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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삼손의 힘"

2011.04.30 19:02

구인회 조회 수:2137

Rembrandt_Samson_And_Delilah.jpg

         

                                                        

                  

                               렘브란트  "삼손의 힘"   


 

 사람의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우람한 근육, 힘줄, 뼈, 머리, 가슴

 혹은 배, 제각기 사람마다 힘의 원천이 다르겠지만 제 힘은 천하장사

 삼손처럼 머리카락에서 나옵니다. 머리카락이 짧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의 힘이 약해지고 머리카락이 길면 힘이 강해지는 듯 하거든요.

 그래서 심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머리털을 기르곤 합니다.

 

 제 얘기는 마음의 힘에 관한 것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족의 영웅

 삼손의 괴력이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에서 말씀하고 계시니 의심치 말고 믿어야 한다면

 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삼손에 관한 여런 전승이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귀의 턱뼈로 블래셋 민족 천명때려죽였다든지, 들릴라의 꼬임으로

 머리카락을 잘려나가니 힘이 쫙 빠졌다거나 마지막 죽어갈 때 성전의

 기둥을 밀어서 당시 다곤 신전에 있던 블레셋 사람 수천 명이 죽었다든지

 하는 대목을 읽을 때면 히브리인의 지도자 삼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마치 신화 속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을 읽는 듯 합니다.

 

 그러나 당시 삼손이 활동했던 시대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블레셋의

 압제 하에서 지독한 원한관계에 있었으며, 사무엘이 기록했다고 하는

 판관기를 기술한 연대가 불확실하고, 성서가 과학적이기 보다는 신앙에

 기초한 종교적인 언어로 쓰여졌다는 관점에서 볼 때 삼손에 대한 기술은

 기록의 무오함과 진위를 떠나서 기자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가정하에 보다 객관적 실증적으로 삼손과 그의 힘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당시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성서에서 말씀하고 계신 블레셋 민족의 뿌리를 살펴봅니다.

 성서는 대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에

 바로 함의 자손이 가나안과 블레셋이라고 설명합니다. 불행히도 다른

 아들과 달리 블레셋의 조상 함은 아버지 노아의 저주를 받게 되지요. 

 노아가 술을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채 장막에서 자고 있을 때 나중에  

 둘째아들 함이 형과 동생에게 이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잠에서 깬 노아가

 이 일을 알고 둘째아들 함을 저주하게 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라. 형제들을 섬기는 천한 종이 되리라"(창9:25)

 이 함의 아들이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이고, 미스라임의 후손 중에

 가슬루후, 이 가슬루후 사람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다고 합니다.(10:14)

 블레셋은 원래 해양민족으로서 갑돌섬이 본거지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서남쪽 가자지구에 정착해서 삽니다. 이후 블레셋은 '블레셋 평야' 의

 기름진 땅과 소산, 해양 민족 특유의 공격적 기질과 잘 발달된 무기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는 이스라엘과 번번히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사람들의 진멸을 지시했지만, 이를

 완전히 이행치 못하였고, 오히려 서로 왕래하고 혼인함으로써 그들이

"올무와 채찍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과 눈에 가시(여호수아23:10)"가

 될 것이라는 여호수아의 유언대로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숙적으로서

 대대로 핍박과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과 블레셋(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참고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의 교두보였던 여리고성은

 오늘날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중심지로서 아라파트가 세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본부가 있는 곳이자 무장 저항 단체인 '하마스'의 본거지며,

 삼손이 최후를 마친 블레셋의 다곤 신전이 자리잡은  '가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다투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

 를 가르킵니다. 삼천년 전 민족의 원한이 대대로 이어져 지금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피의 보복이 계속되고 있으니, 참 기막히고 참담한 운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과 같이

 끊임없이 경쟁하고 접전을 벌여왔으며, 히브리의 사사 삼손의 일대기는

 그 어떤 이민족의 신보다 위대한 하느님과 그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구원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개하고 있으며,

 자손만대에 걸쳐 이를 전하려는 듯이 압제받은 민족의 아픔과 원한에

 대하여 다소 과장되고 희망섞인 통쾌한 복수극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파악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왜 성서는 삼손의 힘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머리털에서 나온다고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시의 전쟁은 단지 민족과 국가의 싸움을 넘어서

 신과 신의 전쟁, 민족신의 전쟁이기도 했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은 하느님과 블레셋의 다곤신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삼손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가려 뽑으신 나실인이었으며,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장수였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존재가 선별되고 바쳐진 이 나실인은 세가지 서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포도, 포도주, 독주나 부정한 음식을 마셔서는 않되며,

 둘째, 나실인은 죽은자로부터 삼가는 것 입니다.

 세째,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표가 머리에 있으니,

 머리털을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바로 나실인으로서

 하느님의 사람이며, 사사로서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증표인 것이죠.

 

 불행히도 삼손은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었던 것인지, 하느님의 사람

 으로서의 서원을 하나씩 깨뜨리고 맙니다.

 죽은 사자의 몸에서 벌꿀을 채집하는가 하면 복수에 불탄 삼손이 나귀의

 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때려 죽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한가지 서원이

 물 건너 가고, 포도주를 먹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블레셋 여인들을 탐하여

 그들과 혼인하려 한 것이나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라는 블레셋 여인

 에게 푹빠져 버린 것이죠. 하느님의 적신호를 무시하고 자만심과 여인에

 대한 탐닉으로 영적이지 못한 파멸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내 몬 것이 술을

 마신 것보다 더 나실인으로서 서원을 어긴거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서원은 다 쉬 감춰지거나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

 이었다고 봅니다. 백성들도 그를 따르기에 큰 문제나 지장은 없었고요.

 그러나 세번째 블레셋 여인의 무릎에서 그의 머리가 잘려나간 순간 그의

 마지막 서원마저 깨져버리고 삼손의 억센 힘이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삼손의 자격 상실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삼손은 별 볼일

 없는 자이니 그에 대한 기대 자체를 하지 말라는 포고와 다름 없고요.

 굳이 삼손을 제거하려고 했다면 뭐 힘이 어디서 나오냐고 물어볼 것이

 아니라 블레셋 여인을 통해서 독약을 먹이거나 잠잘 때 제거해 버리면

 될 것 아닐까요? 삼손은 타고날 때부터 항우나 장비처럼 힘이 장사인 것

 이 틀림 없으나 지혜가 딸리고, 독불장군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블레셋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짓누르고

 자신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선포함으로서 삼손을

 중심으로하는 이스라엘의 결집과 연합을 와해하고 분열시키려는 야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이는 전형적인 식민지 백성에 대한 기만이요 통치수법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 삼손이 힘이 빠진 것은 그가 하느님께 부르짖은 대로 머리털이 잘려

 나가서라기 보다는 두 눈이 다 빠져서였기 때문일 겁니다. 블레셋의 입장

 에서도 힘이 다 빠진자의 두 눈을 굳이 다 빼낼 필요성이 별로 없었고요.

 사실 머리털에서 힘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눈을 다 빼 버린 것이

 아닐런지요. 머리털 보다 눈을 다 빼버리면 아무리 힘있는 자라하여도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삼손의 머리털

 에서 힘이 나왔는데, 머리털이 잘려 나가서 하느님이 삼손에게서 떠나고

 너희 이스라엘에게서도 너희 신이 떠났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닌지요.

 삼손도 그가 죽어갈 때 머리를 자른 블레셋 놈들이라고 안하고,  

"멀쩡한 제 눈을 빼어버린 블레셋 놈들에게 단번에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사사기16:28)"라고 말합니다. 머리 자른 것이 치명적이었다면

 머리털을 자른 놈들을 원수갚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또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경전에는 헌신의 머리털이

 점점 자라서 삼손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으로 것 묘사하고 있는데,

 정말 그런걸까요?

 블레셋의 국가적인 우상인 다곤신을 위한 큰 잔치에 삼손은 수 천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광대놀음을 할 처지에 놓여졌습니다.

 이 모멸과 분노와 한 맺힌 자리에서 삼손은 다시 한 번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신전 중앙의 두 기둥을 자빠트렸고 신전이 무너지면서

 블레셋 족장들과 사람들을 덮쳐서 그가 살아서 죽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전하고 있습니다. 진짜 신전 기둥을 자빠뜨 

 려서 천명이 넘는 원수를 죽였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허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500명이 사망했고, 미국에 9.11 테러로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2,819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건물이 무너지면

 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가 있겠지요.

 제가 보기론 삼손은 머리털이 잘려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눈이 빠져서

 힘을 쓸 수 없었고, 간신히 소년을 힘을 빌어 두 기둥 가까이 갈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삼손이 힘을 쓰게된 이유는 첫번째로 성전 기둥을 양손

 으로 잡을 수 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결행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즉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노량해전에서 알 수 있듯이

 살려고 했을 때는 아무 일 도 할 수 없었는 데 죽자고 덤비니 본래 힘을

 쓸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이 깔려 죽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경전에는 정확히 몇 명이라고 안하고 생전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몇 명 죽인 것 보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았고, 하느님이 다곤신을 무찔렀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한 듯 합니다.

 

 위 그림은 17세기 유럽 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

 빛과 어둠을 탁월하게 만졌던 명암법의 대가 렘브란트(1606~1669)의

 삼손과 들릴라(Samson And Delilah), 렘브란트는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삼손의 일대기를 다섯 점의 연작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은 블레셋의 들릴라의 간계에 빠져 머리털이 잘려지기 직전 상황

 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여인의 눈빛과 삼손의 머리털을 잡은 손 그리고 삼손이 푹 빠져 있는

 무릎이 조명을 받고 있고 삼손이 무방비 상태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누란지세의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세상 모르게 자빠져 자는 삼손과

 칼집에 든 쭉 늘어진 칼, 그에 반하여 째진 눈에 근육질의 남자가 약간

 벌어진 가위 들고 잽싸게 달려드는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 삼손을 불행과 파멸로 이끈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삼손이 나실인으로서 세가지 서원을 어긴 것보다, 욕정에 빠져버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욕정은 그렇게 우리를 압박해서 영적 능력

 을 잃게 만들고 하느님이 태고적부터 주신 엄청난 힘을 소실케 합니다.

 '들릴라'가 '유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도처에

 삼손 같이 힘센 사람도 겪는 유혹이 도사라고 있습니다.

 그 유혹은 비단 욕정의 유혹 뿐만 아니라 술과 음식, 재물과 지위, 명예 등

 수 많은 형태로 나타나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빠뜨립니다.

 어쩌면 이 그림에서 욕정에 빠진 삼손의 눈을 볼 수 없는것처럼 블레셋에

 의해 그의 양 눈이 빼지기 전에 삼손은 이미 봉사였는지 모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깨끗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네 눈이 악한 생각과 욕망으로 흐려져 있다면 너는 심한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 어둠을 어찌 이루 다 말하랴!(마태 6:22)"

 

 결국 이 삼손이 전해주는 메세지는 팥 한그릇에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아 먹은 에서처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부로부터 받은 아들의

 자격과 존엄이 순간의 유혹에 의해서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어둠과 욕망의 신전의 두 기둥을 허물어뜨려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눈 뜬 인간을 쉽게 찾으실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영의 공간을 확장할 것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 순간 삼손과 동시대인으로서 어둠의 신전의 두 기둥을 움켜 잡고

 온 힘을 다하여 확 밀어 넘어뜨립니다.

 

"아버지, 이번만 저를 돌보아 주십시오.

 한번 만 더 제게 힘을 주십시오

 오, 이렇게 간절히 주께 빕니다.

 멀쩡한 제 눈을 빼어버린 블레셋 놈들에게

 단번에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사사기 16:28)"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