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亂 /공자의 女人

2009.07.14 21:58

구인회 조회 수:1602

토우

      亂 /공자의 女人 공자하면 떠오르는 말씀, 논어 이인 里仁편 “조문도면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도(道)와 仁(인)으로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디 공자께서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단어를 인의(仁義)가 아니라 어려울 난(難)이라 하셨으니 연유가 무엇일까요? 공자의 이미지가 파란만장한 역사의 질곡에서 성인의 길을 안내한 올곧은 선비나 도덕군자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분의 인품을 살펴보면 난(難)자 보다는 더 고상한 단어를 말씀하셨을 법 한데... 물론 그의 인생이 고단하고 구도(求道)와 치민(治民)의 뜻을 완성치 못해 암호를 숨겨두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인생사 무슨 치명적인 사건이 그의 가슴에 난(難)자를 새긴 건 아닐까요? 공자는 어린시절 귀공자처럼 금지옥엽으로 사시지는 않았을까 생각들지만 사실 출생부터 성장할 때까지 담즙처럼 쓰라린 과거가 있습니다. 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 본디 무관으로 본처에게 딸 아홉을 낳았고요 또 첩을 얻어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불행히도 장애아, 그리하여 예순이 넘어 안씨 집안에 청혼을 했고 안씨 집안의 딸들이 노인에게 시집갈 수 없다고 버티자 16살된 막내딸 안징재가 심청이처럼 숙량흘에 시집가게 됩니다. 숙량흘은 이듬해 안징재에서 아들을 보게 되었으니 바로 이분이 공자(孔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자는 서자, 부친마저 3살이 되던 해 69세로 세상을 뜹니다. 어머니 안징재는 눈물을 머금은 채 친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엄격했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험로를 걸으며 홀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웁니다. 공자는“자기처럼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 할 정도로 학문에 전념하여 훗날 만인의 스승이 됩니다. 그런 어머니 안징재 역시 어린 공자를 두고 34살에 눈 감았으니, 공자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3년 동안 상복을 입은 채 무덤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공자에게서 어머니는 태산이요 성인이셨습니다. 그 후 공자는 누구나처럼 19세 때 송나라의 기관(올관)씨와 혼인했고 아버지처럼 그도 1년 만에 아들을 보게 됩니다. 당시 노나라 황제는 공자에게 축하선물로 잉어를 하사했지요. 이에 황송한 나머지 아들의 이름을 잉어리자(鯉)를 따서 공리(鯉)라고 짓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결혼생활은 예상과는 달리 4년 만에 파경을 맞고 맙니다. 요샛말로 이혼하고 평생 혼자 살게 되죠. 사람들은 이를 가르켜 부인의 성질이 드럽고 못된 악처라며 모든 책임을 기관부인에게 돌리지만 어찌 부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큰 뜻을 품은 공자는 세상을 유랑하며 세상을 바로 세우고자 몸부림쳤고 부인은 뜬금 없이 거렁뱅이처럼 돌아온 남편 공자가 못마땅했을 겁니다. 그런 공자에 대하여 기관부인은 꾸산찌빼처럼 바가지를 득득 긁었다고 하는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서 가만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돈 벌어오는 것도 애 키우는 것도 가정을 돌보는 것도 아니고 허구헌날 세상을 구한답시고 폼만 재고 집밖을 떠도는 남편 공자의 이상 앞에 결혼 초년 남편과 오붓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여인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습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오죽하면 남편이고 자식이고 나발이고 다 놔두고 집을 뛰쳐 나가버렸을까요. 공자도 마찬가지 기관부인에 대한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어머니의 지극하신 자애와 교육을 받으며 영욕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공자 오늘날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크게 성공하여 뜻을 이루는 길이야말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효도요 가문을 일으키는 첩경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뜻을 몰라주고 날이면 날마다 무식한 마누라는 바가지를 긁어대고 아이는 철없이 울어대니 참 한심하고 야속할 따름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한심한 애편내, 급기야 마누라는 더 이상 집을 나가면 내가 먼저 나갈 것이라니 공갈을 쳐댑니다. 이러다가는 가정사에 매달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 쓰라린 과거와 열받는 현재 그리고 희미한 미래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끌려가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 설마 아내가 천륜을 어기면서까지 집 나갈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던거죠. 그런데“왕대 밭에 왕대 난다”고 기관부인도 만만챦은 여인이었습니다. 공자가 “지어도 志於道하며 거어덕 據於德 의어인 依於仁 유어예 游於藝니라 ” (논어 술이편) 길떠나마자 기관부인도 봇짐 하나 들고 한때 정붙였던 공자 곁을 총총히 떠납니다. 태산 같은 어머니 한스럽게 돌아가시자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부인마저 떠나버리고 설마 했던 공자의 충격은 폐부를 찔렀습니다. 여자라면 어머니 밖에 몰랐던 공자는 여인은 다 어머니 같을 줄 알았지 소박한 가정에 사랑받고 싶었던 여성의 심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겁니다. 잠이 든 공리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한방울 떨어집니다. “인(仁)은 인(忍)이요, 정(政)은 정(正)이다” 논어 “사랑은 오래 참는 거요, 정치(政治)는 정의(正義)다” “재사가의 再斯可矣 조금만 더 참을걸! ”논어 공야장편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잦나무의 잎이 더디 시든다는 것을 안다.” “그 사람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걸...! ” 미안하고 그리운 마음에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공자는 주역(周易) 32궤 뇌풍항 雷風恒을 설명하면서 아픈 옛 생각을 떠올리며 권면합니다. “항 恒 부부항덕 夫婦恒德 능변여상 能變如常 립불역방 立不易方 뇌雷는 맏아들이요, 풍風은 맏딸입니다. 뇌풍은 부부을 뜻하는 거죠. “부부항덕 夫婦恒德 부부는 항상 같이 살아야 한다” “능변여상 能變如常 부부는 자기자신을 새롭게 해야 한다” “립불역방 立不易方 중심을 가지게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 기러기 가족은 얼른 돌아 오세요. 뿐만 아니라 주역을 통해서 남성 속에 여성이 더 많고 여성 속에 남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양괘다음 陽卦多陰 음괘다양 陰卦多陽” “진감간 震坎艮 양괘는 음이 많고 손이태 巽離兌라는 음궤에는 양이 많다” 진震은 우뢰 장남, 감坎은 물 중남, 간艮은 산 소남 남자는 겉으로 강하지만 속으로 무르다. 손巽은 바람 장녀, 이離는 불 중녀, 태兌는 못 소녀 여자는 겉으로 약하지만 속으로 강하다.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남자가 여자를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여자와 싸우는 남자는 등신이다. 얼른 지는 게 상책이다는 뜻입니다. 결국 공자는 어머니와 부인과의 이별(難)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세상과 동행하며 하늘에 통하고 하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자천우지 自天佑之 길무불리 吉无不利” “하늘에서 도와주시니 행복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오늘 하루를 사는 것도 하늘의 도움이요 하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깨달음에 이르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는 亂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늘에 순종하는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도움에 힘입어 백성을 구하고 사람의 무리와 함께 몸부림치다가 필생의 작업으로 주역을 번역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게 됩니다. “왕래불궁 위지통 往來不窮 謂之通” “길에는 늘 사람들이 오고 가고, 막힘이 없다, 그래서 통하는 것이다.” 09. 7. 15일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