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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16.05.13 07:52

물님 조회 수:747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요한복음 4:16- 42



자신의 감추고 싶은 과거에 대해 폭로하듯이 말해버리는 예수의 화법에 당황한 여인은 이제 대화 주제를 바꾸는 물음을 던진다. 물을 청하는 예수를 쌀쌀하게 대했던 여인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고 더 깊은 이해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녀는 예수를 예언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었고 신명기 18:15절에 예언된 모세 같은 예언자(타헤브, 회복자)가 출현하기를 기다려왔다. 우물의 주인이었던 야곱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인가를 물었던 여인은 메시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된다. 메시아는 그리스어 그리스도라는 말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여인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원수로 나누게 한 예배의 장소문제를 묻기 시작한다. 당시 사람들은 예배공간을 신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 장소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녀가 예수에게 한 질문 요지는 자신이 어디에 가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남쪽 유다인은 솔로몬의 성전인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아브라함 ( 창 12:6-7)과 야곱(창 33:20)이 예배한 사마리아의 산이 정통성이 있는 장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리심산 (신명 11:29)이 예루살렘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 예루살렘 성전 건립에 동참하고자 했던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호의가 거절 당하자 자신들의 성전을 기원전 400년 경에 건축했다. 그러나 요한 히르카누스가 이끄는 유대인들에 의해 기원전 138년에 사마리아 성전은 파괴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 받아야 하느냐 하는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여인이 제기한 물음은 시골 여인조차 물음을 제기할 만큼 사마리안들의 뿌리 깊은 비원이 담긴 물음이었다.

여인의 물음에 대해 예수는 이렇게 말씀했다.


“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21절)


예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배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했다. 공간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공간에 내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하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2장의 성전정화 사건에서 예수는 사람이 만든 성전이 모두 무너지고 사라질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바가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요, 그리스도를 몸으로 한 성도들의 공동체가 성전임을 고백해왔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영원한 생명공동체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이 빛이요 생명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다. 한계는 인간이 정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사건은 장소에 매이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에게 언제나 열려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한계의식 너머에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차별과 구별의 의식을 지나 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물질이 아니다. 인간은 신령한 존재이다. 물질을 지배하고 물질을 건너가는 존재이다. 물질의식에 매인 사람은 공간과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영적 의식의 사람은 공간에 매이지 않는다.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23절)


공간에 매이지 않고, 가장 고귀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러 다니신다는 예수의 말씀에 그 여인은 감동했다. 여인은 자신이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데 만약 그 메시아가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을 잘 알려 주실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는 단도직입 적으로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했다. 저자 요한은 이 핵심적인 말을 통하여 예수는 어떤 분인가를 증언하고 있다.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 여인은 얼마나 놀라고 흥분되었는지 물동이를 우물에 놓아 둔 채 마을로 돌아갔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물을 길러 왔었지만 이제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꿰뚫어 아는 예수가 참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확신이 섞인 물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여인은 예수를 만나 놀랐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마을에 다녀온 제자들은 대낮에 여인과 공개적으로 대화하는 예수의 모습에 놀랐다. 그들은 스승이 사마리아인이며 죄인인 여자와 함께 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당혹스러웠다. ‘아니 저럴수가 있을까? ’하는 민망한 시선을 거두다 못해 ‘선생님, 무엇을 좀 잡수십시오’하고 한마디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했다. 목구멍으로 들어가 위장을 채우는 밥이 아니라 밥을 초월하는 밥이 있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성숙은 밥 이상의 밥을 먹는 데서 결판난다. 그 밥은 하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완성하고자 하는 소명의 밥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인간 영혼의 광막한 밭을 추수하기를 원하는 예수의 마음을 알기에는 아직 익지 않은 영혼들이었다.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는 의식의 채널이 다른 인간들이 나누는 전형적인 예이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는 우물가의 여인과 제자들 모두 같은 의식의 채널 상태이다. 즉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수의 양식 발언과 이어지는 추수에 관한 말씀은 제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1-2월에 심은 씨를 4-5월에 추수를 하는 그곳의 농사 현장은 추수 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35절) 이 말씀은 여인과의 만남이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비유해 주고 있다. 우물가에서 여인의 영혼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은 여인의 말을 듣고 우물가로 달려 나오는 한 무리 마을 사람들의 모습으로 추수가 되고 있다. 자연의 농사현장에서 추수는 넉 달이 필요하지만 영혼을 거두는 데는 즉각적으로 추수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한 여인에게 떨어진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게 했고 믿음의 추수로 이어졌다. 한 사람의 증언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녀는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였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는 동기는 아주 단순한 한 사람의 증언과 고백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제자도 랍비도 예언자도 아니었지만 훌륭한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나라는 존재와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이 나의 우물이다. 기쁨과 생명력이 솟아오르는 삶이 우물이다. 나의 우물물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용기 있게 신앙을 고백하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의 우물물을 마시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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