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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

2015.05.19 08:27

물님 조회 수:471

궁합이란 무엇인가?
궁합에는 세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 하단전(下丹田)의 궁합, 중단전(中丹田)의 궁합, 상단전(上丹田)의 궁합이 그것이다. 하단전이란 인체의 배꼽 아래 부분을 일컫는다. 배꼽 아래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가 여부가 하단전의 궁합이다. 이 부분은 성적인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키워드는 섹스(Sex)다. 궁합(宮合)의 궁(宮)자가 '대궐'이라는 뜻도 있지만, '생식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궁합'의 직설적인 의미는 '생식기를 합한다'가 된다.

 

우리 민속에서는 이를 흔히 '속궁합'이라고 표현한다. 성적인 에너지가 충만한 20대 시절에는 하단전의 궁합에 몰두하게 마련이다. 결혼 상대자도 섹시한 상대를 최우선으로 선호한다. 부모는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지만 결혼을 앞둔 당사자는 '눈에 콩깍지가 씌인 탓에' 상대방의 외모만 눈에 들어온다. 하단전 궁합의 핵심은 섹스다.

 

중년에 들어서면 중단전의 궁합이 중요하게 된다. 중단전이란 가슴 부위, 즉 오목가슴 부분을 지칭한다. 중단전의 키워드는 돈(Money)이다. 돈이란 사회적 능력의 총합을 의미한다. 중년에는 돈 많은 파트너를 원한다. 나이가 들면서 섹스에서 돈으로 관심사가 이동한 것이다. '정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산다'는 어느 중년의 고백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를 속물근성이라고 욕하면 안 된다. 씨를 뿌렸으면 여기에다 거름을 주고 발육시켜야 한다. 젊은 시절의 섹스가 씨를 뿌리는 단계라면, 중년의 돈이라는 것은 그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줄기가 나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거름에 해당한다. 거름에서 냄새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름이 없으면 줄기가 자랄 수 없지 않은가.

 

중단전이 끝나면 상단전으로 옮아간다. 상단전은 이마 부분이다. 상단전의 키워드는 토킹(Talking)이다. 노년이 되면 섹스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가 최상의 파트너다. 이야기가 통한다는 것은 추구하는 이념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논어'에서는 이념이 같은 동지를 '붕(朋)'이라고 표현하였다. 달 월(月)자가 나란히 서 있다. 달 월자는 추구하는 이데아를 상징한다. 서머싯 몸의 유명한 소설 '달과 6펜스'를 보면 달은 추구하는 이데아를 상징하고, 6펜스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하찮은 것들이다. 6펜스는 버리고 달을 좇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우(友)가 고스톱이나 골프를 같이 치는 수준의 친구라면, 붕(朋)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이념적 동지나 도반을 가리킨다.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낙호'는 그러한 친구가 왔을 때 정말로 기쁘다는 말이다.

 

상단전의 궁합이란 이처럼 서로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와의 만남이다. 상단전은 궁합의 완성단계다. 궁합의 1차원은 섹스이고, 2차원은 머니이고, 3차원은 토킹이다. 점차적인 진화발전단계를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궁합의 종착점은 상단전에 있다. 상단전이 맞는 사람 어디 없는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 중앙일보 2003.10.31일자 글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