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72590
  • Today : 943
  • Yesterday : 708


나의 주일학교 시절

2009.04.12 09:13

물님 조회 수:6840

 나의 주일학교 시절

                           배명식목사 [원동교회]

 

  나는 주일학교를 고향에 있는 <광주중앙교회>를 다녔다. 당시 목사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규오목사님이셨다.처음부터서 10남매가 모두 동시에 교회에 나간것은 아니었지만,둘째인 연식형이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그 교회 성가대 지휘를 했던것으로 기억난다. 주일학교를 마치고 형을 보러 성가대 연습실을 찾아가기도해서, 가끔 성가대 뒷전에 앉아 악보를 보곤 했다.내가 교회를 나간 첫 기억은 교회 유치원에  형들이 내 손을 붙잡고, 혹은 목마를 태워서 나가게 되면서였다.셋째형인 완식형이 조선대학교를 다니면서 교회학교 교사를 했다.다섯째형인 경식형은 혼자 침례교회를 다녔다. 광주 사직공원 뒷길로 가는 어느 동네에서 나이든 여전도사님이 개척하던 교회로 기억되는데, 그 형을 따라 몇번 참석해 보았는데 차트걸이에 써진 12제자와 성경66권 을 곡을 붙인노래를 거기에서 처음 배웠는데 지금까지 잊지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꾸준히 다닐수 있었던 것은 동네 친구들 때문이었다.후에는 목사가 된 사람은 나 한사람이었지만, 이태리로 유학가서 음악교수가 되기도하고,다리를 저는 친구는 동명교회로 분리될때 가서 장로가 되기도 했다.당시 중앙교회 주일학교는 새벽 6시에 모였는데 교회에 가면 찬송소리가 금남로일대를 가득 울려퍼지도록 크게 불렀다.새 건물이 빌딩처럼 지어지기 전까지는 고딕식 모양의 건물이었고, 교회앞에는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길 한복판을 가로 막고 있었다.나는 주일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전날에 친구들과 약속하고, 30분전에 일어나야했다.대문 앞에서 친구들은 항상 먼저와서 나를 불렀다. 그 음성이 지금도 음악처럼 귓전에 울린다. <명식아, 교회가자>-나는 그 소리에 자다가 깨기도 하고 세수는 하는둥 마는둥 벌떡 일어나 대문앞에 서있는 친구에게 달려나갔다.

  아버지는 밤낮으로 일하는 모습이었고,어머니는 절을 찾아가길 좋아하는 불자였다.그 영향으로 우리집엔 늘 스님들이 오갔고, 아예 뒷방에 머물러 며칠 묶다가 지방의 어느 사찰로 가는 스님들의 휴게소였다. 사월 초파일이 가까우면 스님들의 발걸음은 더 빈번했고, 나는 초파일 전날 태어난 이유에선지 어머니 손에 붙들려, 초파일 전날은 등이 줄지어진 증심사계곡으로 들어갔다.증심사에 가면 스님방에서 다른 불자들과 자고 다시 그 다음날 절밥을 먹었는데 참 싱거운 밥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 몸으로 왔고, 그때 증심사 스님들의 큰 솥에 장화신고 들어가 밥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벗꽃, 진달래,개나리 피는 산길을 돌아나오던 유년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한 그림처럼 각인되어 있다.절을 찾던 발걸음은 어머니가 세상을 뜬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였다.

  나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게 되었다.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에 젖어 살던 어느날,습관적인 교회생활에서 거듭난 체험으로 바뀌면서 모든것이 달라졌다.진정한 신앙은 기독교에서만이 찾아질수 있음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발견하면서였다. 석가는 자연인으로서 태어나 구도자로 살다가 세상을 떳다.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 영원전에계신 하나님으로서 시공간에 오셨고, 성육신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거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다시 영원의 세계에 지금 살아 계신다.석가의 육신은 모든 인생이 가듯, 한줌 흙으로 변했지만 예수는 빈무덤을 보여 주셨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그 말씀을 믿고,가슴에 새길수 있었던 그 순간까지는, 내 영혼은 세상에 붙은 한줌 흙이요, 허무로 가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허무의 레일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나서부터 영원한 삶을 소유하고 보니, 그삶의 한조각이 현실의 삶임을 깨닫게 되었다.나의 지상생활은 영원속의 한조각같은 삶이라 여겨진다.누가 나에게 이러한 미래의 소망을 줄 수 있는가?...오직 위대한 예수뿐!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그 영원한 진리위에 세울수 있었던 것은 주일학교 시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끊임없이 문밖에 서서 나를 불렀던 유년의 친구들이 이끄는 목소리임을 지금도 절실하게 느끼면서 새삼, 주일학교 교육의 당위성과 정체성 회복의 소리를 높여야 할 것을 절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