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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아버지가 소망하는 순결

2014.03.28 23:00

물님 조회 수:1038

나 - 아버지가 소망하는 순결

                         물 이 병 창

 

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백한다. 우리라는 말은 나라고 하는 개인을 초월하는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이 개인의식을 초월한다는 것은 이미 거룩함이 전제되어 있다. 하늘 아버지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며 이 우주의 창조자이시다. 나와 너 그리고 모든 만유가 아버지 안에서 하나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 라고 부른다. 나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며 아버지가 소망하는 순결이다.( I AM the purity God desires) 그런데 어찌된 현실인가?

 

 

구르지에프는 지구를 잠자는 사람들의 별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수많은 생각과 느낌과 행동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기계인간들의 세상이라고. 지구에서의 인간 형편은 어디에서나 같다. 두려움과 공포, 의심과 불신, 탐욕의 파동들이 세상에 진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저질화된 에너지로 몸과 마음이 암성화 되어 수많은 질병들에 시달리고 있다. 질병이란 단어 dissease는 dis-ease 곧 편안치 못함을 뜻한다. 저질화된 상념과 감정들은 인간의 세포 사이에 침투하여 생명의 숨구멍을 막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온갖 스트레스와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중심은 흐트러져 있고 삶의 목적도 없이 가인처럼 유리방황하는 형편이다.

 

 

데카그램이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가슴 속에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온과 조화를 찾기 위한 지혜이다. 그것은 세 개의 삼각형이 제시하는 ‘힘, 지혜, 사랑’의 회복을 통한 중심잡기에 있다. 그 때 인간은 온전함(wholeness)을 이해하게 된다. 하늘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치료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나의 머리는 정화되어야 하고 그의 사랑으로 나의 모든 세포들 속에 찌들어 있는 부정적 에너지들을 청소해 내야 한다. 성전으로서의 몸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가 일어나고

 

 

두려움에 찌든 파장을 정화할 때 사랑과 평화와 감사의 흐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바로 이런 삶의 새로움이야말로 아버지의 소망이고 우리가 이 땅에서 성취해야할 보람이다.

생명의 그릇인 몸을 지키는 것은 인간 의식의 정화에 있다. 목구멍에 들어가는 밥만이 밥이 아니라는 것을 각성하는 데 있다. 보이는 것만을 존재한다고 믿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 인간은 신성의 음식과 성령의 불꽃이 들어오도록 허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가슴을 다스리는 지혜와 힘의 사용을 터득해야 한다. 나의 감성과 영성이 굳어가고 부정적 에너지가 내 생명의 통로를 어떻게 막고 있는가를 통찰해야만 한다.

 

 

거룩한 불꽃에 나의 불순물들(의심과 두려움, 일체의 부정)을 태우는 정화의 작업은 영혼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필수적 조건이다. 예배는 온갖 불순한 부정적 에너지를 태우는 정화의 시간이다. 하늘 아버지의 권능이 내 빛의 동맥에 흘러드는 시간이다.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나에게 주어짐을 감사하자. 가슴이 더 이상 강팍해지지 않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감사하자. 질병, 퇴보, 불안, 정신의 혼미함을 따라가지 않고 빛의 존재로 살아가게 됨을 감사하자. 내 자신과 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책임적 존재로 살아감을 감사하자. 지금 여기에서 나의 나 됨을 더욱 소리 높여 감사하자.

 

 

이 세상에서 시간과 공간과 삶의 모든 조건들은 다음 세상, 다음 차원으로 가기 위해 주어진 모든 것들이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그 모든 것들은 바닥이 나고 끝이 날 것이다. 그런데도 주어진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낭비하면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것들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와 목적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이런 방식의 삶은 죽은 것이고 자신을 저주하는 방식의 삶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빛의 흐름을 막고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자멸의 길이다. 바로 이 사실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우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 (고전 15:19)

예수는 주어진 시간의 모래 위에 영원한 발자국을 남겼다. 우리는 그 발자국을 통하여 용기를 얻고 인간의 삶을 지극히 존귀하게 하는 길을 걸어간다. 로마의 폭정과 백성을 착취하는 율법의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도 그 분은 ‘다 이룬’ 삶을 살다 가셨다. 그러기에 우리도 나의 나됨을 간구하고 정진하고 기다려야 한다. 내가 더 큰 앎을 얻고 새로운 각성을 하고 하나님의 입혀 주시는 새로운 몸을 얻기 위해서 나의 모든 조건들을 지혜롭게 활용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