]

2013.12.09 19:53

구인회 조회 수: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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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善을 찾는 사람
                                                  

 누구나 다 이 세상이 좋은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 꿈과는 달리 여전히 좋은 세상은 멀기만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좋아지기 보다 타인이 먼저 좋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아지려는

 노력없이 내 눈으로 보는 좋은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좋아지고 좋은 사람이 될 때 이미 우리 발 목 위까지

 차 있는 좋은 세상에 눈 ㅡ뜨고  비로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12.8) 물님의 말씀은 나를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을 곱게 씻기는 실로암 샘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 뜨면 이리도 고운 세상'

 나무 틈을 비집고 속살을 드러낸 겨울 햇살이 맑고 고운 불재 

 한껍질 벗어진 영혼의 거제수나무처럼 벗어지면 벗어질 수록

 더 광택이 나는 물님의 말씀을 형제들과 함께 나눕니다.

 

 사람을 볼 때 여러 결점에도 그 사람의 선을 본다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얼마전 몇명의 연구원들이 순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행복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그들은 자기 삶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100명의 보통 사람을

 표본으로 공통점을 찾으려는 뜻에서 심도있는 인터뷰를 했다.

 그들중 70% 사람들이 인구 15,000명 이하의 소도시 출신이라는

 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대상자 100%에게 어떤 공통점

 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어떤 상황에도 선을 찾으려는

 긍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 100명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안에서 

 타인들 안에서, 삶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려는

 공통적인 성향이 있었다.

 사물은 때로 있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는 대로 있게 된다.

 악을 찾는 사람은 악만 보이고 선을 찾는 사람은 선만 보인다.

 지난 번에 순결님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무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 하느님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삶의 순간순간 괴롭고 고달프지만 그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무슨 선을 주시고,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실꺼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행복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한 사람 100명 전체에 통하는 것은 그들

 모두 선을 찾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을 찾느냐에 따라서 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병들고 무시당했던 사람들에게서

 신성의 불꽃을 발견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것을 구해야 한다.

 모든 대상에게서 진선미 眞善美를 찾아야 한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대상을 두고 무엇 때문이 아니라

 존재와 공명하는 시선 그 자체가 행복이다.

 누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이 내 조건 속에 가득차 있으며

 보는 대로 보는 시력을 찾게 되는 자각이 일어나야 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처녀가 아이를 가진 절망적 상황에

 대하여 오히려 마리아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찬가를 부른다.

"이 몸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주 하나님을 기뻐함은

 주님이 비천한 계집종을 돌보셨음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하나님의 복을 받은자라 하리니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그분이 내게 큰일을 하셨음이라."

 마리아는 이 상황에서 하느님의 선한 뜻을 찾은 것이다.

 

 두뇌과학에서 볼 때 인간은 두뇌의 5%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고 한다. 우리 장기 중에 호흡을 관장하는 폐 역시 고작 1/20만

 사용한다고 하니까 인체의 기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대부분 사장시키고 가고 마는 것이다.

 좌절과 두려움, 무의식적 습관에 의하여 낭비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언제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재능를 찾겠는가

 이것은 삶을 기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 역시 내 스스로 규정하거나 남이 규정한 틀에서 흔들리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리라는 마음에서 물이라는 별칭을 지었다.

 내 삶의 조건들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있는 것을

 잘 쓰라. 내 자원을 개발해서 잘 쓸 생각을 않고 남과 비교하고

 그래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면 삶이 시들어갈 수 밖에 없다.

 

 내 안에 밀봉되어 있는 90%의 세계가 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거미줄이 있는데

 높은 나무와 나무사이 거미가 건축학을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일도 없는 데 어떻게 저리 오묘하게 집을 짓는지

 거미집을 헤치며 걸을 때는 미안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능력을 주셨겠는가?

 우리는 주신 은혜가운데 뭘 구하고 찾는 사람인지 

 우리 각자에게 확인해 봐야 된다.

 이러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기운을 모아야 된다.

 교회는 다름아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이 기도하는 집에서 "내가 찾는 것이 이겁니다." 

 찾고 구하고 내 깊은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무의식의 중심에 닿을 때 우주의 힘과 맞닿게 된다.

 내 영혼의 소원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다.

 내 안의 수 많은 자원을 찾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공간이 몹시 중요한 것이다.

 여기 뿐 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 든지 그것을 해 보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찿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고 찾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고 찾는 것에서 동그라미를 하나 더

 붙여 주실 것이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실패한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전하지 못한 것이 더 치욕적이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한 번도 써보지도 못하고

 내 안에 어떤 보석이 있는지 매장된 채 이 세상을 마무리하는

 것이야말로 내 자신과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우리에게 가장

 치욕적이며, 인생수업에서 낙제를 당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 가운데 삶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좋은 점을

 찾으려하고 이웃과 더불어 선을 찾고 구하는 존재에 대하여

 더 좋은 것을 주시고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시는 아버지의 은총을

 다시금 알아차리는 풍요롭고 복된 시간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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