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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소대가리 운동화..

2014.05.09 23:39

성소 조회 수:1167

"산에 다녀왔어?”
“아니, 못 갔어” 엄마의 언성이 높아집니다.
“왜?”
“아니, 같이 간다는 년이, 어버이날이라고 지 딸내미랑 사위가 옷사준다고 안 왔어..
뭐시기, 소대가리, 소대가리하면서 거기서 맘대로 고르라고 했다고..
그럼서 제일 비싼거를 골랐다고 자랑은..“

궁시렁궁시렁 하시던 목소리가 더 높아지시더니,
약 올라죽겠다는 목소리로 한 마디 더 붙이십니다.

“요즘은, 뭐 산에를 하나 올라가도.. 다 입는 게 있다면서..
무슨 소대가리라고, 어찌나 자랑을 해쌌는가...“.....

프리랜서라 월급이 들쭉날쭉한데, 딱 5월달이 들쭉인지라..
홈쇼핑 보며, 옳타구나..라고 주문한..
트렉킹화, 워킹화, 가방에 양말까지.. 무려 4종세트!!가 들어있는.
이제 막 도착한,
크기만 무식하게 큰 상자가 머쓱해지는 순간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자랑한다는, 흔하디 흔한..
소대가리 하나 안 그려져 있는,
엄마가 메이커가 어디거냐고 물어봐도..
당췌 알아들으실 수 없는,
영어로 된 이름만 가득 써있는 운동화입니다.

나는 “맘에 안 들면 반품해도 돼,
내가 내일 소대가리 사줄께”를 연발하며
상자 속에 든 물건들을 하나씩 머쓱하게 꺼내고,

“아녀, 비싼 게 뭔 소용여.. 이것도 괜찮네”를 연발하시며,
제가 꺼낸 운동화도 신어보고, 가방도 메 보는 엄마입니다.

“별로, 안 이쁘네.. 에잇, 색깔이 못 쓰겄네..
상자에 다시 집어놔, 이거 반품비도 안 나와“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엄마는..
“그냐, 긍께.. 어찌 색깔이 좀 어둡드라고.. 핑크가 환하고 좋은데..
가방도 이상혀..“라고 한마디씩 하시며,
정말, 번개처럼 후다닥 원래 왔던 고대로...
원상 복귀시키시고는, 테이프까지 완벽하게 붙여놓습니다.. -_-..

=====

그리고 오늘..

"엄마, 작은 딸내미 왔네, 나와봐“
잠든 엄마를, 큰 목소리로 깨우고..
상자 속에 든, 핑크색 운동화도 꺼내고,
형광색 무늬가 알록달록 이쁜, 등산바지도 꺼내서 늘어놓자..
“아이고 뭐다냐”하시면서도, 엄마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집니다.

“자, 다리 한 번 꽂아봐!!”라고 바지를 벌려주자,
“헤헤헤~”웃으며 다리를 집어넣는 엄마의 허리벨트까지 꼭꼭 메어주고,
운동화까지 손수 신겨드립니다.

“이게, 소대가리여!!, 봐봐! 소대가리 보이지?”
“소대가리, 소대가리 하더니, 참말로 진짜 소대가리네”
“내가 다른 친구들한테 안꿀리게, 하나씩 장만해줄께!!
월급 한번 타서 모자 사주고, 또 월급 타서 지팡이 사주고,
또 월급타서 잠바 사주고.. 하나씩 다 마련해줄께엥~~~“
“진짜~~아이고, 우리 짝은 딸이 돈썼네~”...

남편 복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는 것이
삶의 슬로건인.. 엄마의 웃음에 가슴이 찌잉..해지는 순간입니다.

그 소대가리가 뭐라고.. 엄마가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는데...
내 옷 한 벌, 친구들에게 호기있게 쏘는 저녁 몇 번 줄이면..
충분히 사고도 남을 돈인데.. 그걸 줄여보겠다고..
꼼수를 부린 게 죄송하고, 후회가 됩니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 때가 오면,
내가 더 안정이 되는 때가 오면.. 그때 잘해드려야지했는데..
엄마의 가장 젊고 찬란한 순간들이..지금도..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 자식들이 이런 것도 사줬네"라며,
뻔하고 유치한 자랑이지만.. 내심 뻔뻔하게 해보고 싶은 것도..
지금 이 순간일텐데 말이죠...

혈통적으로 다리가 짧은 집이라..
내일 양장점에가서 줄이기로 한 바짓단을 곱게 접어놓고..
잠자리에 든 엄마의 가지런한 숨소리를 들으며..
토닥토닥 글을 쓰는 지금.. 참 행복한 기분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소대가리라고는 하나..
세일상품이었던 것을 속으로 쬐끔 찔려하며..
사이즈가 작아 내일 교환하기로 한 운동화는..
색감이 좀 더 이쁘고 환한.. 정가 운동화를 사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ㅋㅋ

지금은.. 우리 엄마가..
가장 예쁘고 젊은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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