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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채찍 이야기로 넘어와서, 예수님은 어떻게 채찍을 내려칠 때를 아셨을까요? 성경은 가끔 모순된 말들을 하는데 예수님은 채찍을 내리치라고 하시는데 바울 사도는 일단 성실한 종이 되어 힘을 기르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채찍은 그럼 언제 휘둘러야 하고, 그럴 힘과 용기는 어디서 나는 걸까요. 아니면 어떨 때 종이 되어 힘을 모으며 기다려야 죽창을 들고 떼죽음을 당하는 의병이 되지 않는 걸까요?

 

 제 생각엔 채찍은 내려쳐야지마음먹고 휘두르는 게 아니라 임계점을 지나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배 말씀에서 예수님은 갓난아이 적부터 신전을 드나들며 언젠가는 저것들을 다 엎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오랜 시간 묵은 화가 터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의 임계점 폭발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다면, 바울은 사회의 임계점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임계점에 닿을 때까지 납작 엎드려서 힘을 기르라고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지금 세계의 모든 경제를 쥐어 민족을 핍박한 세계에 경제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채찍은 도대체 뭘까요? 창조가 아닐까요? 은행의 횡포가 싫었던 한 천재가 비트코인을 만들어 은행의 필요성을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쓰는 화폐는 국가 중앙은행이 보증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 통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자 화폐는 사용자들이 발행하기 때문에 통제를 받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아직은 초기라서 여러 문제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안정화 된다면 경제에 있어서 은행이라는 중간자는 사라지거나 다른 업무를 하겠지요. 그 천재는 중계자 없어도 되는 아예 다른 대안을 창조해 버린 겁니다. 참 간단합니다. 싸우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니까요.(이 부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 우리도 VR 교육이 활성화되면 굳이 옆에서 보조를 서면서 바라보지 않아도 효과적인 도제식 교육을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럼 창조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일까요? 이사야는 민족이 어떻게 될지를 알기 때문에 알몸이 되기도 했습니다. 민족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게 보이는데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요. 그러니 창조는 보는 게 먼저일까요?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큰 궁금함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 주변 친구들의 일도 궁금해하지 않아 학교 소식을 가장 늦게 듣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자신의 발전만 생각했습니다. 또 남들보다 힘든 적도 적었습니다. 아버지가 치과의사이셔서 동기들이 겪는 다양한 고충들이 와닿지 않고 그저 전화 한 통이면 문제들이 알아서 풀렸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좀 더 같이 어울리며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신문도 읽고, 역사도 찾아보고,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습니다. 그래야 미리 내다보고 준비를 하겠지요.

 

 유독 편지에 질문이 많군요. 솔직히 이 편지를 어떻게 끝낼지 모르겠습니다. 교인 여러분들은 채찍과 종, 죽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저는 아직 경험도 별로 없는 탓에 그저 세상에 관한 공부에 목이 마를 뿐입니다. 살아있는 공부하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볼까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쫓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보는 선지자의 눈이 뜨이지 않을까요?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고 있으니 그 흐름을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신과 눈을 맞추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