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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원의 "꽃을 진 당나귀"

2012.06.18 21:55

구인회 조회 수: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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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석원 "꽃을 진 당나귀"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어릴적 누구나 신나고 재밌게 불렀던 전래동요 '고추 먹고 맴맴'

 이 노래에 등장하는 동물은 다름아닌 당나귀, 이 노래 뿐만 아니라

 당나귀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와 바보 부자 이야기

 이솝우화에서는 사자가죽을 쓰고 왕노릇한 당나귀, 짐 옮기는 당나귀

 소금과 솜을 싣고 가다 제 꾀에 물에 빠져 죽은 당나귀,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 알라바마와 40명의 도둑에 이 당나귀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 놓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당나귀는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등장합니다. 당나귀가 원래 그렇게 멍텅구리같은 짐승이 아닌데

 말 잘 듣고 묵묵히 맡은 바 일에 충실하기만 한 당나귀로선 여간 기분

 나쁘고 억울한 대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보의 대명사로 푸대접을 받아온

 당나귀에게 그 오명을 한꺼번에 뒤집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실 때 잘나고 야무진 동물이 아닌

 당나귀를 타고 들어간 것이죠. 일류사 엄청난 사건에 예수님은

 벤츠나 크라이슬러를 타고 간 게 아니라 구루마를 타고 간 셈.

 그 후로 당나귀는 경전에 예수님과 함께한 짐승으로서 이름을 얻고

 제대로 임자 잘 만나서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지요.

 

 세월이 흘러 예수님처럼 이 당나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화가 1위에 꼽힌 미술계의

 인기화가 사석원님(1960. 서울)

 잠시 들꽃처럼 예쁘고 나귀처럼 우직한 그의 길을 밟아봅니다.

 반 고흐에 빠져 초등학교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98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최연소로 대상을 차지한 바 있으며,

 외모에 풍겨나는 이미지는 사람좋은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그의 독특한

 예술편력은 내면 깊은 곳에서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자유혼의 발로.

 동양화를 전공하고 그곳에서 안주하려고도 했으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길을 돌려 미술의 고장 파리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동서양의 영감을 확 휘적시고도 그것으로도 배가 고픈 나머지

 아프리카의 뜨거움 속으로 그가 그린 황소처럼 돌진해 갑니다.

 마침내 동양의 짙은 선과 농담, 여백, 서양의 강렬한 색채, 아프리카의

 뜨거운 생명력을 마구 섞어 자신만의 색깔을 창조해낸 화가의 날선

 몸부림이 잦아들 무렵, 돌연련 밖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 자신 안에 그렇게 찾아 헤메던 색채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니..!

 결국 그는 보물찾기를 마치고 끝내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말지요.

 

 어릴적 방학때면  포천의 외갓집에서 가서 만난 닭, 오리, 소, 돼지며

 강아지, 부엉이까지 온통 그의 가슴을 적시고 파고들던 동물,

 학교 다닐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소 돼지를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귀싸대기를  맞으면서도 기어이 그려낸 아픈 동물들. 성인이 되어 다시

 어린이의 세계를 두드려 그 때 놀던 동물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추억 속의 동물을 하나씩 되살려 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 손길 닿는 곳에 동물들도 저마다의 표정과 성격으로 살아납니다.

 그가 웃으면 호랑이도 웃고, 성질이 나면 소처럼 맹렬이 돌진합니다.

 순간 삐치면 수탉처럼 삐치고, 잠자리를 보고 웃으면 좋아 죽습니다.

 토끼는 꽃이 되어 잠을 자고 거북이는 불볕더위에 안간힘을 씁니다.

 당나귀는 무거운 소금가마나 저보다 큰 무거운 등짐을 지는 대신

 형형색색의 꽃을 지고 사랑의 장미를 물고 꽃밭을 걷습니다.

 

 그는 어리숙하고 우수꽝스러운 바보 당나귀는  안중에 없습니다.

 순하고 착하고 인내심 많은 당나귀, 임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해 뜨면 해 뜨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멀쩡하면 멀쩡한 대로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행길이면 행길, 시냇물이면 시냇물, 산마루면 산마루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일생 등짐 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착한 당나귀

 맑은날 화가는 당나귀의 등에서 무거운 소금가마를 내리고

 옛날 예수님이 나귀타고 가시는 걸음걸음 사람들이 꽃을 뿌린 것처럼

 가볍고 향내나는 가장 좋은 꽃을 걷어다 나귀 등에 싣습니다.

 나귀는 꽃 한송이 입에 물고 흥에 겨워 두둥실 남은 길을 갑니다.

 

"거칠고 고된 생활 속에서 꿋꿋이 착하게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상징적인 동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당나귀를 많이 그렸고

 그 당나귀에 주는 선물로 동화처럼 그림을 그렸지요."

 

 그의 말처럼 내면의 어린아이를 찾아 동화처럼 그림을 그려서인지'

 그의 그림은 딱딱하거나 자못 심각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림 속에서 여러가지 표정으로 울고 웃는 동물들은

 어릴적 그가 만난 동물들에 대한 그의 마음속 생각의 편린이고

 그 동물들과의 조우와 사귐을 통해서 잦아들었던 한 인간의 생명력이

 회생하고 색깔이 살아나고 비로소 살맛을 회복하게 된 것이지요.

"색을 섞지 않고 밝은 색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종착역은 어린이들이

 쓰는 색이었어요."

 자기 안의 어린아이를 찾아 그 어린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의 동물들과 만나 웃고 실컷 놀다가 그냥 행복해져버린

 사석원 화가.

 그의 어린아이 같은 밝은 표정만큼이나 꽃을 지고 꽃을 문 당나귀

 개그맨처럼 은근 살짝 웃어버리는 호랭이

 맨 먼저 핀 매화에 놀라 성질 난 수탉,

 난 데없이 산 속을 뛰쳐나온 황소,

 어쩜 당나귀에게 꽃을 씌운 대신 자신이 동화 속의 당나귀가 되어

 우화 속의 당나귀보다 더 웃겨버리는 솜씨에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화가로 그를 꼽은 게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자왈 영무자 방유도칙지 방무도칙우 기지 가급야 기우 불가급야

 子曰 寧無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基知 可及也 基愚 不可及也 

 자왈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적에는 지혜로왔고

 나라에 도가 없을 적에는 어리섞은 체 했다.

 그의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의 바보스러움은 따를 수 없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