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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편지

2011.10.10 21:56

물님 조회 수:5858

 

 

나도 가을 물처럼 그렇게...

 

 가을 호수는 하늘처럼 나무든 사람이든 무엇과 아름답게 조화가 됩니다.

 

 

 

 

나도 언제쯤 저 가을 물처럼 깊이를 품고 고요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깊이를 간직하고 반짝이며 가는 물살로 세월을 주름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가온의 편지 / 한줌 행복만으로도

 

기온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월은 자정(自靜)력을 가진 식물처럼

다른 계절의 분요함과 혼탁함을 정화시켜줍니다.

 

맑은 호수에 잠긴 듯 의식이 심연으로 깊어지는

이 고요함을 안고 오늘 나는 당신에게 갑니다.

 

고요가 없는 세상, 가슴마다 자기주장과 이론과 한이

포화상태가 되어 끝없이 쏟아내기에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어렵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거의 혼자 말을 하다가 대화가 끝났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내 존재의 가벼움으로 자괴감을 느낍니다.

(골4:6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그동안 많은 말을 해왔고, 말을 잘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이제는 듣는 쪽을 택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듣다보면 세상에는 참 아프고 슬픈 일들이 많아

때로는 내 자신보다 상대방의 삶의 무게로,

그 절망과 아픔으로 가슴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휴머니스트(humanist)라는 얘기가 아니라

해결해 줄 힘이 없기에 그저 가슴이 저리기만 하다는 것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온 우주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요, 큰 것이 작은 것일 수도 있는,

그렇게 양적인 것을 초월한 삶은 자기가 베푼 곳만을 바라보며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에 살아가면서 꽃처럼 피워 올리는 내 삶의 향기가

어느 날 어느 어느 곳에서 어떤 단비로 내리게 될지 모를 일이지요.

 

하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그렇게 가슴에 우주를 품고 숨 쉬는 사람은

내가 받는 것과 베푼 것을 구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햇살이 눈발이 되고, 바람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리듯이

기쁨이 슬픔이 되고, 절망도 소망이 되듯이 당신의 말이 내 말이 될 수 있고,

내 말이 당신의 말이 될 수 있는 그렇게 모든 게 하나임을 아는 사람이지요.

 

그리하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삶과 죽음이라는

허상의 경계선도 넘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늘 우리가 원하는 곳임과 동시에

때로는 멀리 도망치고 싶은 그런 곳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즈음에는 볕 좋은 한낮의 산책이 즐겁습니다.

투명하고 다사로운 가을볕 속에 있으면 행복을 느낍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반갑고,

부산하게 지나가는 차들이 던져주는 반짝이는 한줌 햇살조차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여유로워집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아픔과 슬픔 위에 놓여진 것 같더라도

가을볕이 주는 명랑함과 다사로움을 놓치지 않는다면

“....내 비록 슬픔을 지녔을지라도 햇빛은 밝게 비치네...”라는 노래처럼

순간순간 주어지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물속처럼 투명한 고요함과

한 줌 가을볕만으로도 행복한 빈 마음으로

말하기와 듣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하려합니다.

 

노래처럼 낭만적인 시월의 마지막 날에

시를 좋아하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자작시와 애송시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자합니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