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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웬수(怨讐)야 !

2009.07.06 15:37

구인회 조회 수:2071


      "이 웬수(怨讐)야!
      제목이 자극적이죠. 웬수(怨讐)란 말이 원래 자극적인 말입니다. 이 말난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인상이 찌뿌려지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 대한민국을 침략한 나라가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6.25 노래’에서 ‘원수여 적에 무리 쫒고 또 쫒아’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한민족이면서도 유독 북한에 대한 원한을 더 키워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인생을 살다보면 원수관계는 아니더라도 서로 미워하거나 불편한 관계는 의도하든 안하든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이 미움과 원한 때문에 이를 악물고 쌈박질을 하거나 서로 적대시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갑자기 원한이나 원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원수에 대한 성인들의 말씀과 견해가 궁금해서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원수에 대해서“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께서도 원각경에서 “관피원가 여기부모 觀彼怨家 如己父母” “원수를 보거든 네 부모와 같이 섬기라” 심원해자심혜호 深怨害者深惠乎 “깊이 미워하는 자를 더 깊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둘다 뭐라 표현 할 수 없이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말씀이시죠. 물론 사람의 지혜와 깊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막상 이런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 대개 성인의 말씀마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감정이 앞서고 미움이 앞서는 게 대부분입니다. 성인의 말씀도 원한의 문제에 대해선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아니면 이 말씀 속에 숨은 가치를 잘 몰라서인가요? 그저 현실 속에서 이를 수용하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둘러대면 그만이겠지만 좀 더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 중에 이 문제에 대해서 제 마음을 근원적으로 울린 것은 붓다가 고령에 말씀하신 법화경 法華經의 재발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젤 괴롭힌 사람이 그를 배신한 유다였다고 한다면 부처님의 마음을 젤 괴롭힌 사람은 자타가 공인하는 데바달다 提婆達多 입니다. 데바는 다름 아닌 아난다의 형으로서 부처님과 사촌지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다문제일이라며 붓다의 10대 제자로서 명성을 드날렸지만 또 한 사람은 악인의 전형으로서 악명을 드높이고 있으니 참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데바달다는 천품이 영특하고 15세가 안되어 온갖 문무에 통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품이 사납고 욕심이 과한 나머지 부처님의 위치와 명성을 독차지하고자 흉계를 꾸미고 그분에게 가진 해코지를 다합니다. 어떻게라도 부처님만 죽으면 자신이 부처가 될 것으로 착각했던 거였어요. 붓다를 죽이려고 높은 곳에서 돌을 굴리고 술취한 코끼리를 풀어 밟아 죽이려 하다가 이도 저도 다 실패하고 손톱 밑에 독을 바르고 독살을 기도하다가 실수로 손톱에 글켜 제가 죽고 맙니다. 그래서 혹자는 데바달다를 가르켜 살아서 지옥간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에 대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그 인생에 대하여 통한과 아픔을 표시하셨다지요. 예수님께 있어 개인의 감정이나 용서의 문제는 이미 떠나있는 분이셨어요 다만 유다의 슬픔과 아픔을 생각할 때 너무 괴로우셨던 거지요. 아니나 다를까 유다는 만고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오늘에 이르지 않습니까. 위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앞을 내다보고 유다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서글퍼하며 한탄하신 겁니다. 유다와 빌라도가 후세에 이르도록 욕을 먹는 것처럼 부처님에게는 원수 중의 원수, 후세에 이르도록 지탄받는 자, 이 데바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법화경 데바달다편에 붓다는 예상과는 달리 “데바성불 提婆成佛”이라고 수기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데바는 불교의 최고 경지인 無上無等正覺 깨달음(僻支弗)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아니 틈만나면 자기를 죽이려한 원수에 대하여 용서를 넘어 성불할 것이라뇨. 이건 또 무슨 가당챦은 말씀이신가요. 이 의문의 실마리는 붓다의 전생 이야기에서 풀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생에 대한 대답이 제 감정을 뒤흔들었고 인생을 사는 훌륭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데바는 전생에 내 스승님 이셨다 그런데 내가 스승님 말씀을 듣지 않아 스승님을 괴롭게 했고 이번 생에서 전생의 스승인 데바가 내 사촌으로 나서 나를 죽이려 한 것이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데바가 없었더라면 나는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시면서 “데바 성불 提婆成佛” 데바도 성불하실거라고 수기(예언)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복판 속에서 부부, 부모, 자녀, 친척, 교우, 직장동료의 인연으로 가정, 교회, 학교, 사회 등에서의 수많은 관계와 원인 모를 만남이 그것이 설령 미움과 원한이 맺힌 불편한 만남이라 할지라도 붓다의 말씀처럼 내 원수가 전생의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또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내가 그분의 말씀을 어기고 나쁜 짓을 일삼다가 이 생에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깊이 숙려해볼 일입니다. 그래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내 마음에 대못을 박고 내 영혼에 커다란 생채기를 낸 그 나쁜 사람이 다름 아닌 전생에 나를 구해준 은인이거나 내 전생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 이실 수 있다는 한 생각은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해소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소중한 이유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요? 삼가 어른의 말씀(法華經)을 풀어봅니다. 그리고 데바가 없었으면 성불하지 못했을 거란 붓다의 말씀과 같이 지금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케 하는 그사람 이야말로 진정 ‘나의 스승’ 이라는 생각을 하고 한 세상 살아간다면 세상살이가 좀 더 간단하고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09. 7. 6일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