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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연합예배

2013.12.26 22:14

도도 조회 수:4138

2013.12.25  성탄절 예배는 귀신사 신도들과 함께 아기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들려주신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1장 18 ~ 25절입니다. 말씀을 읽고 마음을 울리는 첫 느낌이나  올라온 생각, 또는 궁금한 점 등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이혜경님의 플룻 연주 - "저들 밖에 한 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 한 천사가 전하여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귀신사 신도회장님 - 엊그제 신도회장이 되었습니다. ....   마태복음 성경말씀을 읽어보니까 요셉도 인간이었구나,  파혼할까 어떻게 할까를 조용히 고민한 것을 보면....  나 같았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성경이나 불경 등 '경'자가 들어가는 것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었는데 성경은 나같은 인간적인 내용이 있구나.

 

물님 - 그 당시는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죽였습니다. 요셉은 이럴까 저럴까 어쩌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무여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무여스님 -  준비해온 말씀이 있는데 오늘 말씀과 딱 떨어지는 내용입니다. 예수의 의미가 죄를 건져내주실 분이다라는 건데 죄가 무엇인지 에크하르트  톨레를 통해 책에서 참고하여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원죄는 기독교 차원에서의 가르침인데 인류 집단의 정상적인 상태가 원죄라 합니다. 신약에서 죄는 화살을 쏘는데 빗나가면 죄라고 해석합니다. 죄는 핵심에서 벗어난 인간의 존재방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으로 사는 한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음을 일으키는 욕구가 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에고를 알아차릴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깨어나면 그 에너지가 집단적인 가속도가 붙어 다른 사람도 더 빨리 더 쉽게 깨어날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의식이 열린 사람이 나오면 엄청난 에너지 파장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여기서 에너지가 열리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겁니다. 성자들의 의식은 다 같습니다. 성자의 태어남은 우리에게 축복이고 은혜를 입는것입니다. 성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염불에도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당신의 뜻이 무언지를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영광님 - 판소리  "심봉사 아내를 장례치르고 상여나가는 장면"과 "아기예수님 탄생 장면"  

 

귀신사 신도님 -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행복이 무엇인가, 좋은 느낌입니다. 여기서 창을 듣고 박수하고, 추임새하고, 웃고, 춤추고, 정말 좋은 느낌이며 행복합니다.

 

물님 -  깨달음의 종교는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죄는 고통에 빠지게 합니다. 답답한 원인들이 어디있나 성현들이 가르쳐 줍니다.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꽃이나 경전을 보며 새롭게 깨어나는 감각, 영성, 지속적으로 열어가야할 눈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느날 눈이 떠져서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제대로 듣고 보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환자들을 고쳐주시며 비유와 은유적으로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노력은 수행이고 신앙생활입니다. 비유하자면 산에 오름과 같습니다. 실제 산에 오를려면 비탈이 심합니다.  가는 자만이 보여지는 세상과 경험이 있습니다. 정상에서는 360도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만큼 볼 수 있습니다. 느낀 만큼 나름대로 살아갑니다. 수련 안내를 할 때 보는 수련을 안내합니다. 산 아래 사는 사람이나 지도만 보고, 경전만 보고 아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에서 알게 된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정합을 해야합니다. 정합을 하신 예수님, 이사야 선지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소리를 높여라. 내가 나를 넘어가는 산, 탐진치의 고개를 넘어가는 길, 그 산을 오르는 자는 그건 사실이라고, 내가 보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산을 오르는 길은 해탈의 길입니다. 그 산의 정점에 서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백화점에 축성탄 걸어놓고 장사하는 곳이 아닌 마굿간, 산모가 애기를 낳은 곳, 목수라는 일을 하며 로마라는 폭압적인 세상, 종교적인 율법이 강한 세상, 그걸 뚫고 삶 속에서 임마누엘을 이루었습니다.  진정한 임마누엘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그 분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단순한 생일 파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많은 성인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독특함은 "죄의 용서"에 있습니다. "나를 나답게 못사는 것이 죄다"라고  현대신학은 정의합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용서야 말로 인생의 행복과 영생의 문제를 뚫을 수 있는 핵심이라고  예수님은 통찰하셨는 데 바로 이 점이  다른 성인들하고 차별성이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삶의 내용에 용서가 있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물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 역시 " 용서하면서 살아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용서란 상대에 대해 닫힌 내 가슴이 먼저 열려야 용서가 됩니다.

김석봉님은 신경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을 앓았습니다. 결국 1급 시각장애인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간암을 나은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그것은 황토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 쬐며 지장수를 마시며 시력이 돌아왔답니다. 2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다발성 경화증이 완치되었습니다. 그 후 황토방을 만들어 찾아오는 다른 환자들에게 제공했답니다. 그 분이 나를 찾아온 것은 환자들의 한이 많은데 그걸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 그걸 내려놓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어서였습니다.

돌처럼 굳은 마음, 원한을 내려놓아야 응어리가 풀립니다. 용서를 몰라서 삶을 망가뜨리며 살고 있습니다. 용서는 태도입니다. 용서는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해방시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저들은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

진정한 임마누엘의 자리에 올라서신 그 분의 성탄을 축하합니다.

 

하늘님 - 쇼팽의 "야상곡" 피아노 연주 - 영화 피아니스트에 나오는 곡으로 인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전쟁 속에서도 마지막 예술혼이 피어난다는 이야기 ..............

 

씨알님 - 아기 예수님께 찾아와 예물을 드리고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이 바로 무여스님과  귀신사 신도들입니다. 맛있는 떡과 향기로운 꽃화분,  달콤 사탕 등 감사합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의 책상에는 성경과 불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일곱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원각경 화엄경에도 원수를 부모님처럼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동광원의 이현필 선생님은 돌아가시면서 "오, 기쁘다. 오, 기쁘다."고 하셨는데, 저의 막내 이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참 좋다. 얼마나 좋은가,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지병으로 오래 고생하셨는데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 좋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용서의 말씀을  제 삶 속에 다시 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