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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2010.12.18 13:56

삼산 조회 수:2105

명품

 

                                -김홍한-

 

조카아이가 괜찮은 필기도구를 주었다.

자기보다 내게 더 어울릴 것 같단다.

물건이 좋기에 늘 가지고 다니며 유용하게 사용했다.

어느 날, 어떤이가 그것을 보더니 수 십 만원 하는 명품이란다.

깜짝 놀라 되물었더니 “물건의 가치도 모르면서 사용한다”고 어이없어 한다.

그 후로 그 물건이 조심스럽다. 망가질까, 잃어버릴까 애지중지 한다. 비슷한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금방 눈에 띄고 참 우습게도 동지의식까지도 느꼈다. 그들도 그랬는지 은근히 말을 걸어온다. 명품 필기도구 하나로 나도 명품 족이 되었다. 두 세 번 그것을 경험하면서

아! 내가 속물이구나….

 

심이 다하여 구입하려 했더니 만원이 넘는다. 만원씩이나 투자하면서 이 물건을 계속 사용해야 할까? 나를 속물로 만든 그것, 유지하기도 벅찬 그것을 더 이상 사용할 맘이 사라졌다. 그러나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가 누군가에게 주어 버렸다.

 

나 같은 서민은 명품 필기도구 하나도 유지하기가 벅차다. 명품옷은 더 유지하기 힘들다. 물세탁을 못하니 그 세탁비를 어떻게 감당하랴.

누가 나에게 고급 승용차를 준다면 나는 사양할 것이다. 그래도 구지 준다고 한다면 뻔뻔하게도 유지비도 달라고 할꺼다. 명품 필기도구 하나도 유지하기 벅찬 내가 어찌 고급승용차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형편이 허용하는 한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명품은 물건이 좋다. 그러나 명목가치가 실질가치를 상회하는 물건이라면 그만큼 손해 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명품이라는 것들은 명목가치가 실질가치를 크게 상회한다. 그런 면에서 명품이라는 것은 가짜이다.

명목가치와 실질가치의 차이는 상표값이다. 그래서 명품상품에 상표를 떼면 그 값은 형편없이 추락한다.

 

명품을 소비하는 이들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표를 소비한다.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은

사람도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사용하는 상표로 사람을 판단한다.

명품 소비는 중독이다. 명품족들은 명품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 시선집중의 쾌감이 계속 명품을 추구하게 한다.

명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속물이다. 저 자신의 초라함을 명품으로 가려보려는 열등감이다.

 

사람에게도 명품이 있을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명품인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수 억 원, 수 십 억 원의 연봉을 받는 이들이 명품인간들이다. 재벌, 장·차관, 국회의원 등이 명품인간들이다. 옛날에는 왕후장상들이 명품인간들이다.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 그는 가난한 농민출신으로 귀족출신의 항우와 천하를 놓고 다투었다. 그때 그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했지만 그가 왕이 되고는 “있다”로 바뀌었다. 1176년 고려시대 망이, 망소이도 그런 말을 했지만 그들의 반란이 실패함으로 역시 “있다”가 되었다. 1381년 잉글랜드 농민란(와트타일러의 반란)때 그들에게 가담한 성직자 존 볼 이 말하기를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물레질 할 때 누가 귀족이었단 말이냐?”고 설교했지만 설교만 남고 사람은 사라졌다. 그렇다. 명품인간의 존재는 어느시대든지 엄연한 현실이다.

 

명품족들이 명품족들끼리 놀듯이 명품인간들도 명품인간들끼리 논다. 그러고 보니 명품족이 명품인간이고 명품인간이 명품족이다.

명품이 가짜이듯이 명품족, 명품인간도 가짜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권력이다. 돈이다.

 

서해에서 어부들이 조기도 잡고 꽃게도 잡는다. 우리나라 어선이 잡으면 국산이고 중국어선이 잡으면 중국산이다. 어느 배가 잡느냐에 따라서 순간 값에 큰 차이가 난다. 웃기는 일이다. 명품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내가 명품인간이 안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심이고 또 진심이다. 나는 내가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가짜인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노자는 말했다. “是以聖人爲腹 不爲目(시이성인위복 불위목 :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 -노자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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