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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편지에 이어서 시험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경쟁에 대해서요.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맛있는 빵도 한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오병이어를 한다는 말일까요? 적어도 현대사회에서는 백 년은 이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대학교 저학년 시절에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예배 말씀 중 괴테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일전에 숨님께서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의 직업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전업 작가이시겠거니 했는데, 웬걸 재상이시다는 겁니다.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그를 재상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괴테라는 이름도 모르고 파우스트만 어디서 들어봤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저도 파우스트를 읽었지만 아직도 그게 왜 독일 문학 최고의 걸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그럴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굉장히 희소하지 않은 종이 위에서 만들어졌지만, 영원히 독자들을 취하게 한 작품이라는 겁니다. 심지어는 그 이름을 딴 투명하고 독한 칵테일도 있습니다. 이름 때문에 마셔봤는데 그 난해한 맛은 그 책을 똑 닮았습니다.

 

  어쩌면 반박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그 책이 씌여진 시대엔 종이가 진귀했을 거라고 말이예요. 하지만, 지금은 변명할 만한 말이 없습니다. 요즘 컴퓨터는 클릭 하나로 괴테가 살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한히 지면을 뽑아주기 때문입니다. 이 도화지 위에 파우스트 같은 불후의 명작을 창조할 수도 있고, 혹은 C+정도 받는 레포트를 쓸 수도 있지요. 무엇이 만들어질지는 온전히 자기 손가락에 달린 일입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경쟁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다고 하였는데 결론적으로 경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정된 자리, 일례로 국무총리 같은 자리가 상대평가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문호의 자리 같이 영원한 영광의 자리는 절대평가의 영역 같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못 가는 그런 자리 말이에요.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종이가 무한한 것처럼요. 괴테는 스무 살쯤 쓰기 시작해서 할아버지 때까지 써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 지금 시작하면 저도 제 현실에서의 파우스트를 쓰는데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는 밤입니다


2022.02.13

자정 즈음 산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