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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의 겨울 하늘

2011.02.09 10:40

하늘 조회 수:1383

 

보스턴의 겨울 하늘   /신 영

 

 

 

 

보스턴의 겨울 하늘은 낮은 첼로 음처럼 잿빛으로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눈이라도 흩어져 내릴 듯이 빗방울이라도 떨어질 듯이 하늘의 구름으로 있다. 오늘을 만나러 온 긴 어제의 길은 먼 여정의 시간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의 시간처럼 닿을 듯 말 듯한 안타까움과 반가움 그리움의 색깔들이 하나 둘 하얀 백지를 적시며 삶의 여정을 꾸려온 것이다.

 

하늘은 늘 푸른빛이 아니라는 것을 불혹의 언덕에 올라서야 알 수 있었다. 먹구름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햇살 고운 날 희망으로 부풀던 어린아이같은 철없는 어른에게 비치는 하늘은 그랬었다. 지난 일들은 어제의 이미에 속해 있고 돌아올 일들은 내일의 아직에 머물러 있다. 나는 그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서 나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며 삶이라는 공간에 점을 하나 찍고 있다. 아직은 서툴지만 큰 그림 속에서 작은 그림을 매일 그리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그림일까,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한 오늘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쓸쓸한 작은 동네의 한 귀퉁이에서 가끔은 어릴 적 시골 마을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한겨울의 풍경 속에 뉘엿뉘엿 지는 해는 붉은 오렌지빛 노을을 이끌고 서산으로 향한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올 무렵 작은 집 뒤꼍에 있는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오른다. 그 어렴풋한 기억이 가끔은 보스턴 이민자들의 모습처럼 그리움 가득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풍요롭고 화려함 속에서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어쩌면 더욱 지독한 갈증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애써 밀쳐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어지는 고독에 대한 울부짖음은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 속에서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고요하지만 깊은 속 물결로 꿈틀거리며 유유히 흐르는 보스턴 찰스 강(Charles River)은 젊은이들을 유혹하고도 남을 만하다. 찰스 강변을 따라가노라면 흐르는 물결 따라 보스턴 박물관(Museum of Science), MIT 공대(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와 하바드 대학(Harvard University)과 보스턴(Boston University)대학이 함께 흐른다. 그 젊은이들이 열정적으로 배우고 익히고 맘껏 자신을 표현하고 함께 나누는 장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저 찰스 강물처럼 젊은이들의 꿈도, 희망도 쉬지 않고 유유히 오늘도 흐르는 것이다. 살아 있음은 이렇듯 꿈틀거리고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일이다. 삶도 이렇듯 마음에 여유의 공간을 가지고 급하지 않게 시간의 여백을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리라.

 

외로움이 쓸쓸함이 짙어 오는 날이면 이렇게 보스턴 시내의 찰스 강변을 걷는 버릇이 있다. 물론, 계절마다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내겐 잿빛 하늘에 드리워진 겨울 찰스 강을 더욱 사랑한다. 이렇듯 보스턴의 하늘은 잿빛이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보스턴을 말하자면 건물들의 건축 양식을 보더라도 가볍지 않은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은 우아하고 깊은 중후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은 거만한 인상을 받을 만큼 급하지 않은 여유의 모습이 어쩌면 이 보스턴의 특징인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는 우울함마저도 담은 저 겨울 잿빛 하늘처럼….

 

보스턴의 하늘은 내게는 언제나 꿈이고 희망이다. 잿빛 속에서 환한 빛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의 말간 마음이길 소망한다. 때로는 사는 일이 힘겹고 고통에 있을지라도 어둠이 꼭 절망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산 날보다 더 길어진 보스턴은 이제 고향이 되었다. 또한, 사계절이 뚜렷한 이 도시에서의 삶은 내게는 큰 축복이다. 아직은 어설픈 詩人의 길을 걷고 있지만 생활 속에서 만나 나누는 자연과 사람의 호흡은 내 삶의 노래이고 詩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의 특별함은 바로 이렇듯 자연과 내가 하나 되어 우리가 되는 일임을 깨닫는다.

 

겨울의 보스턴 하늘은 잿빛이지만 봄 햇살이 찾아오면 연분홍빛 하늘은 또 꿈을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겨울의 혹한을 잘 견디고 언 땅을 들어 올리는 꿈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고 파릇파릇 연한 새순을 올리며 봄 하늘이 찾아올 것이다. 새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보스턴의 하늘빛은 봄 향기 가득 담아 핑크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함께 부르는 우리의 꿈과 희망의 노래를 준비하며….

 

 

2008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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