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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2009.08.05 21:03

구인회 조회 수:11635


      "천국과 지옥"

      무시무시허죠. 지옥 얘기만 하면 소름끼치죠. 안 무섭다고요?. 당신은 천사이거나 아니면 정신 감정이 필요합니다. 무섭다고요?.. 솔직하시군요. 당신은 죄를 많이 졌거나 분발이 필요합니다..현재까지는 어려우시겄어요. 주일날 잘 안 빠지고 교회에 다니고 믿음 좋은 집사님이라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내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 보혈의 피로 진작 구원받았다고요. 참 믿음이 대단하십니다그려. 근디 그렇게 해가지고 어디 천국가겠어요. 제가 천사한테 물어보니까 자고이래로 믿음으로 천국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허던디, 지금도 거리에는 어느 교회에서 나오셨는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확성기다 대고 광고를 해댑니다. 뭘 믿으라고 그러는 지 몰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천국이란 홍시와 지옥이란 땡감을 심어주면 인간이란 게 두려움을 먹고사는 동물이라 교회에 나오게 될지 그리하여 십일조 꼬박꼬박 내고 천국 가는 값으로 돈다발이 들어있는 괴짝이라도 건네 줄지 그 옛날 베드로가 늘 하던 대로 이판사판 왼편에 그물을 던진 것처럼 걸려들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의 확성기 마케팅이 대단합니다. 그ㅡ냥 아주 단순허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공평하신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소중한 아들 같은 사람인데 물님 말씀처럼 “하느님이 핀딩이 모가지 비틀어 놓듯이 내가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게 그게 말이 되느냐고요. 천국과 지옥의 결정권이 나한테 있다는 말인데 그건 하느님에 대한 월권이 아닐까요.” 진짜 천국가는 비결을 알려드릴께요. 무슨 뜬금없는 소릴 허느냐고요. 한번 들어보고 헛소리를 허는지 진짯말을 허는지 판단해 보시라요. 사람은 누구나 천국에 들어가 천사가 되도록 만들어졌고요, 한 마디로 천국에 갈 운명이었는데 세상에 뭉개지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악해져서... 아무리 천국의 빛으로 끌어올리려고 해도 제 스스로 천국의 빛이 두려워 깊은 어둠속으로 돌진하는 겨죠. 영이 혼탁해져서 동굴 밖으로 안나가려는 박쥐처럼 빛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거라고요. 그 냥 한마디로 천국 가려면 지금 여기 사는 동안 천국을 사셔야 해요. 자기 안에 천국이 있는 사람이 천국 가는 거라고요. 천국 사는 법은 다 아실거고. 천국 가는 케치프레이즈 하나만 알려 드릴께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것 같은디 “ 차카게 살자 !”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마 6:33)” 가정 직장 교회 사회 국가 등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자 애쓰고 내가 만든 선과 사랑의 공간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 갑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함과 동시에 그 나라를 이 땅에 넓혀가는 만큼 천국의 길도 가까워진다고나 할까요. 아닌가? 이 땅에서 천국을 사셨던 진달래의 큰 스승 유영모님이 지은 시 한국 역사 속에 참사람이요 깊은이로 큰 족적을 남기셨던 다석 유영모님이 젤 좋아 하시던 꽃이 진달래였는데 그분의 영이 다름 아닌 불재 진달래에 한알의 씨알로 머무실 줄 아무도 몰랐죠. 그분 이름만 불러도 신령한 하느님의 영이 흘러오는 듯 합니다. 선생님이 지은 진달래(進達來) 詩는 그야말로 천국가는 길을 노래하고 있어요 이 시를 낭송할 때마다‘ 천국의 길은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진달래야 진달래야 어느꽃이 진달래지 내 사랑의 진달래게 홀로 너만 진달래랴 진달래 나는 진달래 님의 짐은 내 질래 진달래에 안즌 나비 봄보기에 날다지니 안즌나비 갈곳없음 지는 꽃도 웃는고야 안진꿈 다 늦게 깨니 어제 진달 내돋아 진달래서 핀 꽃인데 안질려고 피운다마소 피울땐 아니 울고 질땐바 우슴 한가지니 님때멘 한갓 진달래 봄 앞차질 하이셔 너죽고 나살자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서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이겨볼라꼬 목숨 걸때 ‘님의 짐을 지겠다’ ‘십자가를 진다’ ‘쌈에서 진다’는 진달래처럼 언젠가 지고 말 운명 속에 남을 이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하며 내 짐 다지고 남의 짐까지 져주는 천국의 좁은길을 일러주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일러주는 시입니다. 평생 진리와 사랑의 길을 밟아 가신 다석 유영모 선생님 그의 아호 저녁이 셋인 다석 多夕을 설명하면서 “어둠이 빛보다 크다” 묵시록에 “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햇빛이 쓸데 없다” 하였으니 첨도 저녁이요 나중도 저녁이라 했다. 첨과 나중은 한가지 저녁이로다. 또 창세기를 인용 “어둠이 먼저이고 빛이 나중이다”라고 설명하신 바 있는데 스웨덴 보리의 영계에서의 체험을 쓴 ‘천국과 지옥’을 보고나니 비로소 그 말씀이 새록새록 다가오더군요. “이 세상의 해는 천국의 해와 반대되기 때문에 천사들에게는 짙은 흑암으로 보인다. 달도 천국의 달과 정 반대이므로 항상 어둠으로 보인다. 이 세상 해와 달을 섬기고 절한다는 것은 자기사랑과 욕망에서 비롯된 거짓을 의미하며, 이런 것은 끊어버려야 한다” “지옥에 있는 이들은 정반대 방향에 있는 흑암과 어둠을 향해,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선다. 이런 이유로 지옥에 있는 이들은 어둠 안에 있다고 하고,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빛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스웨덴 보리 물론 자연계의 단순한 현상을 과학적 사고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모든 종류의 악을 타고 난 사람은, 그 어둠과 영적 오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구원될 수 없고 “파동 아닌 빛 속에서 쉼이 없는 쉼에 살리로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둠 속에 겨자씨만한 한줄기 섬광이라도 사랑의 빛을 향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스승이 보신 多夕의 영원의 하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석 스승님도 “인생은 죽음으로부터”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영혼이 죽고 난 후에 우주로 흩어질지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다시 날지 아니면 착한 일하면 천국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가는지 죽음 이후 세계에 궁금증은 많지만 누구 하나 속션하게 말씀해주시지는 분은 없었지요. 어쩌면 사후세계가 없거나 대부분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유는 사랑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생명이다” “자유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사람 자신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보리가 천국의 비밀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자유와 창조적 삶이 위축될까봐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소중하게 숨겨둔 은총과 자비가 아니겠어요. 이 은총과 자비 속에서 그나마 인간의 사후세계에 대하여 가장 정교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듣고 보듯 묘사한 분은 다름 아닌 스웨덴의 제스퍼 스위드베르그의 아들 이마누엘 스웨덴 보리. “13년 동안 사람끼리 말하듯 천사들과 대화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천국과 지옥의 실상을 볼 수 있게 하셨다“고 언급한 것처럼 무슨 소설도 아니고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면 스웨덴 보리가 망령난 주술사나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닌지 의심해 볼 수도 있겠지만 12살 어린 나이에 웁사라대학의 특별학생이 될 정도로 과학 수학 철학 천문학 법학 등 다방면에서 비상한 재능과 에너지를 가진 과학자요 12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한 큰 학자였음을 볼 때 그의 저술이 그냥 마구 쓴 허구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천국편이 한 절반 나머지 지옥편이 한 절반 되지 않을까 천국은 얼마나 평안하고 지옥은 또 얼마나 비참할까 하는 단순한 생각 천국과 지옥은 무엇인지 정말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가는가 그 곳에 한 번 가면 영원히 그곳에서 거하고 참회하면 천국으로 부름받을 수 있는지 등 호기심을 가지고 기대반 우려반 천국과 지옥을 접한 순간 내 생각과 유사한 내용도 많았고 전혀 틀리거나 의심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단, 한번 읽어 내려가면 만연체 문장에 지루하고 반복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참말로 믿기지 않는 허무맹랑한 픽션이라기보다 사실적이고 희미하게 보이는 뭐가 있어 계속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수리와 기하 그리고 논리에 익숙해진 과학자가 마징거제트나 아기공룡 둘리같이 가공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믿거나 말거나 보리가 알려주고 싶어 했던 천국예기 몇 가지만 들어 볼께요. 대게 한국 수명으로 77살 산다고 허고 다 늙어서 쭈글쭈글해진 몸으로 죽으면 천국에서 내 영의 몸도 그런 모습일까? 아니면 아예 몸은 없고 영화 속의 귀신같이 히히거리며 허깨비처럼 나부끼는 걸까요? 그럼 천국 가서는 잘생긴 내모습을 볼 수 없을지 안타까워서 묻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천국에서도 사람의 형상으로 살고 천국나이는 나이 먹을수록 더 젊어 진다네요. 단, 세상의 육은 허깨비였고 신성과 영적 선에 따라서 그에 맞는 영의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혹시나 육체가 부활한다고 매장하실 분들, 그럴 가능성 없으니까요 확 태워 버리거나 장자의 유언처럼 산 속에 버려 짐승의 먹이로 줘 버리세요. 유아시절에 질병이나 굶주림,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요? 아무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의 사후 운명, 이 아이들도 잘잘못에 따라 가는 곳이 다른가요. 천행으로 이 아이들은 못다 한 교육 천사가 가르치고 전부 다 천국에 들려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다 하느님의 선물이요 천사라는 뜻이죠. 참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요 위로가 되는 은총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가나요. 겉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는 세상과 자기를 숭배하고 마음속으로 부인하는 우상숭배자인 그들 힘 없는 사람 억누르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족의 통일도 막는 간악한 사람들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둘러 부치고 갖은 악행을 다 저지르는 그런 불량한 사람도 예수만 믿으면 천국가는 건가요. 그가 믿는 예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 줄도 모른 채 예수 믿는다고 큰소리치면 다 돼요. 불자나 힌두, 이슬람교도 안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지옥가는 건가요. “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와서 하느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될 자도 있느니라“(누가 13:29,30) “ 오늘날 믿는 사람보다 비기독교인이 더 쉽게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에게는 사랑에서 우러난 자비가 있었고 그의 무지에는 순진성이 있었다. 이런 것이 있을 때 신앙의 모든 것을 즉시 기쁨으로 받게 된다 그 후 그는 천사들 무리에 들어 갔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비기독교인 중 우리가 무시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장 사랑받으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천국의 선과 진리를 더 즉각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건데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하며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천국가기 더 어렵다는 보리의 이 진솔한 진술에 신뢰가 갑니다. 지옥이란 무얼까? 스펙타클한 미국의 헐리우드 SF영화 스폰에서와 같이 지옥의 악령들은 지옥불 속에 영원히 고통받으며 천국을 증오하고 공격하려고 하는가? 물님이 다니엘서 불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천사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다니엘과 친구들을 설명하시면서 이 불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라기 보다 인간의 마음 속에 근원적으로 들끓는 불이라며 그 불을 끄고 부동심을 지키고 하느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의 행복을 설명하신 것처럼 지옥 불도 마찬가지, 지옥의 불도 모든 걸 태우는 잔인한 형벌의 불이 아니라 인간의 거짓과 위선, 허위, 온갖 욕망 속에서 지옥의 영이 타들어 가는 불을 의미하는 것이니, 어쩜 다니엘서와 물님 스웨덴보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일까? 물님의 눈썹과 목소리에 내려오신 하느님의 영이 대신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던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해탈하지 않겠다”고 하는 보살원에도 한번 지옥가면 영원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자기의 욕망을 좆아서 간 것이니 결론적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옥을 누가 보내는게 아니라 악한 영은 자발적으로 지옥에 제몸을 던집니다 “모든 지옥에서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욕망의 영향권이 발산된다. 이 영향권이 그와 똑같은 욕망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지되면 마음이 동하고 즐거움에 넘친다“ 우리가 쉽게 식색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고 깡패 조직에서는 폭력이 법이듯이 영계에서는 아무도 자기 욕망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에 가려고 발버둥치는거죠. 처음엔 이해가 안되었는데 인간의 욕망이 하늘에 닿으면 갈 곳은 지옥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 하느님은 지옥의 영이 불쌍해서 그 형상은 사람을 닮도록 했다고 합니다. 스웨덴 보리의 ‘천국과 지옥’은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아트의 사원의 벽화와 같이 인간의 사후세계의 처참과 고통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만약에 그와 같은 잔인하고 악랄한 것을 기대했다면 적이 실망하고 말 겁니다. 왜 물님이 꼭 읽어봐야 될 필독서로 이를 꼽았는지 알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얼마나 인간을 천국으로 이끄시려 하는지 사람은 누구나 지옥에 가도록 태어나지 않으며 천국에 가기 위하여 태어난다는 것과 또 이 땅은 하느님이 천사를 기르는 수련장으로서 얼마나 인간이 천국가기를 학수고대하는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얼마나 인간이 지옥의 욕망을 탐할 정도로 미쳤으며 지옥에 가는 것이 다 욕망과 거짓에 매몰된 인간의 책임이란 깨달음에 이릅니다. “천국에 이르는 생활은 세상을 떠난 삶이 아니라 세상 속의 삶이란 것과 이웃사랑의 생활은 이 세상에서만 가능한데 그것을 떠난 경건 생활은 사람을 천국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오직 이웃 사랑의 삶만 이 천국으로 인도한다. 이웃사랑의 삶이란 모든 직업, 모든 사업,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내적인 동기 즉, 천국적인 동기로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하느님의 법에 따르기 위해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할 때 그 생활은 내적이고 천국적인 것이 된다. 그런 생활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웃사랑의 생활을 더나 경건 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 생활이 천국으로 이끈다고 믿는 정도만큼 오히려 그것은 천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 스웨덴 보리 이제 천국과 지옥 예기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 한다면 사후세계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천국은 가려고 해서 가는 곳, 경건한척 세상에 적선 좀 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어쩌면 물님이나 에크하르트가 그토록 “내가 나를 보는 눈과 타인이 나를 보는 눈이 같아야한다” 고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의 천국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물님은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자기 완성의 열 번째의 오메가포인트 즉 천국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발견하고 은빛늑대나 결정님은 춤을 통해 사랑의 에너지를 모으고 이민교 님이나 하늘꽃, 장세균 님 춤꾼은 힘겹게 사는 형제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진달래 가족들, 에니어그램 수련자들 그리고 불재와 맺은 인연들 모두 어쩌면 그 길이 돌아가신 장로님이 우리 공동체가 산에 오르기 전
      “진달래가 산으로 갔는데 하늘에서 지붕으로 커다란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노라고“
      예언하신 것처럼 모두 하늘에 연결된 빛의 사람으로 내가 나 되어 중생하는 길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을 발견한 사람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한 마리 소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사랑의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벽암록 27장 운문 체로금풍(雲門 體路金風) “나무가 시들고 잎이 지면 어떻게 될까요”
      수조엽낙시여하 樹凋葉落時如何 ? “몸이 드러나고 금빛 바람이 불어오겠지”
      체로금풍 體路金風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 “ 하늘이 드러나겠지. ” 09. 8. 5일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