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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와 부처, 고통이 미소로 승화된 삶_ 도법
  
낙엽이 다 떨어진 늦가을 아침,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삼존불 앞에 섰다.
모두들 그 미소에서 따뜻하고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때 문득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덩달아 갈비뼈가 앙상한 부처님의 고행상과
양치는 예수님의 모습도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고행하는 부처님은 미소 짓는 부처로,
십자가의 예수는 양치는 예수로 연결되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고통이 미소로 승화된 삶이었다.
갈비뼈가 앙상한 고행을 밑거름으로 부처의 미소가 피어났다.
십자가의 고통을 양식으로 양치는 평화의 예수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의문이 뒤따라온다.
예수와 붓다의 고통은 평화와 미소로 승화되고 있는데,
우리들의 고통은 왜 또 다시 고통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까?
미소를 낳는 고통은 어떤 고통이며,
고통을 재생산하는 고통은 어떤 고통일까?
서산 순례길 내내 이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고통중에도 평화로웠던 성인들
 
부처와 예수의 고통은 우주의 진리인 진실과 사랑의 길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리의 고통이었다.
반면 우리들의 고통은 무지와 집착에 빠져
사적이고 이기적인 소유욕을 충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욕심의 고통이었다.
그러므로 자발적 진리의 고통은 평화의 미소로 나타나고,
무지에 의한 욕심의 고통은 고통을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고통이 미소를 낳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희망의 의미로 빛나지 않을까 싶다.
 
서산 해미읍성에 들렀을 때도 거센 바람으로 낙엽이 구르고 있었다.
진정 모든 것들이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
안내자로부터 신앙에 대한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죽어간
천주교인들의 숭고한 순교에 대해 감동적인 설명을 들었다.
천주교인들을 무참히 죽인 사람들의 야만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었다.
당시의 참상을 생각하면서 한참동안 읍성을 돌아보는데
온갖 상념들이 떠오른다.
신념이 무엇이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게도 하고, 야수가 되게도 하는 것일까?
어디 이곳에서만 그랬겠는가?
사실 문명사 도처에서 신념의 다름 때문에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야만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았는가.
우리 현대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분과 언어만 다를 뿐 본질적 속성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참으로 두렵고 두려운 일이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더욱 그렇다.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가 붙잡아야 할 참된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순교성지 현장을 둘러보는 내내 물음이 계속되었다.
비기독교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기독교인들은 순교자로 모셔지는데,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비기독교인들은
누가 어떻게 위로하고 있는가?
어느 종교도 이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거의 종교에 가까운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립과 갈등이 한층 증폭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우리는
이러한 고통의 역사들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계승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정당성을 위해 너를 부정하거나
내 편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대편의 입장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묻는 일이다.
문명사의 야만성을 넘어서기 위해 문명사적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종교로 인한 비극의 아픔을 넘어서기 위해
종교적 양심에 따른 성찰과 반성이 절실하다.
민족사의 아픔과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
민족적 양심에 따른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터이다.
 
* 희망 확신 있다면 견딜 수 있어
 
진실이 무엇인가를 뼈아프게 묻는 정직한 성찰과 반성위에 설 때
내 종교와 남의 종교, 좌익과 우익을 넘어서서
같은 인간, 같은 민족으로 만나고 함께하는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마음은 더욱 뚜렸해졌다.
너나없이 차분하게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에
우리 모두 진실의 뿌리를 가꾸는 일을 했으면 한다.
21세기 우리 모두의 희망 생명평화를 위해.
 
* 생명평화 탁발순례도중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삼존불 앞에서 쓴 글입니다.
 
* 도법스님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전)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