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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관하여 – 2014.4.20.(일)

 

 

고린도후서 5:1~21 말씀을 돌아가며 읽고 첫 생각과 첫 느낌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혜경님 – 12절 말씀에 ‘우리의 의도가 바르고 성실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좋은 무기를 제공하려는 것, 이 무기가 있으면 불성실하고 진실하지 않은 설교자들을 대항해 나갈 수 있을 것’에서 보듯이,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기본이 바르게 세워져 있었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되어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끝까지 소임을 다 해야만 불성실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항할 수 있습니다.

 

 

씨알님 – 21절, ‘죄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우리 죄를 지우셨으며,’

생사가 엇갈리는 극한 위기상황에서도 너 먼저 살라고 구명조끼를 양보한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가슴 찡한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물님 – 잠수사가 500~600명인데 들어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역사에 보면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장군을 세워 도끼를 주면서 전권을 맡겼습니다.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총리가 물병을 맞고 중심이 세워지겠습니까? 부모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에는 통곡의 벽이 있습니다. 성금 걷어 독립기념관을 세웠는데 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일본 자재 가져다가 지었다고 하는데, 묵념하는 방향 뒷산에 미군기지가 있습니다. 어디다 대고 절을 하는가요? 돈을 수천억 들여 집을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통곡이 벽 하나 남겨놓고 국민들이 울고 가는 곳, 가슴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울어야 가슴에 정화가 일어납니다. 능력자를 발탁해서 지명하여 밀고나가라고 해야지.... 배 중심이 선장인데, 중심이 없어지고 잠자고 있다가 도망가고..... 지난 겨울 인도네시아 크루즈 배도 비행기 타면 하듯이 안전교육을 실시합니다. 말단까지 피가 통하지 않는 나라 안타깝습니다.

 

 

씨알님 – 어렸을 때 저는 경운기 사고를 자주 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도 커브에서 도랑에 쳐 박고 그러면 아버지께서 수없이 건져주시고 그랬는데, 이렇듯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딸 수인이에게 말했습니다. “수인아, 배가 뒤집혀서 물에 빠지면, 아빠가 구명조끼 벗어서 너 줄게.” “아빤 멍충이, 아빠는 수영을 못하잖아? 나는 수영을 할 줄 아니까 아빠가 입어야지.”

 

 

도도님 – 심각한 상황에서도 우리 수인이가 웃음을 주는 이야기군요. 제가 초임 발령을 순창 동계로 받았는데, 홍수가 나서 창주 다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휴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검정고무신을 잡으려다 물에 떠내려가 실종이 됐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강물을 따라 여러 날을 찾아다녔습니다. 결국엔 부모님이 하동 하구둑에서 찾아왔다고 하며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때 이런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만일 우리반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하면 나는 사표를 내야겠구나.’ 목숨을 끊은 교감 선생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살아남은 자가 죄가 되는 부끄러운 심정이랄까.... 꼭 그 방법 밖엔 없었을까요? 21절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지우셨으며...’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늘님 – 선생된 게 너무 무겁습니다. 규칙을 어겼어도, 살았으니 영웅된 교사와 학생들, 어기고 죽었으면 얼마나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힘든 건 남은 사람들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혼란을 개선해야 하기도 하지만, 정치, 교육, 제도 등의 불신의 벽을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 어둡기만 합니다.

 

 

물님 – 사건이 일어나면 속죄양을 찾습니다. 교감이 보고하면 가만히 듣고만 있는 교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기관사 등등. 간첩이 오면 분명 뚫린 곳이 있습니다. 보고를 하면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간첩이 잡혀 어디로 왔냐고 물었을 때, 그때사 알게 되면 책임을 묻는 겁니다. 고교 교사시절에 칼빈총을 들고 학교에 와서 3학년 여학생을 데려오라고 난동을 부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서 총을 확 휘어잡았는데, 모두들 책상 밑으로 피했습니다. 아무도 도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빨리 와서 잡으라고 하니까 그제야 움직였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 능력을 발휘해야합니다. 곧장 가기만 하는 꿀벌은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돌진하다가 뇌진탕으로 죽지만, 파리는 종횡무진하다가 살아서 나갑니다.

 

 

하늘님 – ‘밀양’ 영화에서 보면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똑바로 못 쳐다보는 어머니처럼 나도 못볼 거 같습니다.

 

 

권사님 – 4절 말씀, 하나님 말씀에는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위대한 지혜가 살아나야 집단이나 가정이나 살릴 수 있습니다. 지혜 없이 순종만 하니까 사고가 더 납니다. 외국 선박왕들을 데려다가 조사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물님 –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조리한 세상은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일까? 영화 ‘다이버전트’에서 보면, 사람들을 5개의 집단 – 농사, 봉사, 진실, 전사, 지성 – 으로 나누어 모두가 거기에 속하게 합니다. 테스트 결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위험인물로 죽입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유의지의 소유자를 다이버전트라고 합니다. 데카그램에서 보면, 아홉 가지 분파로 만들어 놓고 그 길을 찾아가다 보면 감옥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각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창살이 금이냐 은이냐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창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합니다. 나갈 생각을 안 하면 문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음으로 양으로 많은 구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유의지를 지향하는 사람, 전체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 죽음으로도 가둘 수 없는 한 영혼이 있었습니다. 생활기록부에 온순 착실한 형을 제일로 아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겁먹지 않는,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길을 가고자 하는 길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웁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내 삶의 부활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무한 신뢰로 사랑을 저울질하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왜곡된 가슴에서 생겨난 환상은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게 하나? 보이는 대로 보이는 게 아니라 신념을 투사해서 봅니다.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환상으로 도망갑니다. 한 사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를 환상의 세계로 몰아갑니다. 이건 환상이야, 현실이 아니야 하면서 강한 유리벽을 손가락 하나로 깨뜨릴 수 있는 겁니다. 무덤에서 깨어날 때 부활의 삶이 시작됩니다. 지금 여기 내 삶의 내용이 무언가?

 

 

새벽에 드리는 부활절 연합 예배가 빈 무덤 앞에서의 예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연합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낡은 것이 지나갔다, 여기에서 낡은 것은 우리 인류가 길들여져 온 것입니다. 그건 두려움입니다. 느낌, 생각, 행동 모든 것들, 환상, 미신, 이것이 무덤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미래에 대한 걱정, 이것은 육체 의식에서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김씨 박씨 이씨가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가 내 존재의 아버지입니다. 좁은 길을 통해 태아가 나오듯이 이 지구도 자궁입니다. 연단해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어린 아이로 태어나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하늘나라에서는 어린아이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여기입니다. 지구에 보냄을 받은 존재, 사랑과 나눔으로 살아가야할 존재, 울울하고 쪼잔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고 탕탕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 의식으로 깨어날 때 부활이 일어납니다. 정해진 틀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예수님께서 그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간 인간 공간의 만남은 일체가 은혜입니다.

 

 

두려움의 틀을 깨고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하트에서 나온 환상을 깨고, 그 환상에 빠진 무덤의 삶에서 깨어나, 지금여기에서 그리스도 의식으로 깨어나 부활하시길 축원드립니다.

5장 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