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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 반짝이는 편린

 

 

   “...다 나하고는 안 살려고 해요...” 처음 말이 없는 그 형제와 대화를 하기 위해 가족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묻자

대충 대답을 하다가 그가 불쑥했던 말이었습니다.

 

그 외로움이, 그 소외감이 마음의 문을 닫았는지 사랑을 주려고 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았고,

여러 시설로 다녔던 생활로 늘 불안정하여 안타깝고 답답했는데 얼마 전부터 그에게 서서히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와 한 방처럼 가까운 공간을 사용하게 하면서 내가 먹거리를 준비하러 자주 드나들며 대화를 하고,

남편은 그의 등을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지내자 그의 표정과 말소리가 밝아지고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하면서 지난 주일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웬말인가 날 위하여’라는 찬송을 부르며

눈물이 났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피어나는 꽃을 보는 행복이요, 새롭게 움트는 초록 생명을 보는 기쁨입니다.

그의 누나는 그 형제의 말소리에 어리광이 심해졌다고도 합니다.

 

모두가 많은 인원만을 추구하지만 단 몇 명을 돌보는 사역이라도 행복은 있습니다.

그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 때, 렌지 위에서 익어가는 음식의 향기와 빛깔에도,

어눌한 그들의 찬양과 천진스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간에도 행복은 숨을 쉽니다.

 

사소한 것들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롭고 알뜰한 우리가

자투리 행복도 놓치지 않는다면 반짝이는 편린(片鱗)들이 모여 완벽한 행복의 모자이크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반면에 자투리 불만으로 어두운 불행의 편린들을 모으게 된다면 불행의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사는 게 힘들어도 우리의 삶속에 별처럼 뿌려진 행복을, 밤하늘을 바라볼 때,

어둠보다 반짝이는 별빛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봄날, 한줄기 훈풍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밥을 먹는 이유가 포만감만을 위함이 아니요 맛을 느끼는 기쁨도 행복이듯이,

샤워를 하는 이유도 몸의 청결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그 개운함과 상쾌함도 행복이지요.

 

내가 불편한 몸으로 추운 겨울에도 꾸준히 샤워를 하는 이유도 그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남편은 목욕탕을 수리를 하면서 수도꼭지와 샤워기를 바닥에서도 손이 닿을 수 있도록 낮게 설치해주고,

타일 바닥에 푹신한 매트를 깔아주어 요즘에는 샤워 시간이 더욱 행복합니다.

 

외에도 몸에 근종을 가진 나에게 남편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40분 내지 한 시간 동안을 꼬박 앉아

배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매일 밤 불편한 내 몸을 감싸는 남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잠이 듭니다. 행복이지요.

이 행복이야말로 몸이 낫지 않더라도 이미 받은 족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남편자랑으로 여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가장 가까운 이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지 못할 때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도, 감사도, 행복도 마찬가지지요.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1서4:20)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내 삶의 가장 가까운 ‘여기’에서 자비로 숨 쉬고 계시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