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힘든 시기에
2020.08.24 20:51
제가 어렸을 때, 지금과 같은 여름이 되면 우리 집에서는 수제비나 팥죽으로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았습니다.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것만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을 쓰면 우리 식구만 먹는 법은 없었습니다. 한 양푼씩 죽을 담아서 앞집에도 갖다 드리고 옆집과 뒷집에도 갖다 드렸습니다. 그렇게 이웃과 나눈 다음에야 우리 가족은 마당의 평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만 그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집도 뒷집도 옆집도 모두 그랬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서로 나눠먹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말을 듣지 않아 어머니에게 매를 맞고 있을 때도 얼른 뛰어와서 어머니의 매를 멈추게 하는 이도 이웃집 아주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울 때 우리들의 식사를 챙겨주시는 이도 이웃집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이웃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분들은 모두가 가난한 이웃들이었습니다. 그 가난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참으로 비정한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사이에 정이 메말라 갑니다. 높은 담을 쌓아놓고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오고가며 마주쳐도 인사하는 법도 잊고 삽니다. 이웃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횡행하고 삿대질이 횡행하고 지역 간에,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총성이 횡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잘 먹고 너무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서 그만큼 우리의 삶은 삭막해졌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이웃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주변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이웃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나만 안 걸리고 나만 성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어제 어느 자영업자를 만났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여져서 직원들 월급도 주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대출도 안 되고 어디서 돈을 빌릴 곳도 없어서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오죽 힘이 들면 그 말을 할까 싶어서 한참 동안 그를 안아주고 왔습니다.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남 탓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 키우지 말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보다 몇 배나 힘들게 살았어도 죽 한 그릇도 나눠먹었던 우리의 부모님들처럼 우리도 그 정신으로 이 위기를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모두가 힘을 내서 이 위기를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힘들어 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박완규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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