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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재 뫔 도예원’, 뜻풀이하기가 여간 난해하지 않았다.


‘불재’는 전북 완주군과 임실군의 경계를 지나는 재 이름이고, ‘뫔’은 몸과 마음의 하나 됨을 의미하는 글자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수수께끼 같은 이름이 풀렸다. 2008년도 크리스챤 문학상의 주인공 이병창 목사의 수상시집의 제목은 <메리 붓다마스>, 시의 전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절 예배가 끝이 날 때


전화로 전해지는 인각사


상인 스님의 활기찬 목소리




“메리 크리스마스


교우들에게도 평화의 소식과


안부를 전해주세요.“




교우들은 미소를 짓고


이어지는 토론의 한마당


우리도 석가탄일 때 무어라고


소식을 전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메리 붓다마스라고 하면 되겠지요


메리 붓다마스,


갑자기 하늘이 밝아진다.


붓다의 하늘


그리스도의 하늘이 더욱


밝아진다


<이병창/ 메리 붓다마스 전문>




풀섶의 이슬이 채 마르기 전에 불재 뫔 도예원에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한 것인가 싶어 숲길을 걸으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하늘의 보석인 이슬방울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리도 작은 이슬방울에 하늘이 들어있을까 신비롭다. 도예원의 문이 열리고 그 날 첫 손님으로 뜰에 들어섰다. 뜰에서 달개비, 여로, 마디풀, 차꽃, 민들레, 토끼풀 등등의 야생화와 원추천인국과 각종 도예작품과 조각품, 벽면의 그림들이 아침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살포시 웃으며 손님맞이를 한다.




이병창 목사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며 ‘눈뜨면 이리도 고운 세상’이라는 푯말이 걸려있는 도예원으로 안내를 한다. 실내에 들어서자 토우와 도예작품들이 실내에 멋들어지게 전시되어있고, 성가가 은은하게 공명되어 동쪽으로 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어우러져 아침의 신선함이 잠시 별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병창 목사가 직접 차(茶)를 준비하고, 앙증맞은 다기가 테이블 위에 놓여진다. 통성명을 한 후 그의 첫 마디는 회보에 대한 쓴 소리와 신앙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기관지 형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보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기독교인으로서 참 나를 찾아갈 수 있는 글들이 많아져야 해요. 참 나,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단지 하나님에 대한 자기생각을 믿는 것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가 고백하고 나누는 것이 설교입니다.”




대화의 초입에서부터 필자에게 ‘참 나, 참 하나님’이라는 큰 화두를 던져 버린 이병창 목사는 한국의 성 프란시스코로 불리어지는 이현필과 그를 따랐던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한국개신교회 최초의 토착적인 수도공동체 ‘동광원’에 다녀올 때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동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영성수련에 대한 영감들을 얻고 돌아오는 길,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임에도 배웅을 나온 동광원 식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런,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오네!” 화를 냈는데 순간 동행하던 동광원 식구들은 “어, 하늘이 비를 주시네!”하는 것입니다. 순간 ‘내가 왜 화를 냈을까, 분노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본색이 드러났구나, 나는 미쳐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정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도 분노가 그 안에 자리하고 있으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정화된 에너지가 아니고 분노, 폭력의 에너지가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의 전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광원에서 영성훈련을 하고, 그리스도를 찾는 영적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죠.”




1952년 봄에 태어난 그는 원광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0여 년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경험했다. 그 후 세 곳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교파마다 다른 예수의 얼굴을 발견하고 진정한 그리스도를 찾는 영적 순례를 해 왔다, 사막의 교부들과 선, 개신교 수도원 동광원, 에니어그램의 원형을 찾고자 수차례 중앙아시아 순례를 통하여 접해 온 수피즘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에니어그램이란 희랍어의 9를 뜻하는 ennea와 문자와 점을 나타내는 gramma의 복합어로 하나의 원으로 표현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아홉가지 인간의 성격, 성향', 1 완벽, 2 봉사, 3 성공, 4 특별, 5 지식, 6 안전, 7 즐거움, 8 힘. 9 평화를 뜻하며 모든 인간은 그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는 이유는 집착하려는 성격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균형 잡힌 상태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이병창 목사는 우리 나라의 에니어그램은 미국식 에니어 그램이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하면서 중앙아시아 순례를 통해서 접한 수피즘과 그간의 영성 순례를 통해 깨달은 것들을 체계화시킨 에니어그램과 관련된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시대를 초월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




진달래 교회는 전주시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불재로 옮겼다. 불재에 터를 잡은지 올해로 10년 째,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지친 영혼을 회복했다. 불재는 경각산 고갯마루로 살인사건, 자살사건이 많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 곳은 심령이 거듭나는 장소로 변했다. 전주시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이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상처받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힘과 그리스도의 지혜, 성령의 도우심을 교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함으로 인해 거듭남의 경험을 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쁘다고 했다. 이병창 목사는 누구의 방문도 환영하지만 특별히 가장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환대한다고 한다.




“오늘 날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이 아이들과 함께 오면 내가 여비를 줘서 보내고 싶을 정도로 좋아요. 아이들과 도자기를 만들고, 가장으로서 살아가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하나 둘 풀어놓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우쳐 주면 이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장들은 기가 살아서 돌아가고, 아이들은 평생 추억이 담길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갑니다.”




이병창 목사와 대화를 나누며 마시는 붉은 빛의 차 이름이 궁금했다. 차 이름이 뭔가 물으니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그냥차”라고 하며 벽면을 가리킨다. 한지에 붓글씨로 ‘그냥차와 거저차’‘가 써 있으니 불재 뫔 도예원에는 두 가지 차(茶)만 있는가 보다.




“목회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목회자가 참 나를 찾지 못하고,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자기생각을 믿는 것에 그치면 하나님과도 예수님과도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하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일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자신과 대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참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필자는 이병창 목사가 추구하는 목회는 성막목회와 대비되는 주막목회의 형태이라고 보았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의 이야기에 나오는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한 주막의 개념을 생각하면 성막목회와 주막목회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장 안에는 다양한 목회현장이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주막목회의 형태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측면들이 있다고 본다. 문화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목회자들도 많지만 대부분 성막목회가 주가 되고, 하나님이 주신 문화 예술적인 재능을 통한 복음활동은 부수적인 일이나, 취미활동으로 간주된다. 간혹 문화 예술적인 것들을 주된 목회활동으로 삼고자 하는 경우에는 개인적인 일로 여겨지거나, 교회일과 상관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현실이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교회의 형태는 양적인 성장을 전제로 한 교회의 형태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은 오늘 날 사회가 다양한 만큼,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진달래 교회 이병창 목사가 운영하는 ‘불제 뫔 도예원’과 에니어그램 영성훈련과 개인적인 시작(詩作)과 도예는 주막교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인사를 하니, “내 시간만 귀한 시간인가요?”하며 호탕하게 웃는 이병창 목사, 인터뷰 초반에 “단 1분, 1초라도 헛된 것에 마음을 쓰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라는 말에 인터뷰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했는데, 그에게는 자신의 시간 뿐 아니라 내 시간도 귀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니 “목사님도 에니어 그램 영성훈련에 참석하셔야겠습니다.”한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참으로 여운이 길다.




한국크리스천시인협의회 회장인 배명식 시인은 이병창 목사의 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병창 시인의 시는 우주적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을 지닌 자의 내적 체험의 소산이다. 미망의 안개를 거두어 버린 영적 통찰에서 드러내는 시인의 사유는 일상의 현상이나 사물들과 사람들에 대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사랑으로 대해야 될 이웃만 있을 뿐 차별해야할 타 종교인은 없다.”* 글/사진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