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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택수 "반딧불의 춤"

2011.04.22 14:33

구인회 조회 수: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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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택수의  "반딧불의 춤"   


 

 多夕 유영모 선생님은 저녘이 셋인  '多夕, '하도 지낸 저녁 사람'

 별호에서 드러나듯이 빛과 어둠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첨도 저녁이요 나중도 저녁, 첨과 나중이 한가지 저녁이로다.

 저녁은 영원하다. 낮이란 만년을 깜박거려도 하루살이의 빛이다.

 파동이 아닌 빛 속에서 쉼이 없는 쉼에  살리로다."

 첨과 나중이 다 어둠이요 빛 보다 어둠이 먼저라고 강론하신바 있습니다.

 빛에서 어둠이 나온 게 아니라 어둠에서 빛이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로지 빛 가운데 있다면 어둠이

 있을 리 없고, 어둠이 아닐테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빛은 어둠 속에서 드러나며,  어둠이 진할 수록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오직 빛 가운데서 또는 어둠 속에서만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빛과 어둠을 나눠 받은 존재로서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다 받아야 성장이 가능하고 상호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음양의 조화를 이룰때 사람은 안정되고

 완전해질 수 있으며, 어둠과 고통의 쓴맛을 본 사람, 한 번 크게 죽어 산

 사람 만이 마침내 빛과 환희의 단맛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별에서 왔으며, 또 어느 별로 떠나갈까?

 까마득한 밤하늘 깨소금처럼 뿌려져 있는 별세계, 이 어마어마하고 표현

 불가능한 장엄 세계를 바라보면 인간은 무궁무진한 창조의 놀라움과

 별들의 신비 앞에 경탄과 함께 침묵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신도 모르게

 별들의 무대에 깊이 참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천상의 뭇 별들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움직일 때, 지상에서도 

 온몸이 별이 되어 별빛을 뿌리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꿈 많은 생명이 

 있으니, 신의 무한한 축복을 받아 육신이 빛이 된 생물 '반딧불이' 

 이 빛나는 반딧불의 향연에 마치 그가 빛이었고 그 빛 속에서 나왔다는

 듯이 같이 얽히고 설켜서 별빛, 불빛이 되어 온통 빛을 그려낸 사람,

 켄버스 가득 빛과 아름다음, 그리고 어둠의 한복판에서도 빛의 흔적을

 아로 새긴 한 화가의 반딧불의 한바탕 춤에 발걸음이 멈추게 됩니다.

 

 그림 언저리마다 스며드는 봄햇살처럼 소박하고 맑은 빛,

 작가는 이처럼 눈물겹게 아름다운 생명의 빛을 어떻게 보게되었을까?  

 궁금증을 뒤로 하고 이 빛의 세상을 펴낸이는 '남택수' 화가 

'남택수' (우리나라, 1968 ~ )화가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가 이제 마흔을 넘긴 젊은 작가로서 영남대학교 미술대와 대학원을

 나왔으며, 수 많은 전시회 열었고 현재는 대구교대에 출강하고 있다는

 정도. 다만 모든 천재들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운명이랄까?

 이 작가의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찾아서'라는 그림을 보면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다섯살이었던 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린 이유는

 본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딸이 아름다운 성년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였다고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서른번 이상을

 수정해서 간신히 완성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한 인간의 열정과 치열한

 싸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셨던가.  

 이 천재에게도 다 주시고 또 몸에 가시를 주셨으니, 누구나 이런 아픔

 겪게 되면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것에 절망하여 넘어지고 주저앉을 터.  

 그러나 이 화가는 저 미약한 개똥벌레가 어둠 속에서 제 몸보다도 훨씬

 큰 불덩이를 만들어 내듯이 존재의 좁은길을 밝히는 우주의 촛불처럼 

 영혼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부채질하여 무한히 화폭에 담아냅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빛과 어둠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꿈과 그리움, 

 사람에 대한 장엄한 기대와 기다림이 어려 있습니다. 저 반딧불이 날마다

 빛을 내듯이 꽃과 소녀, 나무와 숲 그 어디에나 빛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빛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존재의 빛이요 영혼의 꽃이며,

 연약한 반딧블이 불을 내는 것처럼

 작가는 인간이 곧  빛을 내는 에너지요 신성한 빛의 파장임을 깨닫고 

 사방천지 빛의 감동을 구현해낸 건 아닌지...!    

"화가 남택수"  이것이 생이었던가? 그렇다면... !

 하늘의 명령 대로 살아있음으로 순종하며

 창조의 동역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부둥켜 안고 가는 운명애

 그의 육체의 가시는 하늘이 주시는 하나의 시험일뿐,

 그 시험을 통해 황홀한 불빛을 체험한 그의 영혼은 별안간 빛으로 가득

 차고, 기쁨에 넘치는 빛을 주체할 수 없어 온 천지에 불 밝힙니다.

 

 어느 가을 어스름 불재, 땀흘려 일 한 후에 돌아가려는데,

 하늘로 승천하는 불덩이 하나 "어 저 불좀 봐, 도깨비 불이다."

 저 작은 몸에서 큰 불을 내다니,

 그제서야 도깨비불의 정체가 반딧불인 줄 알았습니다. 

'별의 길 하나' 

 그림에 붙여 강은교님의 봄에 대한 추억하나 드립니다.

  

 봄에 대한 추억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나비 날개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나비 날개의 그림자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종소리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종소리의 집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별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별의 길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불빛 하나

 일찍이 거기 놓아 두었던 불빛의 마음 하나

 

 거기서 네가 지금 일어서고 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