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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편지 / 궤 도

2012.03.06 11:02

가온 조회 수:5870

 

우선 가온이 드리는 잎 차 한 잔으로 봄 갈증을 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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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었던 대기가 풀리면서 오감(五感)이 열리고,

나무마다 물이 오를 때쯤이면 어김없이 고난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눈이 부시도록 찬연한 계절의 향연은

꽃이 피기도 전에 핏빛 파스텔 농도의 슬픔으로 번지게 되지요.

 

아버지의 뜻 앞에 피를 흘리신 그 분의 고난은

오늘날에도 오지에서 죽음을 불사하며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순교의 이야기들 가운데

죽기까지 십자가나 성화를 밟지 않았던 분들의 신앙은

나에게 감동보다는 안타까움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사람이 만든 모형물보다는 생명이 소중할 터인데

그 분을 상징한다는 모형물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건

우매한 신앙이 라는 생각에서지요.

 

‘침묵’(엔도 슈사꾸 저)이라는 책을 보면 일본으로 간 포르투칼 선교사들이

고문에 의해 배교를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들이 받는 고문 중에서도 ‘구멍매달기’(귀 뒤에 구멍을 뚫어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오랜 시간동안 피를 조금씩 흘리며 죽게 하는 고문)는

선교사들을 배교시키기 위해 가해지는 특별한 고문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순교를 각오하고 갇혀있던 선교사는 끊임없이 들리는 코고는 소리가

선교사인 자신이 배교를 하지 않는 이유로 세 사람의 신도들이

‘구멍매달기’ 고문을 받으며 내는 신음소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신앙의 의지는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고,

표면적인 배교를 한 그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진 나무판자를 밟기도 합니다.

 

신앙의 참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선교사의 그러한 결정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배세력에 이미 코가 꿰이게 된 그는

개명(改名)을 하게 되고, 이어서 신앙적 의지의 결단이었던

독신의 삶을 떠나 결혼에까지 끌려가게 되었으니

계속해서 끝없이 나락까지라도 떨어져 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느냐?는 우리의 판단이나 논리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신앙의 의지로 가는 길에서의 이탈은 궤도를 벗어난 행성(行星)이 될 수 있지요(시편1:1).

 

구약에 나오는 나실인(삼손)이 가졌던 머리털의 위력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의 궤도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순교의 삶이란 먼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금식과 철야로 동참을 했다면

순간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그분의 뜻 앞에

내 육적인 소원과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닐까요?

 

시내에 장애인갤러리를 겸한 크리스챤 카페를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운영비도 안 나오지만

그래도 운영해 나가게 하시니 감사하고,

애초에 경제적인 목적이나 기대가 없었으니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이 이렇게 욕심 없이 가는 길이야말로

나의 궤도가 아닐까요?

 

추웠던 겨울이 연일 봄비로 녹아내립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어느 한 모서리 막혔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도 이 봄에는 녹아내리기를 바랍니다.

 

얼었던 강도 풀렸으니

이제 당신도 내게로 올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