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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메아리

2016.07.26 05:38

물님 조회 수:965

나는 하나님의 메아리.

창세기 1장


루돌프 슈타이너가 명상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진지한 태도로 어떤 진실을 살리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교육 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명상에 관계되는 진실입니다. 매일 밤, 다음과 같은 언어를 의식하면서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매일 아침 ‘나는 하나님 안에 있다’하는 말을 마음속에 떠올려, 그것을 하루하루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재료는 물질이 아니라 말씀(생각)이었다. 성서의 시작과 끝은 여기에 결판난다. 돈이 창조의 재료라고 세뇌시키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붙잡아야할 믿음의 덕목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을 창조적으로 살려면 창조적인 생각, 맑은 생각이 있어야 한다. 삶의 낭비는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해서 하는데서 발생한다. 습관적인 망상을 줄이고 정서적인 안정과 긍정적인 집중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내 생각과 마음을 다 잡는 수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슈타이너가 제시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큰 의미를 주는 문장을 선택하여 반복하여 암송하면 믿음의 체계는 깊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닿게 될 것이다. 믿음이 감상의 영역에 있는 사람도 있고 머리의 영역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믿음체계의 중심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의지의 영역에 까지 삼위일체가 된 믿음이 필요하다.


슈타이너가 제시한 문구를 아침저녁으로 하게 된다면 그의 믿음은 큰 진보를 보이게 될 것이다. 그의 생각 역시 분명하게 중심이 잡히게 될 것이다. 중심이 없다면 삶은 곧바로 망상에 빠지게 된다. 슈타이너 뿐만 아니라 이 땅을 다녀간 모든 영혼의 선배들이 전해준 지혜는 나와 이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 계신다는 통찰이었다. 그들은 자신 안에서, 그리고 만물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스스로 말씀하고 계시는 분임을 그들은 영혼의 직관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하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성서의 문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영혼 안에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의 신성(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 성서의 문자를 읽었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성서 전체는 헛되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은 말씀이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이미 말로 표현되고 말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이 될 것이다”


노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는 말로 도를 표현했다. 어거스틴 역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 무엇일 뿐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다. 다석선생은 “인간은 있이 없고, 하나님은 없이 계신다”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보탤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역시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겟는가? 오직 하나님 만이 스스로 말씀하고 계실 뿐이다. 그 분이 계신 곳에서는 그 분의 말씀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지구에 보냄을 받은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축복은 내 존재의 안과 밖에서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뿐만 아니라 만물과 역사 속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영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이를 수 있도록 영혼 안에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불어 넣어 주셨다는 데 있다. 육체 안에 신성의 본성과 빛이 깃들어 있다는 선언이야말로 복음이다. (벧후 1:4절 참조)


인간의 인간됨은 인간은 물질 몸이 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나가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있다. 그리고 자신 안의 고귀함을 이 세상에 빛과 소금처럼 드러내는 데 있다. 이 사명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그 기도에 깊이 들어설수록 피조물들의 기쁨과 고통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분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시대 상황에서 외쳤다.

모든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와 새와 돌멩이 하나까지 말씀하고 있다. 돌 하나에도 수십억 지구역사가 깃들어있다. 모두 예사로운 존재들이 아니다.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메아리다. 피조물은 신의 메아리다. 피조물은 신의 의사전달이다.”


요즈음 나의 기쁨은 진달래 교우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가까이 하는 열정이 뜨거워진 것이다. 주일마다 산 아래 자동차를 놓고 걸어 오르다 못해 오후에 경각산을 오르는 것은 몸과 맘의 건강이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모든 인생이 망상과 두려움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는 이때에 힘찬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만물과 호흡을 같이하는 행운을 븥잡은 것에 대해 축복을 보낸다.


창조세계가 있는 한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 분의 말씀은 여전히 메아리로 드러나고 있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말씀이 있다. 우리는 그 말씀의 양면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이란 어떤 분명한 의사전달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지금 나의 공간과 시간속에서 말씀하고 계시는지 잘 들어보자, 신의 메아리가 바로 ‘나’임을 자각하자.



*루돌프 슈타이너(독일어: Rudolf Steiner, 1861년 2월 27일 - 1925년 3월 30일)는 독일계 오스트리아인의 학자이자 인지학(人智學, 독일어: anthroposophie)의 창시자이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인 철도원을 아버지로 두고, 현재에는 크로아티아에 해당하는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 신비사상가, 건축가, 교육자로서 유명하다. 독일어권에서 처음에는 괴테 연구자로서 시작하였으나 1900년대부터 신지학협회에서 활동하였고 의견을 달리하여, 1912년에는 탈퇴하여 인지학협회를 창립하였다.

1919년 독일 슈트트가르트에 최초로 자유 발도르프 학교를 창시하였으며, 현재 인지학의 이론아래 치료교육학과 관련하여 독일과 유럽 전역에 캠프힐(도르프게마인샤프트)가 건립되었으며, 유기농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데메터, 생명역동농법이 농학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건축으로는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괴테아눔이 유명하며,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크리스챤게마인데(종교)가 형성되었다. 의학과 관련하여서는 발라와 벨레다등의 유명약품 회사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