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82568
  • Today : 621
  • Yesterday : 1338


거지 이야기

2010.11.04 17:02

삼산 조회 수:1390

거지 이야기

 

                                           -김홍한 글-

 

옛날에 한 옛날에 어떤 거지가 살았어요. 그 거지는 참으로 행복했답니다.

배고프면 얻어먹고 못 얻어먹으면 굶고, 배부르면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고 생각하다 피곤하면 자곤 했습니다.

그 거지는 자기가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괴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라는 놈 때문입니다.

온 몸을 기어 다니며 뜯어먹는 벼룩하고 비슷한 놈입니다.

이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몸을 갉아먹으니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긁적긁적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밥을 실컷 얻어먹고 난 거지가 양지바른 곳에 누워서 잠을 자려 하는데 몸이 근질근질했습니다.

“옳지, 심심한데 이 사냥이나 해야겠다.”

하고는 옷을 벗어서 이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이를 잡아서 손톱으로 꼭 눌러 죽이려 하는데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놈도 먹고살려고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뭐 좋은 수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조그만 주머니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주머니에 이를 잡아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밥 먹고 나면 주머니를 열어서 이를 풀어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가 얼마를 뜯어먹고 나면 또 잡아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도 하루 세끼만 먹으니 너희들도 하루 세끼만 먹으라는 심산이었습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매일 이 짓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한 3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훈련이 되어서 주머니를 열면 일제히 나가서 뜯어먹고 다시 모두 주머니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하루 종일 몸을 극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들이 식사하는 잠시 동안만 참고 견디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덧 이들과 정이 들어서 그놈들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귀엽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들이 나와서 식사할 시간이 되었는데 몸이 가렵지가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지는 주머니를 열어서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주머니 속에는 이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편지가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거지님,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벼룩보다 신사인 우리 이들이 어찌 거지님의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우리들은 거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지님의 몸을 떠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떠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일동.

추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으니 찾지 말아 주십시오."

“허! 이런 기가 막힐 데가 있나.

내가 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다니.”

혹시나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놈은 없나 해서 거지는 옷을 벗어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거지는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배고파도 밥도 먹기가 싫어졌습니다.

“밥은 먹어서 뭐해 먹여 살릴 이도 없는데….”

그럭저럭 또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거지는 세상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고 소위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정작 하찮은 이에게 정을 주고는 이렇게 슬퍼한다는 생각에 자신은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지는 언제부터인가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습니다.

거지는 이제까지 오로지 "자유"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고, 그래서 언제라도 새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자유로운 것 보다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 따듯함이 더 좋을 듯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 거지도 장가를 들었답니다.

평소 자기를 좋아하던 여자 거지인데 못생긴 곰보였습니다.

이들이 떠나고 슬픔에 잠겨 며칠을 굶었을 때 이 여자곰보거지가 얻어 온 밥을 나누어주어서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주 밥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다 있지요.

그 거지가 결혼하고 나니까 이들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온몸이 굼실굼실 하답니다.

거지는 가끔 결혼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답니다.

전에 혼자 자유롭게 살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특히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진짜 결혼한 것이 후회됩니다.

얼마 전에는 큰 부부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거지가 떠났었습니다.

그때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혼자 살 때는 몰랐는데 같이 살다가 혼자되니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거지는 새로운 결론을 내렸습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원수 같은 마누라하고라도 같이 사는 게 낫다.”

라는 것입니다.

“아이고~ 지겨워 웬 이는 이렇게 많은지….”

-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4 7전 8기 [6] 요새 2010.11.16 1921
633 친구의 선물 file 요새 2010.11.15 1187
632 행복을 담는 그릇 [2] 요새 2010.11.13 1216
631 계룡산의 갑사로 가는 길 [1] file 요새 2010.11.13 1848
630 “불교와 개신교” 충돌의 벽을 허물어야 /탁계석 하늘 2010.11.12 1146
629 우리아빠기 대머리인 이유. 삼산 2010.11.10 1129
628 내리사랑 [2] 하늘 2010.11.08 1231
» 거지 이야기 [2] 삼산 2010.11.04 1390
626 문안드립니다. 석원 2010.11.04 1294
625 고통苦痛은 삶의 한 부분이기에 [2] 하늘 2010.10.27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