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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자화상 "돌아온 탕자"

2011.02.09 16:37

구인회 조회 수: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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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의  자화상 " 돌아온 탕자"   


 

 17세기 유럽 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

 빛과 어둠을 탁월하게 만졌던 명암법의 대가 렘브란트(1606~1669)

 이 렘브란트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지나칠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그  자신, 바로 자화상입니다. 허긴 그림을 시작해서

 그림을 마칠 때까지 100여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려댔으니, 그의 주된

 작품으로서 자화상이 연상되는 것이 당연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를 자세히 보면 그리 폼나고 잘생긴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주구장창 자신의 모습을 그린 이유가 뭔지 새삼 궁금해지는군요.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레이덴 지방의 방앗간 집에서 나서

 그런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14살 때 레이덴 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자신이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음을 깨닫고

 '스바넨부르그'를 거쳐 '라스트만' 문하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천재성과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암스테르담

 의사협회의 주문으로 그린 '툴프박사의 해부'가 미술계의 센세이션을

 일으켜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탄탄대로를 걷게 되지요.

 이 시기에 명문가의 딸,  '사스키아'와 혼인을 하는가 하면

 당시 초상화의 일인자로서 돈과 명성을 쌓게 됩니다.

 그는 자신감이 충만했으며, 모든 일들이 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평면적인 초상화의 명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그도

 더 이상 벽돌을 찍어내듯 그려대는 무미건조한 자신의

 그림에 견딜 수 없게 되고 돌연 또 다른 세계를 향하여 뛰쳐나갑니다.

 그 후로 다시는 평면적인 판박이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고 극적 명암

 효과를 강조한 렘브란트만의 전대미문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요.

 그러나 그 길은 위험천만한 길이었고, 그의 선택과 결정은 결국

 사람들이 동경하는 돈 많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급기야 '야경 夜警'의 제작을 고비로 한 순간에 붕괴되는 성서의 '욥'처럼

 나락으로 치닫게 되고, 게다가 렘브란트에게 초상화를 맡기면

 2~3개월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의뢰인이

 뚝 끊겨 버립니다. 여러 사건 속에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 마저 죽자

 마치 복음서에 집나간 둘째 아들처럼 낭비와 추문으로 망가지고,

 자신이 파괴되는 만큼 그의 명성과 재산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착한 '헨드리키에'와 재혼하기도 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깐 곧 파산과 혹독한 생활고를 겪게 되고, 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인 ' 사스키아' 사이에서 얻은 단 하나 뿐인 아들 ' 티투스' 마저

 잃게 되는 기막힌 운명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런 끔찍하고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그린작품이 복음서의 ' 돌아온 탕자'

 '전 세계 그림 가운데서 도달할 수 없는 절정'이라는 찬사를 받은

 걸작으로 1667년경, 렘브란트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미완성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를 완전 상그지로 그립니다.

 이 거지는 '자화상'에서 늠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는 동떨어진

 아버지로부터 떠나 깊은 시름과 절망 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잔혹한 운명을 짊어진 탕자,

 아버지로부터 도망간 인류가 다 같이 겪는 비참한 꼬라지며,

 그림 속의 탕자는 또, '렘브란트' 자신의 영혼의 '자화상'입니다.

 

 이  그림은 집 나간 아들이 집에 들어 온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양 오직 사랑과 긍휼의 눈빛으로 잃어버린 아들의 영접에만

 집중합니다.  아들은 집 나갈 때의 저돌적이고 당돌함은 사라지고 마치

 거지나 죄인처럼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있으며, 아버지는 무릎 꿇고

 어쩔줄 몰라하는 아들의 가녀린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삶에 지치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아버지와 아들이 깊이 만나는 이 장면에서 그의 특유의

 빛과 어둠의 기법을 살려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에서 누더기를 걸친

 아들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축복과 구원의 세계를 그려냅니다.

 반면에 맨 우측의 장대같이 꼿꼿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이가 있으니,

 이름하여 바로 큰 아들,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동생을 보고 아버지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반갑게 맞이하기는 커녕 재판정의 맨 윗자리에

 앉아 판결이라도 하려는 듯,

 그 옛날 렘브란트가 잘 나가던 때 그린 젊은 날의 자화상처럼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야박하고 매정하게 구경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선 돈관리인이나 법률 고문이나 될까요, 돈 줄인 큰 아들

 옆에 낮은 자세로 딱 붙어있는 집사는 한술 더 떠서 얼마나 심사가

 꼬였던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동병상련이랄까? 귀퉁이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시종의

 눈빛이 한층 더 따사로워 보이는군요.

 이 그림 속에 등장인물의 표정과 태도가 어찌 그리 리얼하고 섬세한지

 혹, 렘브란트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또 다른 자신의 자화상으로서

 의식과 형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아닌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지요.

 

 세월이 익어  렘브란트는 해질녘 인생의 마지막 추수를 앞두고

 인간은 날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뛰쳐나간 존재요, 산다는 것이

 아버지께로 받은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처럼 생을 구걸하다가

 마침내 빈털털이가 되어 집나간 아들을 찾으시는 아버지께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정말 자신의 처지가 거지나 탕자와

 다를 게  없다는 점을 깨닫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돌아온 탕자'

 즉 자신의 마지막 '영혼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은 아닐까요?

 또한, 이 탕자는 바라보면 볼수록 어쩜 그렇게 내 속사람과 흡사한 건지,

 이 불멸의 그림을 통해서 오히려 사람에게 간절히 비는 아버지의

 신령한 자비와 은혜의 세계에 깊이 목도하게 됩니다.

 

 한편 그에게 슬픈 은총이 더해져 이 최후의 미완성 그림을 그린 다음해

 그의 전부인 맏아들이 죽고, 그 역시 아들이 죽은 이듬해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이 또, 빛과 온 우주의 신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죄 없다' 선언하신 아버지의 뜨거운 영접을 받으며,

 신성의 품에 안겨 고이 잠들게 됩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